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주말이 확 바뀐다

공무원·대기업 확산추세, 일상탈출로 재충전 기회 삼아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젠 떠나라!'

전봉운(40) 사성전자 법인회계팀 과장은 5월 셋째 주 토요일(18일)가족과 함께 충남 태안 안면도에서 열리는 '국제 꽃 박람회'에 1박 2일 주말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결혼기념 10주년을 맞아 그는 부인에게 "5월 장미축제를 구경 시켜 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큰 아들 상민(9)이도 함께 떠난다.

이젠 웬만한 초등학교도 '재량수업'을 실시해 부모와 야외 현장을 찾는 아이들에겐 살아있는 야외 현장 학습. 전 과장은 금요일까지 끝내야 할 업무가 산더미 같이 쌓여있지만 마음만은 가볍다. 사내 한 입찰 전답 팀의 프리젠테이션 준비자료 수치를 뽑는 일 등 주중 밤 11시가 넘어야 일과가 끝나는 전 과장에겐 토요일만이 기다려질 뿐이다.

평소 금요일 밤이면 습관처럼 늦게까지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벌여야 한주가 다간 듯한 느낌도 이젠 옛 얘기다. 토요일을 업무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시나'으로 손꼽는 회사원은 단지 전 과장만이 아니다. 지난해 4월부터 격주 휴무제를 실시중인 삼성전자의 전사원에겐 매달 1·3주 토요일이 '일상의 탈출구'인 동시에 생산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다.


기업문화로 정착한 주말혁명

기업들의 주5일 근무제 실시는 이젠 큰 흐름으로 선큼 다가오고 있다. 노·사·정 위원히가 주5일 근무제에대한 합의에 진통을 겪으며 아직 그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시중 은행을 주축으로 한 금융산업 노사가 자체적으로 주5일 근무제를 7월1일부터 시행한다는 데 기본적으로 합의했다.

5월중 각 기업들도 사업장 별로 임금단체협상을 통한 주5일 근무제 시행 확산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명분을 앞세운 '노·사·정 위원회'란 큰 그릇에서 보다는 '끼리끼리'개별 사업장 단위의 합의도출이 잇따를 전망이다.

중앙부처 행정기관 공무원들의 주5일 근무제 시범 운영이 처음 시행된 4월 마지막 주 토요일. 녹생의 푸르름만 봐도 기분전환이 될 듯한 드넓은 경기 용인 애버랜드 잔디구장엔 넥타이를 벗어 던진 '세무공무원'들이 가족들의 환호 속에서 뜨거운 축구열기에 휩싸였다. 가벼운 체육복 차림의 손영래(54) 국세청장등 국세청 고위 관계자들은 서울지방청등 6개 지방 국세청 대항 축구대회에 참석, 보기 드문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주5일 근무제의 첫 날을 청 내 동호인 모임 조직활성화와 직원화합의 기회로 삼은 국세청 축구대회는 500여 명의 가족과 지역별 축구 동우 회원들이 모처럼 함께 만드는 '봄 잔치 마당'이었다. 흰 모자 사이로 맺힌 땀을 닦아내는 손 청장은 "비록 지금은 주 5일 근무제가 시범운영 되지만 앞으로 상시화 될 경우 그 동안 등한했던 '가족서비스'를 위해 가까운 시골에라고 주말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 비엔날레를 다녀온 정희경(38) 한빛은행 신용정책팀 대리는 최근 레저용 차량(RV) 1대를 구입했다. 은행의 7월 토요 휴무제 시행 움직임에 맞춰 ㅌ고 다니던 승용차를 교환할 시기인데다 특소세 환급 조치와 낮은 대출금리 등을 고려하면 최적의 구매시기라고 판단해서다.

"7월부터 토요 휴무제가 꼭 실시되지 않더라도 주5일 근무는 대세잖아요"라고 말하는 정 대리는 "주말여가를 가족과 함께 즐기려면 큰 아들의 자전거와 하이킹 장비를 싣기 편한 RV차량이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정 대리는 요즘 주말 드라이브가 생활 최고의 낙이다.

최근 노동부가 기업 5,027개를 대상으로 휴무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5일제 시행업체는 191개사로 월1회 토요휴무제를 실시중인 기업은 62개, 월2회 784개, 월3회 52개사, 기타 42개 등이었다. 현재 토요 휴무레를 채택중인 기업은 전체의 22.5%인 1,131개 업체에 달했다. 벤처 기업인 한글과 컴퓨터와 나모인터렉티브 등은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들어가 그 문화를 정착시킨 지 오래다.

또 삼성과 LG, SK, 두산, 제일제당 등 대기업들도 지난해를 기준으로 대거 격주 토요 휴무 제를 실시 중이어서 일반 직원들의 '주말 혁명'은 사실상 이미 기업 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건전한 형태로 변하는 여가활동

외환위기 이후 1999년 초 영구 최고 의 유통업체인 테스코와 합작한 삼성테스코(주)는 합작 1년 후인 지난해 4월부터 주5일 근무제를 시행중이다. 이 회사의 고영실(29) 마케팅팀 주임은 토요 휴무 실시이후 스스로 자신의 생활변화를 보며 3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선 유통업체가 토요일날 쉰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주5일간 30씩 일을 더 함으로써 자신이 맡은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또 외국인 상사가 취미를 물을 때면 "시간이 없어서…"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입에 붙었지만, 막상 주어진 토요일 여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한동안 슷로 '여가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

집에서 낮잠을 자거나 TV를 보면서 토요일을 보냈던 고 주임은 토요 휴무제 2개월이 지나면서 "뭔가를 해야 겠다"는 생각에 영어학원에서 토요일마다 운영중인 5시간 영어회화 특별반 수업을 듣기 시작 했다. 또 오후시간엔 최근 인기레저 스포츠인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에 참여하고, 겨울엔 스노우보드 타기에 취미를 붙였다.

고 주임은 "토요 휴무제를 실시하면서 스스로 생활의 변화를 만끽 할 수 있고 일요일엔 차분하게 주중계획을 세울 수 있어 '하루 더 쉴 수있는 여유'가 인생에 큰 자산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각 기업들의 주5일 근무제가 가시권에 글어오면서 '여가의 패턴'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가정보학)는 "막상 주5일 근무가 시작되면 일단 자신의 여가 선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에 봉착할 것"이라며 "그럴 경우 인터넷에 드러가 머저 자신의 관심 단어를 두드려보고 관련 사이트를 서핑하는 '관심분야 찾기'작업이 우선 선택사안"이라고 조언했다. 여가 활동 중 최고의 관심사는 단연 여행이다.

그러나 여행도 '먹고 마시고 노는' 형식의 금전 소비형 여가가 주류를 이뤄 여가활동의 고급·다양화·대중화에 따라 경제적으로 소외계층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높다. 그러나 테스코의 고 주임과 같이,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위주의 여가에서 차츰 자기시간과 가족에 맞는 건전한 여가 형태로 찾아가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강신겸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기업들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면서 성과위주의 인사관리를 강화할 것"이라며 "따라서 직장인들은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보다는 어학이나 정보기술(IT)등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자기 개발에 투자하는 경향이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5:38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