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 산책] 술과 한의학② 맥주의 두 얼굴

요즘처럼 춥지도, 덥지도 않은 한가한 늦봄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야외 카페에 앉아 맑은 유리잔에 담긴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즐기고 싶다. 저무는 해가 비추는 맥주의 황금 빛은 언제나 풍요로운 저녁 들녘과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생각나게 한다.

맥주는 맥아 또는 맥아와 녹말질의 원료, 호프 등을 주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뒤 여과하여 만든 술이다. 맥주는 BC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 민족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보리를 건조하여 분쇄하고 이것으로 빵을 구워낸 후, 빵을 부수고 물을 넣어 자연 발효시켜서 만들었다.

BC 3000년경에는 이집트에서도 맥주를 제조하였고 이 기술이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전해졌다. 이후 수도원에서 더 나은 맥주를 만들게 되었고 15세기 이후 맥주에 호프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에 파스퇴르가 열처리 살균법을 발견하여 보존 기간이 길어지게 됐고 한센이 효모를 순수 배양시킴으로써 맥주의 품질이 더욱 좋아졌으며 폰린네가 암모니아 냉동기를 발명하여 공업적 양조가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광고를 통해 많이 소개된 것처럼 비열처리 공법이 개발되어 더욱 맛있는 맥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맥주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원료는 맥아다. 맥아는 보리의 싹을 틔워 건조시킨 것으로 이렇게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양조에 필요한 효소가 생긴다. 이외도 맥주의 상쾌함과 알싸한 맛을 더해주는 호프와 맥주의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녹말 옥수수가루 쌀 등이 첨가된다. 이런 원료들로 맥아즙을 만들고 이를 발효해 여과시켜서 맥주를 만들어낸다.

보리는 차가운 성질을 가진 곡물로 한약에 쓰이는 약재다. ‘본경소증’이라는 책을 보면, 보리는 맛은 짜고, 기는 약간 차가우며, 당뇨를 치료하고, 열을 내려주며 기운을 생기게 하고 소화기를 조절한다고 나와있다. 여기에 싹을 틔운 맥아는 소화제로 흔히 쓰이는 약재다.

호프는 뽕나무과의 다년생 넝쿨식물로 서늘한 지역에서 자라는데 이와는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류의 약재로 뽕나무가 있다. 뽕나무 뿌리는 맛은 달고, 기가 차가워서 폐 속의 물기를 없애고 침에 피가 섞이는 증상을 치료하고, 열 때문에 생기는 갈증과 부종, 복만 등을 치료하며, 뽕나무 잎은 추웠다 더웠다 하면서 땀이 나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맥주에는 똑같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작용이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밝혀진 바로는 맥주 효모는 고혈압이나 빈혈, 피부와 모발의 노화방지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며, 유산균의 증식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 밝혀진 바로는 항암 작용도 있다고 한다. 다만,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는 만큼 이렇게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부작용을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맥주는 찬술이므로, 평소에 몸이 차가운 사람이나 소변을 자주 보는 사람, 장이 차가운 사람,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마시면 좋지 않은 작용을 할 수도 있다. 몸이 더 차가워진다거나, 감기가 더 내부 장부로 들어가서 설사로 변한다거나, 생리통이 심해진다거나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상태를 잘 보고 맥주가 적당한지 한 번쯤 돌이켜 보는 것이 음주 후유증을 피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만약 내 몸이 맥주를 부른다면 잘 보관된 신선한 맥주를 시원하게 한 뒤 탄산가스가 날아가는 것을 방지해 주는 거품과 함께 즐겁게 마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경섭 강남경희한방병원 원장

입력시간 2002/05/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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