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명보' 16강 꿈을 쏜다

"늙은 생강이 맵다",창과 방패의 월드컵 대표팀 쌍두마차

“월드컵 16강 진출은 황선홍과 홍명보 두 노장의 발끝에 달렸다”

2002 한일월드컵 개막을 목전에 둔 지금 국민 관심은 온통 축구대표팀에 쏠려 있다. 안방 대회인 만큼 홈 그라운드의 잇점을 살린다면 월드컵 사상 첫 승은 물론 16강 진출도 허황된 욕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축구대표팀의 중심에는 황선홍(34ㆍ가시와 레이솔)과 홍명보(33ㆍ포항)가 버티고 있어 기대 또한 더욱 크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월드컵에만 3연속 출전하는 등 최근 10여년 동안 한국 축구를 이끌어 온 이들도 마지막이자 네 번째 출전이 될 한일월드컵 16강 진출을 향한 투혼을 불태우고 있다.

한국 축구를 논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족적을 남겨온 두 선수지만 정작 한일월드컵을 앞두고는 곡절도 적지 않았다. 2000년 12월 부임한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이 강한 체력을 강조하는 등 젊은 피를 선호한다는 ‘풍문’이 떠돌면서 노장들은 찬밥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7개월 동안 무려 63명을 테스트한 히딩크도 결국 공ㆍ수의 핵심 역할은 이들에게 맡겼다. ‘국민적 영웅’인 이들을 대표팀에서 제외시키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 작용한 탓도 있지만 이들의 경험과 기량 리더십은 버리기 힘든 카드였다.

이들은 단내가 나도록 뛰어야 하는 체력 테스트인 20m 왕복달리기에서도 젊은 피를 능가하는 등 몸을 사리지 않고 있다. 스피드는 계속 높이고 휴식시간은 점점 줄이면서 20~30m거리를 4~8회 왕복하는 테스트에서 황선홍은 세계 수준(120회)을 크게 웃도는 138회를 기록, 후배들을 무색케 했다.

불과 2개월전인 3월 테스트에서 96회에 머물러 체력에 관한 한 히딩크 사단의 낙제생이었던 홍명보도 128회를 기록, 주위의 우려에 종지부를 찍었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번번이 쓰디쓴 좌절을 맛본 이들은 나이로 볼 때 마지막 기회인 한일월드컵에서 12년 동안 쌓인 한을 풀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다.


공격 선봉장 내가 맡는다

대표팀의 가장 확실한 스트라이커 황선홍은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5월 16일ㆍ부산) 출전을 자청했다. 가벼운 어깨 통증으로 대표팀 훈련의 70~80% 정도를 소화해 온 그는 실전 공백이 길어지면 골 감각도 무디어진다며 히딩크를 졸라댔다. 그만큼 골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다.

팀내 최고참이자 차두리(22ㆍ고려대) 최태욱(21ㆍ안양) 이천수(21ㆍ울산) 등 어린 선수들과 함께 최전방을 누빌 황선홍은 노련미와 파괴력으로 상대 골 문을 휘젓는 임무를 띠고 있다. 최고의 ‘킬러’답게 우리팀의 한일월드컵 대회 첫 골은 물론 고비마다 매서운 슛 맛을 보여줘야 한다.

4월 13일 J리그 나고야전 이후 어깨 통증을 겪어온 황선홍은 “부상 회복속도에 만족한다”면서 “폴란드와 미국 포르투갈 등 D조 맞상대와의 경기가 열리는 6월초면 최상의 컨디션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은 황선홍이 한국 축구사에 남을 ‘스트라이커의 교본’을 제시할 마지막 찬스다. 또 아쉬움으로 점철된 월드컵 도전사에서 ‘골결정력 부족’의 굴레를 혼자 뒤집어 쓰다 시피한 악연을 끊어야 한다.

실제 황선홍은 물이 한창 오른 30세 전성기인 98년 프랑스대회에서 무릎부상 때문에 엔트리에 오르고도 벤치신세를 져야했다. 94년 미국대회때도 수차례 득점찬스를 무산시키며 고작 1골(독일전)을 얻는 데 그쳐 국민들을 실망시킨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황선홍은 A매치(국가대표 경기)에 95회 출장, 49골을 올린 기록이 말해주듯 2경기당 1골 정도는 뽑아내는 등 세계 정상급 페이스를 유지해 왔다. 위치선정과 돌파력 헤딩 등 스트라이커의 자질을 두루 갖춘 그는 최근에는 플레이메이커에 가까운 처진 스트라이커의 역할도 소화해내고 있다.

3월 핀란드 평가전에서 2골을 뽑아내 대표팀의 골가뭄을 해소한 황선홍은 “반드시 내가 골을 넣어야 한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귀포 훈련 기간인 5월 2일 돌아가시는 바람에 임종도 하지 못한 할아버지(황도성ㆍ향년 83)와 맺은 “반드시 골을 넣겠다”는 약속을 꼭 지킨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최고 리베로…자물쇠 수비 펼치겠다

홍명보도 한국 축구의 산증인이라 할 만큼 대표팀과 함께 영욕을 누려왔다. 그러나 지난 3번의 월드컵대회를 떠올리면 영광보다는 아쉬움이, 뿌듯함보다는 자괴감이 더 크게 남는다. 황선홍도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을 앞두고 있지만 98년 프랑스대회에선 명단에만 올랐을 뿐이어서 홍명보와 차이가 난다.

1990년 2월 노르웨이전에서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홍명보는 A매치 124회 출장, 한국 선수들 중 최다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월드컵 데뷔 무대인 90년 대회에서 조 예선 3경기를 모두 소화, 스타로 발돋움한 그는 ‘아시아의 베켄바워’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계 올스타팀 단골 멤버로 뽑혀왔다. 월드컵에서 두 골(94년 미국대회 스페인ㆍ독일전)을 터뜨린 선수도 한국에선 그가 유일하다.

그러나 최종수비수이자 주장으로 나선 98년 대회에서 네덜란드에 0_5로 참배하는 등의 수모를 그는 잊지 않고 있다. “4번씩이나 출전하면서 16강은 커녕 1승도 올리지 못한다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 같다”는 표현대로 그는 과거의 개인적 영예는 묻어둔 채 오로지 16강 진출에 모든 걸 걸고 있다.

그는 넓은 시야와 날카로운 패스, 대포알 같은 슈팅 등 기량이 뛰어난데다 맏형을 연상케 하는 리더십이 단연 돋보인다. 한때 부상에 시달린 홍명보 대신 ‘대체 선수’ 물색에 나섰던 히딩크도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팀워크를 엮어내는 능력을 인정, 다시 주장을 맡기는 등 신뢰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컨페더레이션컵 이후 왼쪽 정강이 피로골절을 이유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뒤 탈락설마저 나돌았지만 엄격한 자기관리를 통해 3월 유럽 전지훈련서 완벽하게 재기하는 등 근성도 남다르다.

역시 30대인 최진철(31ㆍ전북) 김태영(32ㆍ전남)과 함께 스리백 라인을 구축한 홍명보는 올들어 튀니지전 이후 지켜온 대표팀의 5경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갈 태세다.

6월초면 최고의 전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히딩크의 말처럼 갈수록 조직력과 기량이 늘어남에 따라 자신감에도 가속이 붙고 있다. 홍명보는 “히딩크 감독이 공격에도 적극 가담하라고 주문한다”는 말로 철통수비는 물론 골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종수 체육부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2:50


이종수 체육부 j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