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대학로] 예술의 난장으로 새롭게 꽃피는 거리

다시 찾아온 '문화의 봄' 대학문화의 메카로 새롭게 등장

5월 5일 일요일 오후 5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인근에 위치한 공연장 앞에 표를 예매하려는 관객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연인들은 물론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든다. 대학로에 다시 찾아온 ‘문화의 봄’을 완연하게 느낄 수 있다.

대학로의 젊은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늘어난다. 네온 사인이 불을 밝히는 저녁에는 마로니에 인근 공연장을 중심으로 젊은 물결이 거리를 뒤덮는다. 문예진흥원 홍보팀의 김성량(31)씨는 “요즘은 일반 관객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대학로에 나와 공연을 즐긴다는 곽혜리(25)씨는 “최근 들어 대학로 공연장에 진지한 창작극 등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며 “특히 실험적 정신이 강한 대학 문화가 전체 공연 문화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한때 술집과 유흥업소가 가득 차 ‘소비의 거리’ 였던 대학로에 건전한 대학 문화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연극ㆍ영화ㆍ디자인 등 예술 관련 대학 캠퍼스들이 대학로에 이전해 오면서 달라진 변화다.

연극 공연장과 극장 등 30여 곳의 문화공간이 전부였던 이 곳은 예술 대학 캠퍼스들이 속속 자리잡으면서 새롭게 대학문화의 메카로 등장하고 있다. 대학들은 공연 현장과 연계된 살아있는 교육을 펼치는 장으로, 문화 예술인들은 대학캠퍼스를 현장 무대로 활용함으로써 문화 예술의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예술관련 학과 캠퍼스 속속 들어서

지난해부터 대학로에 ‘둥지’를 튼 대학은 모두 6곳. 상명대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상명대는 지난해 3월 학산기술도서관을 인수해 지하 1층 지상 4층의 동숭캠퍼스를 개관, 예술ㆍ디자인 대학원을 옮겨왔다. 사진학과, 영화학과, 실내디자인학과 등 9개 학과 250여명의 대학원생들이 소극장과 전시장을 갖춘 이 곳에서 현장 기량을 닦고 있다.

조준영 상명대 예술디자인 대학원장은 “대중과 쉽게 호흡할 수 있는 대학로에 캠퍼스를 이전한 뒤 학생들의 수업에 활기가 넘쳐 난다”며 “소극장 등을 실습 공간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어 학생들이 보다 전문 의식을 갖고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상명대 동숭캠퍼스의 길 건너편에는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동덕여대는 지난해 9월 이전하면서 아예 건물을 새로 지었다. 대지면적 1,055m2, 건축연면적 6,430m2 규모의 지하5층, 지상 8층 건물로 450석 규모의 대공연장, 스튜디오, 소극장, 영상실습실, 무용실, 합주실 등 최첨단 현장교육시스템을 구축했다.

공연예술의 진수인 무용, 연기, 음악의 개념이 결합된 공연예술학부(무용, 방송연예, 실용음악 등 3개 학과)의 실습 전용 공간이다. 염하랑(19ㆍ무용과 1년)씨는 “주위에 공연장이 많아 다양한 공연을 접하고 빠른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이 학습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태보라(23ㆍ방송연예과 조교)씨는 “후배들은 항상 방송촬영 현장처럼 카메라가 달린 전용공간에서 수업을 받아 방송환경에 쉽게 익숙해지는 게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중앙대는 지난해 7월 혜화로터리의 우당기념관을 매입, 공연영상예술원으로 개원했다. 홍익대는 한국디자인진흥원(KIDP) 건물을 개보수해 디자인 관련 대학원 수업과 연구ㆍ전시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성대는 인켈아트센터 빌딩에 미디어디자인 학부를 세우고 이번 3월 학기부터 수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국민대는 2000년 일찌감치 대학로에 입성, 7월 문예회관 인근에 창업 인큐베이션 및 산업화 유도를 촉진하는 ‘01 스튜디오’를 세웠다.

이 스튜디오는 테크노디자인 연구센터에서 개발된 연구 결과 및 브랜드 홍보의 역할을 맡아, 자체 개발 패션에서 생활디자인용품, 인테리어 작품 등의 전시 및 판매를 하는 파이럿 숍(Pilot Shop)을 운영 중이다.

김정옥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은 “공연 예술 대학들의 이러한 대학로 이전은 현장에서 창조적 에너지를 생성하는 중요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며 “대학로가 대학 문화의 중심지로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젊은이들의 정서 향유하는 축제 준비

대학로에 예술 관련 캠퍼스를 옮겨온 이들 대학은 5월 25일부터 6월 2일까지 대학로 거리 및 대학로에 위치한 주요 대학교 곳곳에서 ‘SUAF 2002 제 1회 대학로 문화축제’를 연다. 축제는 전국대학생 연합 거리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한국 일본 중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베서토 축제’, 합창제, 연극제, 공예 전시회, 불꽃 축제 등으로 다채롭게 진행된다.

이번 행사에는 한일 축제 문화를 비교하는 문화교류 기념 강연회도 열린다. 축제 기간에 대학들은 각 학교별 부스를 설치해 동문들과 함께 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더불어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대학로를 건강한 정신이 살아 숨쉬는 활기찬 거리로 만들어나갈 예정. 축제가 끝나면 이번 행사 프로그램에 대한 설문 조사를 통해 향후 발전 계획도 수립한다.

조현흠(26ㆍ성대 경영3년) 축제추진위 실행위원장은 “더 이상의 대학 문화는 없다는 자조적 비판에서 출발, 학생들 스스로 새로운 대학문화를 모색해나가는 행사”라며 “젊은이들의 고유한 문화와 예술의 정서를 향유하고 화합을 다지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로는 서울 종로구 종로5가 혜화동 일대의 1.55km에 이르는 거리이다. 1924년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교(현 서울대학교)가 이곳에 문을 열고 고등교육의 메카를 자처하면서 대학로라는 명칭이 자연스럽게 붙여졌다.

서울대가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까지 문리대와 법대, 예술대 등이 자리하면서 명실공히 대학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후 서울대가 빠져 나간 터에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연극ㆍ영화ㆍ콘서트ㆍ뮤지컬 등의 문화예술 단체들이 잇따라 들어섰고, 85년 이 일대의 특성을 살려 ‘문화 예술의 거리’로 개방되고 도로 이름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매주 토ㆍ일요일을 차 없는 거리로 정하기도 했으나 89년 해제됐다. 90년대 이후 대학로는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 변질되면서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배현정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0 14:11


배현정 주간한국부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