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맞은 이회창 기획 "바로 이 그림이야"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 서청원 대표체제 구축으로 대선 승부수에 탄력

한나라당 제4차 전당대회가 열린 5월 10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서청원 의원이 유세 연설 도중 갑자기 양복 웃저고리를 벗어 던졌다.

서 의원은 이어 넥타이까지 풀어 헤친 뒤 격정적인 연설을 토해냈고, 대의원들은 열광적인 박수로 이에 호응했다. 동시에 이를 지켜보던 이회창 후보의 핵심 참모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 참모의 입에서는 “잘 될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개표가 끝난 뒤 이 참모는 “그림이 제대로 그려졌다”고 말했다.


서청원 1위, 강창희 2위는 바라던 바

개표 결과는 서청원 의원 1위, 강창희 의원 2위. 김진재 강재섭 박희태 하순봉 의원이 그 뒤를 이어 최고위원 자리에 올랐고, 여성 몫의 최고위원은 김정숙 의원이 차지했다. 민주계인 서 의원을 빼면 모두가 민정계 출신이다. 부산ㆍ경남 지역에서만 3명이 뽑혔다.

안상수 홍준표 김부겸 의원 등 변화를 내건 소장파의 지도부 진입이 좌절됐다. 민정계가 당을 장악했다거나 영남당임을 재확인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진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그럼에도 이 후보측은 결과에 흐뭇한 표정들이었다. 서청원 의원과 강창희 의원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때문이었다. 사실 이 후보는 이번 최고위원 경선 과정 동안 의식적으로 중립지대에 서 있으려 애썼다. 불공정 경선 논란이 불거질 것을 우려한 탓이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이 후보측이 바람직한 모양새를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건 다름아닌 서청원 의원과 강창희 의원의 선전과 이들을 중심으로 한 체제였다. 이번 최고위원 경선 결과를 보면 결과적으로 이러한 이 후보의 속내가 알게 모르게 대의원들의 표심을 제대로 파고 들었음을 알 수 있다.

당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실제 움직였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심지어 ‘이회창의 기획작품’ 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서청원 대표 체제는 이 후보에게는 대선 승부수나 마찬가지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이 후보로서는 최선의 러닝메이트가 필요했고, 이 러닝메이트가 바로 서청원 의원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이 후보의 한 참모는 ‘대선 후보 이회창-당 대표 서청원’의 구도를 가리키며 “재료는 제대로 준비 됐다. 이제는 이를 잘 짜맞추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싸움 닭’ 서청원의 힘과 YS지원 기대

이 후보측이 가장 높이 사는 서청원 대표의 능력은 다름아닌 대여 공격력이다. 대선 정국이 평시가 아닌 전시 체제인 만큼 이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이다. 오랜 야당 생활을 하며 독재권력과 치열하게 맞서 싸워 온 경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의 선명성도 이 후보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다. 그가 당의 간판이 되면 당의 민정계 색채가 일정 부분 탈색될 수 밖에 없다. 한 당직자는 “서 의원이 대표로 버티고 있으면 민주당도 우리 당을 수구 집단으로 일방적으로 몰아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그의 가치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고려하면 더욱 돋보인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YS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 스스로 한나라당과 상도동과의 가교 역할을 자임했고, YS 또한 경선이 끝나자 마자 그에게 축하전화를 한 데 이어 그 다음날 바로 만찬에 초청했다.

과연 YS가 어느 수준까지 한나라당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나갈 지는 속단키 어렵지만 서청원 대표 체제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당내 통합에도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민주계이면서도 3당 통합 이후 민정계 출신의 중진들과 두루 잘 지내왔다. 이회창 총재 체제 때 사사건건 이 총재와 부딪쳤던 비주류들도 서 대표에게는 비교적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여기에다 당내의 젊고 개혁적인 의원들에게도 그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실제 이번 경선에서 당내의 대표적인 소장파 그룹인 미래연대는 그를 반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상당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회창 후보와의 교감 등 과제 많아

서청원 대표 체제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회창 대선후보와의 교감 수준을 빠른 시일 안에 최대한 끌어올리는 일이다. 빌라 문제, 가족문제 등 이 후보의 개인적인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지지도가 곤두박질 했을 때 항상 교감 수준이 문제가 됐었다.

이 후보의 최측근 인사조차 진상을 제대로 파악을 못하는 바람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 경선서 고배를 마친 이 후보의 측근 인사들을 아우르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이 후보의 몫이지만 서 대표 또한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최성욱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5:35


최성욱 정치부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