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화두 된 '21세기 주력사업'찾기

고부가가치 창출 사업구조로 개편

“앞으로 5~10년간 그룹을 이끌어갈 주력 대표선수를 잡아라.”

삼성과 LG SK 한화 등 대기업들이 21세기를 이끌어갈 주력 대표사업 선정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올려 붙였다. 과거 성장을 주도했던 기존 업종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한다는 것이 핵심 과제다.

외환위기이후 구조조정과 지난해의 불황한파가 일단락되면서 각 그룹들은 각자 중장기 생존전략과 비전을 이끌어갈 새로운 주력사업 군 설정과 그룹ㆍ계열사 단위의 실천방향 선별작업에 돌입했다. 또 기존 대표사업의 체력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공기업 민영화참여 등 ‘스카우트’ 열기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삼성, KT민영화 참여여부가 최대 관심

최근 각 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군침을 흘리는 ‘대형 스타’는 단연 한국통신(KT) 민영화로 ‘스카우트 0순위’ 대상으로 꼽힌다.

KT 민영화는 정부가 보유중인 KT지분(28.37%, 8,857만4,429주)중 13.835%를 주식교환사채(EB)로 발행해 5월 17,18일 기관ㆍ전략ㆍ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청약 형식으로 이뤄진다. 자산기준 재계 6위, 매출액 기준 7위로 국내통신시장의 ‘공룡’인 KT의 민영화가 카운트다운에 돌입하면서 그간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온 기업들도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KT경영권을 특정 대기업에게 넘겼다가는 경제력 집중문제와 특혜시비까지 겹칠 것을 우려, 동일인 입찰 한도를 5%로 제한하는 대신 매입 분의 2배에 해당하는 EB를 매입할 수 있게 해 소유 지분한도를 15%까지 늘렸다.

KT민영화 참여를 놓고 가장 주목을 끌고 있는 곳은 1ㆍ4분기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삼성.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3월초 사장단 회의에서 ‘자만하지 말고 5~10년 후 무엇을 먹고 살아갈 것인지 비전을 만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강조한데 이어 4월 20일엔 전자계열사 사장단 합숙토론회를 주재, 10년 후 기업의 목표와 전략 수립을 지시했다.

삼성측에 따르면 전자계열사 사장단은 2010년 비전을 ‘디지털 컨버전스 혁명을 주도하는 회사’로 설정하고 세계 ‘톱(Top) 3’에 진입키로 하는 중장기 전략 등을 수립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삼성이 KT의 경영권을 확보한다면 사회적으로 경제력집중에 대한 우려가 불거질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장비납품 업체로서 서비스 분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는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업계에선 향후 5~10년을 바라보는 기업전략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가 어떤 식으로든 KT 민영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KT가 민영화될 경우 설비투자 비용면에서 현재보다 70~80%를 줄일 수 있고 연간 수익측면에서 2조원을 추가로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삼성측의 자체 분석”이라며 “삼성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삼성생명 등 관계사를 통해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고 있다.


SK, 현대석유화학 인수 추진

정보통신 부문이 그룹을 이루는 가장 큰 축인 SK는 KT민영화를 놓고 정부의 방침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SK텔레콤은 정부가 KT의 소유 분산 의지를 견지하지 않고 완화함으로써 대기업간의 지분매입 경쟁이 치열해지게 됐다는 점에 대해 강한 우려감을 내비치고 있다.

따라서 SK측은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로는 중장기 발전이 불투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전사적인 ‘업그레이드’를 독려하고 있다. 손길승 SK회장은 최근 계열사 CEO회의에서 “경영환경변화가 예측 불허인 만큼 각 계열사별로 이미 만든 ‘To-Be’ 비즈니스 모델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해 재수립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계열사들은 미래 생존ㆍ발전 가능성, 온ㆍ오프라인 결합의 해외시장 적용 등 3대 원칙에 따라 업그레이드된 사업 모델 찾기에 나서고 있다. SK는 그 첫번째 타깃으로 종합화학 사업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목표로 최근 현대석유화학 인수를 추진 중에 있다.

SK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최근 구조본 내에 현대석유화학 인수 전담 팀이 구성돼 협상과정을 준비하고 있다”며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큰 유화부문에서 SK가 인수할 경우 SK㈜와 SKC, SK케미컬 등 화학 기초 유분에서부터 생명공학 등에 이르기까지 종합 화학그룹으로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SK㈜는 천연가스와 전력사업 확대를 위해 한전 자회사와 가스공사민영화 인수 전에도 뛰어들 태세다.


LG, 1등주의로 사업전략 구축

올 초부터 ‘1등 사업, 1등 제품’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LG는 2003년 말까지 예정된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구ㆍ허씨 가족간의 계열분리를 통한 주력 핵심사업을 선별, 육성하는 전략을 추진 중에 있다.

구본무 LG 회장은 최근 사장단 전략회의에서 “지난해까지 목표가 생존차원의 구조조정과 현금흐름 중심의 내실 경영이었다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1등을 위해 치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LG전자가 PDP 및 LCD TV에서 2005년까지 세계 1등을 목표로 세웠다.

LG마이크론과 LG 이노텍은 디지털TV부품 세계 1위, LG화학은 1등 제품을 현재 14개에서 2005년까지 48개로 확대키로 했다. 또 LG카드와 LG투자증권, LG홈쇼핑 등은 국내업계 1위 등 계열사별로 1등화 전략을 마련했다.

재계는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LG의 1등 주의는 보수적이고 내성적이었던 LG의 문화와 색깔까지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화, 대생인수로 금융산업 진출 야심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아 올해를 ‘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대한생명 인수에 사활을 건 한화의 김승연 회장은 지난달 초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이건희 삼성회장을 만나 생명보험 사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김 회장은 삼성생명의 경영노하우와 중국사업 진출 비결을 묻고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해 이 회장으로부터 깊은 조언을 들었다. 김 회장이 생명보험 사업에 거는 기대는 그만큼 남다르다. 새로운 그룹 성장 엔진으로 증권, 투신, 보험을 아우르는 금융산업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새로운 구상에는 기존의 석유화학, 유통ㆍ레저사업 만으로 그룹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강한 위기의식이 근간을 이룬다. 그러나 환란직후 한화종금ㆍ투신의 부실 경영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최근엔 계열사들의 분식회계로 도덕적 해이까지 나타난 한화의 대생 인수를 놓고 자격 적정성 시비도 만만찮게 일고 있다.

특히 한화가 과연 1조2,000억을 웃도는 매각대금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를 놓고 금융권에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한화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그룹의 돈 안 되는 사업은 과감히 내다 팔 것을 회장이 이미 직접 승인했다”며 “지난해 잠실 갤러리아 백화점 부지 등 부동산 매각만으로 3,31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고 올 상반기중 1,844억원을 추가로 확보해 5,154억원의 현금을 보유할 계획”이라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정부와 대생 인수 가격에 대한 막바지 협상에 나서고 있는 한화는 사실상 ‘대한생명 그룹’으로 그룹 명을 교체할 것까지 고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룹 관계자는 “한화증권을 대형화하고 현재 보유중인 투자신탁운용과 함께, 대한생명을 묶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 그룹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장학만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5/10 15:17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