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수사는 지금부터

불법정치자금 조성 등 '판도라 상자' 열릴까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진승현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권 전 고문의 경선자금 개입 및 진승현, 최규선 게이트 등의 검찰 수사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특히 ‘핵심 실세’의 대명사로 통하던 권씨의 구속은 현재 진행중인 각종 게이트 수사에서 어떤 성역도 두지 않고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검찰의 의지를 과시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정치권과 권력 핵심을 향해 칼끝을 정면 겨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김 대통령 아들인 홍업ㆍ홍걸씨에 대한 검찰의 소환 및 사법처리 수순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 큰 파장 예고

검찰 수사 핵심은 권씨의 정치자금 부분이다. 검찰은 권씨 스스로가 ‘정거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여권 정치자금의 보관창구 역할을 해온 점에 주목, 불법 정치자금 운용 여부를 집중 수사할 예정이다.

권씨는 2000년 8ㆍ30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당시 김근태, 정동영 의원에게 각각 2,000만원을 지원한 사실을 시인한 바 있고, 김 의원은 영수증 처리 등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고해성사’한 상태다.

검찰은 권씨의 자금출처 및 다른 정치인에 대한 자금공여 여부 등도 조사할 가능성이 높아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동료 의원에게 자금을 편법 지원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정치권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권 전 고문의 ‘최규선 게이트’ 연루 여부도 중요한 수사 포인트다. 권씨는 해외인맥이 두텁다는 점 등을 들어 최씨를 특보로 중용한데다 아들의 취업 과정에서 최씨의 도움을 받았고, 최씨는 권씨의 특보라는 사실을 내세워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이 최근 법원에 낸 탄원서에서 “2년 전 최씨의 문제점을 청와대에 보고하자 권노갑씨와 홍걸씨가 노발대발했다“고 주장한 것도 권씨가 최 게이트에 연루됐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전 차장이 권씨를 방문, 최규선씨 등에 대해수시로 개인적 차원의 정보보고를 한 사실도 국정원법 및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 검찰은 특히 진씨의 4ㆍ13 총선자금 살포설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도 최종 확인작업을 벌일 것으로 알려져 한동안 정치권에 한파가 몰아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권씨와 같은 유력인사의 금품수수 혐의가 확인된 것은 없지만 권씨와 김방림 의원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될지 여부는 자신할 수 없다”고 말해 광범위한 내사가 진행중임을 내비쳤다.


영욕의 정치인생, 권불십년 실감

권 전 고문은 1997년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이후 5년 만에 다시 영어의 신세가 됐다. 김대중 대통령을 40여년간 보좌해왔던 권 전고문의 이번 구속은 동교동계 구파의 정치적 몰락과 궤를 같이 한다.

그는 야당시절부터 ‘DJ 사단’을 이끌면서 ‘동교동계 맏형’으로 불렸고, 현 정권 출범 이후에도 최고 실세로 공천과 산하 단체장 인사 등에 개입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그의 별명은 권력의 핵심(權府)이라는 뜻에서 ‘권부’이다.

하지만 권력의 2인자라는 소리를 들어온 그의 정치 행보는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1997년 2월 당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4차례에 걸쳐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이듬해 8월 8ㆍ15특사로 풀려나 복권될 때까지 1년 6개월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는 복권된 후에도 김중권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종찬 전 국정원장 등 여권 신주류에 밀려 일본 등 해외를 떠돌았으며 98년 12월 귀국 후 99년 2월 국민회의 고문으로 정치에 복귀할 때까지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2000년 4ㆍ13 총선 당시 스스로 출마를 포기하면서 공천 교통정리와 산하단체장 인사를 주도하고 그 해 8ㆍ30 전당대회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됐다. 최규선씨가 권 전 위원의 특보를 자처하며 김홍걸씨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던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그는 정동영 고문을 비롯한 당내 쇄신파의 ‘인적쇄신’ 요구에 밀려 2000년 12월 ‘순명(順命)’이란 말을 남기고 최고 위원직을 사퇴했고 지난해 3월 마포사무실을 개소하고 이인제 의원을 대선후보로 밀면서 ‘킹메이커’로서의 변신을 노렸다.

결국 그는 올해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 의원이 패하면서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잃었고 다시 수감되는 비운을 겪게 됐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0 15:50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