[장덕균의개그 펀치] 관리종목이 제일 안전한 이유

어떤 사람이든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아킬레스건이라고 할까 아니면 그저 가슴 속의 작은 상처라고나 할까 하여튼 뭐 그 비스무리하게 생긴 놈이 하나 버티고 있다. 바로 주식투자, 그 중에서도 절대 잊혀지지 않을 그 이름 '평창 정보통신'이다.

한때 나는 주식투자 열풍에 휩싸여 투자를 한 적이 있다. 처음 ‘초짜’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틈만 나면 객장으로 달려가 뒷머리가 눌리도록 오랜 시간 시세표를 들여다보고 경제 전문지만 골라서 보고, 어쩌다 증권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만난 사람 친척 중에 증권맨이라도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전망과 대책을 논의해보는 과도기를 거쳤다. 그러다 만난 것이 바로 평창정보통신이라는 장외 주식이었다.

사람이 망하려면 ‘별짓’을 다한다고 그때는 어쩐 일인지 온통 그 주식에 관련된 얘기만 들릴 뿐이었다. '정치권에서 미는 주식이라더라' '장차 정치권의 돈줄이 될 황금알이다' '00가 은밀히 보유하고 있다'는 등 그럴싸한 루머를 듣게 되니 당연히 군침이 돌았다.

지금 같으면야 그 정도로 얘기가 시중에 돌면 뭔가 뒤가 구리던가 아님 볼장 다 본 주식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뭔가 엄청난 주식일것만 같았다.

마침 톱탤런트 C도 그 주식을 샀다는 소식이 들리자 나는 주저않고 끼어들었다. 어디 나뿐이던가,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 역시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조금씩이라도 그 주식을 사들였다. 모 여자 개그맨은 자동차 좀 바꿔보려고 샀다고 했고, 누구는 대박을 꿈꾸며 '제2의 박중훈'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탤런트 A군은 '이제부터는 나를 만석꾼이라고 불러다오' 하며 한건 크게 잡으면 유럽이나 한바퀴 돌자고 호기롭게 큰소리를 쳤었다.

원래 주식 열풍이 한창이던 때라 방송국 내부는 주식파와 비주식파로 갈렸고 머리 셋만 모이면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게 아니라 고만고만한 초짜들이 모여앉아 상황 분석과 종목 발굴에 열을 올렸다.

‘누가 망했다더라’라는 얘기보다는 ‘누가 얼마를 먹었다더라’라는 풍문에 너도 나도 부자가 될 꿈에 홍조를 띠며 비주식파들을 안스럽게 쳐다보곤 했었다.

'따블' 과 '따따블'을 노리며 배울만큼 배우고 교양도 갖춘 사람들이 마치 마약에 중독이라도 된 듯이, 사이비 교단의 맹렬한 신도라도 된 듯이 성공을 꿈꾸고 살았다. 그 성공을 꿈꾸는 이면에 깔린, 자유직업자만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누가 알겠는가.

혹자는 자유업이니 그야말로 얼마나 자유롭냐고 부러워들하지만 아니할 말로 샐러리맨들처럼 퇴직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날 짤린다고 실업수당을 주는 곳도 없다. 자유직업자들은 그야말로 준비된 백수인데 그런 불안한 위치에서 더러운 꼴 안당하고 주관있고 품위있게 일하자면 결국 경제적인 문제가 뒷받침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매달렸던 것이데…

헌데 날이 갈수록 폭락을 거듭하더니 따블은 고사하고 본전만, 반토막만, 빚 얻은 것만 하더니 결국 쫄딱 망하고 말았다. 입만 열면 목에 핏대 올려가며 주식 동향을 설파하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의기소침해져서 서로를 외면하고 지내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정신을 추스리고 위로의 말들을 나누게 되었다. '만석꾼'을 꿈꾸던 A군은 '머슴'으로 불러달라고 하더니 그 다음에는 '노숙자'로 전락했다며 쓰디쓴 소주잔만 비워냈다.

지금이야 다들 '무주식이 상팔자'라고 손을 털었거나 해도 과거의 상처 때문에 소액을 재미로 투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헌데 얼마전에 모 신입 AD가 주식을 시작했다며 과거 역전의 용사들에게 자문을 구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샀다는 주식들을 보니까 하나같이 리스크가 큰 관리종목들 뿐이었다. 우리가 의아해 하며 이유를 묻자 그 AD의 의기양양한 말씀 한마디,

"관리종목은 나라에서 관리를 해주는거니까 얼마나 안전해요. 절대 망할 리가 없는 주식이잖아요? 안 그래요? 투자는 안전이 최고지요 뭐."

입력시간 2002/05/1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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