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昌의 전쟁] 갈등 해소할 겸손한 인물이 승리한다

정치ㆍ사회ㆍ경제ㆍ행정학 교수들이 보는 바람직한 차기 대통령상

국가 지도자는 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한다. 특히 대통령이 행정ㆍ국방ㆍ외교 등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국내 정치 상황에서 최고 지도자의 비전과 역량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하다. 이는 역으로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선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주간한국은 사실상 여야 대통령 후보가 확정된 것과 때를 맞춰 ‘바람직한 차기 대통령상과 차기 대통령의 주요 과제’라는 주제로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기획조사를 실시했다.

주요 대학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행정학 교수 10명을 대상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인 국민이 유념해야 할 사안’과 ‘차기 대통령이 시급히 해야 할 국가적ㆍ역사적 당면 과제’ 등 10개항을 질문. 이에 대한 답변을 종합ㆍ분석 했다.


지역주의 극복이 제일 시급

각 대학 교수들이 꼽는 바람직한 차기 대통령상은 지역과 계층으로 갈라진 국민들을 하나로 융화 시킬 수 있는 ‘통합 대통령’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IMF 위기를 거치면서 계층간 위화감이 확대되고 지역 분할이 심화돼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외환 위기 직후 CEO형 대통령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서로 갈라진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해 어루만져줄 수 있는 통합형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우리 사회는 빈부 격차가 점점 커지고, 지역 갈등도 심해져 내부 갈등이 봉합 되지 않으면 선진 국가로의 발전이 어렵다”며 “이런 갈등 구조를 극복해 조화롭게 국민을 아우를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질문에 응한 10명중 6명의 교수가 ‘통합 대통령’을 꼽았다.

바람직한 차기 대통령상으로 ‘경제 대통령’(3명)을 꼽는 교수들도 있었다.

김병국 고려대 교수는 “금융 구조조정을 비롯해 그간 추진해온 개혁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어 시장 경제를 정착시키느냐 못하냐가 차기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다”며 “이 개혁이 실패하면 그간의 국가 경제 재건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경제를 살릴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도 “한국 경제가 현재 외형적으로는 IMF에서 회복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 탄탄한 기초가 없는 허상 위에 서 있는 상태”라며 “지금 전세계는 국경과 전선이 없는 경제 전쟁 시대에 돌입해 있다. 경제 대통령을 중심으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뚫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리더십과 개방적 사고 여부에 주목

‘유권자들이 차기 대통령을 선택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덕목’으로 상당수 교수들은 ‘리더십과 개방적 사고를 갖고 있느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일영 교수는 “YS, DJ 등 그간 독재 정권에 대항했던 민주 투사 출신의 대통령들이 10년간을 통치해 왔지만 반대 세력을 포용하는 넓은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차기 대통령은 반대파를 포용하면서 국가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을 우선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우 한양대 교수도 “한 나라를 끌고 간다는 것은 개인적 인격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국민을 통합하는 포괄적인 의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그간 비전이나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들은 있었지만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해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 경직된 상태에서 국가를 운영해왔다. DJ의 경우도 이런 유연성 부족이 비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초래한 원인이 됐다”며 지도자의 개방적 사고를 강조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도 “21세기의 대통령은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는 고독한 결정자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이념적 논쟁을 모두 수용하고 조정할 수 있는 열린 사고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대통령이 가장 시급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교수들은 국민 통합을 첫손 꼽았다. 백창재 서울대 교수는 “그간 역대 대통령들은 알게 모르게 지역과 계층간의 갈등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온 게 사실”이라며 “결자해지 차원에서도 이런 지역간, 계층간의 분열상을 통합 시키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도 “차기 대통령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3김 시대로 대표되는 지역 구도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적 공감대 이끌어낸 대북정책이어야

차기 대통령의 대북 정책의 기조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차기 정권의 대북 정책이 DJ정부에 비해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남북 통일의 민족적 숙원을 이루기 위해선 현 DJ 정부의 햇빛 정책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병국 교수는 “DJ의 대북 정책의 방향은 옳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국회나 국민 여론의 중지를 모으는 절차를 무시하는 바람에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된 것”이라며 “대북 정책에 방향에 앞서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합리적인 절차와 보폭 조절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창 교수는 “대북 정책은 미리 정해진 원칙을 설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북측 반응이나 주변 정세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유연하다고 말하는 햇볕 정책 자체도 실제로는 퍼주기식의 경직된 기조위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탈미 위험하지만 자주적 역량 키워야

차기 대통령의 외교 정책, 특히 대미 외교에 대해서는 현재 보다 자주적이고 독자적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특히 교수들은 대미 종속 외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차세대 전투기 선정에서 미국의 F-15가 결정된 것을 지적했다.

백창재 교수는 “급진적인 탈미 정책은 위험 하지만, 탈냉전 시기에 미국의 대동북아, 대한반도 정책 변화에 따라 우리도 외교 정책에서 보다 자주적으로 국익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는 “대미 외교는 대북 문제와 경제 통상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눠지는데, 대북 문제는 최근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삐걱거리고 있다.

F-15 전투기 결정에서 보듯 현정부는 너무 떠밀려서 하는 측면이 강하다. 경제 부문에선 DJ정부는 역대 가장 친미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통상 마찰도 없었고, IMF 모범생이라는 치욕적인 말도 들었을 정도다”라고 지적하며 “차기 정권은 대미 정책에서 보다 자주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진우 교수는 “현재의 미국과의 문제는 근본적인 철학의 괴리에서 온 것이라기 보다는 기술적인 불협화음인 측면이 강하다”고 진단하며 “현재의 햇볕정책의 기조에서 미국과 좀더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을 우리 편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도 “지금처럼 미국과 대북 정책에서 갈등을 겪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DJ 정부 보다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문, 학력 주요변수 안될 것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부를 가를 최대 변수로 ‘지역주의’가 손꼽혔다. 박재창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시 여겨기는 학연, 지연, 혈연 같은 프라이머리 그룹(1차 집단)이 모두 지역적 네트워크 속에 포함돼 있어 지역주의는 가장 현실적인 변수로 작용해 왔다”며 “지역 주의는 한번 생겨나면 없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지역감정의 실존을 인정하는 대신 지방자치제와 지역정당의 활성화, 권력 분권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 지역주의를 줄여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일영 교수도 “군사정권이 지역 감정을 만들었지만 민주화 이후 오히려 지역 감정이 심화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3김은 지역감정의 최대 수혜자이다”라고 지적하며 “차기 정권에서는 다소 나아지겠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진우 교수는 “민주당 지지도가 낮았음에도 노풍이 일어난 것에서도 볼 수 있듯 이번 대선에서는 그간의 지역 구도가 노무현 후보에 의해 희석돼 인물 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노 후보의 인간적 매력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어필하느냐가 변수”라고 말했다.

강원택 교수는 “노무현 후보가 20~30대의 젊은 층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주의와 더불어 ‘세대 변수’가 어느 선거보다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의 학력, 가문, 성장 배경 등의 출신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6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모종린 교수는 “국내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성장 배경이 특정 이념이나 사상으로 연결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념 선호도에 따라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반면 임혁백 교수는 “그간 한국의 엘리트 계층이 한국 정치를 도맡아 한 것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컸다”며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고학력, 엘리트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작용해 이번 대선에서는 학력이 주요 변수로 작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임제, 문제, 4년중임제 고려해볼 때

‘현행 5년 단임제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10명의 교수 중 절대 다수인 9명이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백창재 교수는 “대통령 5년 단임제는 레임덕 발생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폐단이 있어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국 교수도 “현행 5년 단임제로는 선거 비용을 낭비할 뿐 아니라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없다”며 “총선, 지방선거 등과 함께 선거 시간표를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차기 대통령은 개혁성과 보수(안정)성 중 어느 쪽을 더 요구 받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개혁성 쪽이 보수성보다 약간 많았다. 상당수 교수들은 “한국 정치를 개혁과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 “개혁과 보수 중 하나는 선택하면 누구를 지지하는가 하는 정파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 같아 대답이 곤란하다” 등등의 답변 불응답이 가장 많았다.

한편 교수들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폐해를 지적해 달라’는 질문에 ‘정치권의 부패’, ‘정치인의 자질 부족’, ‘정당제도의 낙후성’, ‘비현실적인 정치자금’ 등의 예를 지적했다. 12월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해 달라는 질문에도 대부분이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0 16:26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