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같은 사람 없네, 큰 힘 발휘한 대우를 도와주게"

최규선씨 재계관련 주장에 삼성·현대·포스코 등 "불똥 튈라"전전긍긍

'붕어빵 안에는 왜 앙꼬(팥고명)가 없는가?'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의 주인공 최규선(42) 미래도시환경 대표가 구속되기 앞서 대필작가 허모씨에게 육성 녹음 테이프 9개를 맡겨 펴내려고 한 그의 자서전 '붕어빵...(가 제목)'의 파문이 재계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최근 최씨를 둘러싼 검찰의 수사 방향이 각종 이권 개입에 연루된 '청와대의 실세' 홍걸씨와의 관계에 우선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결국 '최 게이트'의 또 다른 접점은 그에게 '총알'을 제공한 재계의 '돈' 파이프 라인이라는 점에서 재계는 그 불똥이 언제 어디로 튈지 아무도 에측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앙꼬'의 파문은 검찰수사 수순상의 문제일 뿐 '돈줄'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개계가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최씨의 육성 녹음테이프에 따르면 최씨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전방위적으로 채널을 구축해 온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과연 그의 로비 대상 범위가 어디까지 였고 그 로비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금껏 알려진 바로는 치씨가 어떤 형식으로든 관계를 맺었던 기업은 DJ정권 초반에 재계의 선두주자로 꼽힌 대우 및 현대를 중심으로 국내 대표 민영화 기업인 포스코와 삼성, 한진 등이다.

최씨는 육성테이프에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말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의 방한을 성사시킨 사실을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고하러 간 자리에서 김대통령이 대우를 도와줄것을 지시한 것을 상세히 진술했다. 최씨는 테이프에서 "건실하고 잘 나가는 회사를 놔두고 '왜 하필 대우일까' 사람들은 의아하고 궁금했을것"이라며 "김대통령은 김우중씨가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것이라며 (왈리드 왕자를)이 회사 저 회사에 소개하지 말고 그냥 대우만 만나 투자유치를 시킬 것을 당부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우의 외자유치 성사 이후 왈리드 왕자와의 '신뢰'때문에 김우중씨가 '감사의 표시'로 준 7억원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 당선에 '큰 힘을 발휘 할 정도'로 정권 초기 김 대통령과 김우중 회장이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최씨의 주장을 고려할 경우, 일부에서는 현재 해외도피중인 김 회장의 귀국여부를 놓고 현 정권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정치자금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최씨는 녹음 테이프에서 "현대의 경우도 김 대통령 당선자가 그 후 도와줄 대상으로 찍어줘, 현대자동차에 5,000만 달러의 투자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현대측은 이와 관련 "최씨 이전부터 이미 알 왈이드 왕자가 참여하는 투자컨소시엄과 몇 차례 투자의향 협의를 가졌고 결코 최씨의 소개가 외자 유치를 이룬 직접적인 동기는 아니었다"고 최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초씨가 현대의 '왕자의 난'이후 현대아산 금강산 카니조사업과 관련, 스티븐 솔라즈 전 미 하운 의원 등을 통해 금강산 내 카지노 업체 유치 사업에 과여한 점 등을 미뤄볼 때, 결코 현대도 최씨의 로비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을 것라는 것이 재계의 지적이다.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 현재 가장 곤혹한 기업은 이른바 '모범적인 국민기업'으로 꼽히는 포스코다. 2000년 7월 유상부 포스코 회장을 비롯 최씨와 홍걸씨 부부가 만난뒤 포스코가 타이거풀스(TPI) 주식을 매입한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와 함께 활동한 김희완 전 서울시 부시장(현재 잠적중)이 포스코경영연구소 고문으로, 유 회장과 경영진의 검찰조사로까지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유회장과 초씨의 만남 이후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데이타가 한국전자복권 컨소시엄에서 탈퇴한 것이 체육복표사업을 놓고 이 컨소시엄과 경쟁했던 TPI를 우히 지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최 게이트(붕어빵)의 앙꼬'로 유 회장의 개입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최근 포스코 계열사 및 협력 업체들의 TPI주식매입을 포스코 본사의 국내 투자사업실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 가능성은 한층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휴회장의 힘이 실리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투자사업실이 계열사와의 협조에 나선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협력업체에 TPI의 주식을 떠넘겨야 할 만큼 주식을 처리하는 데 매달린 데는 사장 이상의 고위층의 지시가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한편 2000년 4월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사임이후 유 회장에게 거세게 불어 닥쳤던 여권 실세들의 퇴진 압력이 2001년 1월께 수그러지면서 그해 3월 유회장이 포스코 회장에 재선임된 것도 눈길을 끈ㄴ 대목. 이는 포스코가 TPI주식을 매입한 2001년 4월은 유 회장의 재선임이 확정된 후라는 점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더해주고 있다. 반면 포스코는 대미 통상로비 과정에서 최씨가 중요한 역할을 해 TPI주식을 매입했을 뿐 유 회장의 개입 가능성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최씨는 삼성의 경우"정권 입장에서 손봐줄 대상"이었는데 자신이 "이건희 회장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사우디 아라비아를 갔다 오는 등 삼성을 돕다가 사정의 표적이 돼 권력 핵심부에서 제거 되는 불운을 겪게 됐다"고 강조했다. 정권 초기 외자유치 활동을 벌이며 활약하던 최씨는 사직동 팀 내사를 받게 되고 당 실세로부터 집중 견제를 당한 이유가 바로 삼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또 지난해 5월부터 올 3월 중순까지 10개울간 한진그룹 게열사인 (주)한국공항의 비상임 고문으로 활동하며 매달 750만원의 급여를 받아왔따.

한진 측은 "한국공항이 지난해 인천국제 공항 개항당시 해외 항공사의 지상조업권을 따내기 위해 5월 초 퇴직한 임원으로부터 최씨를 소개 받아 비상임 고문으로 임명했었다"며 "그러나 3월 경쟁사였던 외국계 지상 조업사 들이 철수, 최씨의 역할이 없어져 비상임 고문 직을 해촉한 상태"라고 로비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학벌과 이력이 화려하고 영어에 능통한데다 외국기업의 생기를 잘 아는 최씨에 대해 어느 기업도 그에게 연줄을 대지 않으려는 곳은 없었다"며 "기업들 또한 최씨와의 관계를 통해 일정한 대가를 얻어내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관게자는 "아직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내 대기업들중 정권의 실세라는 사람이 접근할 경우, 이를 과감히 뿌리칠 수 있는 기업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5:41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