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 압승, 르펜 돌풍 잠재워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서 압도적 표차로 재선

자크 시라크(69) 프랑스 대통령이 5월 5일 실시된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극우파인 장-마리 르펜(73) 국민전선(FN) 당수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재선됐다. 이로써 시라크는 프랑스 제5공화국 사상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재선에 성공했다

우파인 시라크 대통령은 유권자의 80%가 투표한 이날 선거에서 81.9%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해 18.1%를 얻는데 그친 르펜 후보를 제치고 제5공화국 44년 역사상 가장 큰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 승리는 시라크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라기 보다는 프랑스의 모든 정치세력이 르펜 후보에 대한 거부감을 보인 결과로 해석됐다.

시라크는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한 심각한 근심의 시기를 겪었다"면서 "그러나 프랑스는 위대한 정신으로 공화국의 가치에 대한 애착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의 재선 성공은 르펜 급부상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으며 시라크-르펜 대결은 통상의 선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싱거운 승부였다. 시라크는 지난 30년 동안 프랑스 정치의 한 축을 이뤄왔던 우파의 거두로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과 정치 엘리트 사관학교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뒤 1959년 회계감사원 감사관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그는 60년 퐁피두 총리의 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던 인연을 계기로 탄탄대로의 정치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67년 고향 코레즈에서 드골파 후보로 출마,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대중 정치인의 기반을 닦았으며 이후 6선 의원, 도의원 겸직, 3개 부처 장관, 총리, 파리시장 18년, 대통령 등을 지냈다. 76년 신드골주의를 부르짖으며 공화국연합(RPR)을 창당해 현재까지 난공 불락의우파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는 81,88년 대권에 도전했다가 81년 1차 투표에서 고배를 마셨으며 88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게 맞서 2차 투표까지 갔으나 54대 46으로 석배했다. 그는 95년 3수 끝에 엘리제궁에 입성하는 끈질긴 집념을 과시한 직업 정치인이며 정치 인생 30년 내내 '불도저'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다.

보수 중산층과 여성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정치적 전술과 돌파력이 뛰어나고 위기관리에도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치철학과 신념이 부족하며 경쟁자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정치후계자 출현을 원천 봉쇄해 기회주의적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한편 6월 실시될 프랑스 총선은 양대 정파인 좌우파가 치열할 맞대결을 벌이게 될 전망이다. 대선 2차투표 탈락이라는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한 사회당을 비롯해 좌파들이 권토중래를 벼르고 있을 뿐 아니라 우파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재선 성공 여세를 몰아 총선 승리에 박차를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당은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2차 투표에 탈락하자 벌써부터 좌우파가 맞 대결하는 총선이야말로 '3차 투표' '진정한 결선 투표'라며 지지호소의 기염을 토하고 있으며 우파는 비효율적인 좌우동거(코아비타시옹)를 피하기 위해 시라크 진영인 우파에 표를 몰아줘야 한다고 촉구중이다.

대통령이 우파이면 의회는 좌파가 주도하도록 권력을 분산시키겠다는 유권자 성향은 80년대부터 지금까지 3번의 좌우동거 정부를 초래했으며 이번에도 이 같은 현상이 재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파리=AFP

입력시간 2002/05/1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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