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외교, '거짓말' 망신살

영사관에 중국 공안 무단진입·탈북자 강제연행 방관, 도덕성에 큰 상처

일본 외교가 중국 주재 선양 총영사관의 중국 경찰 진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정직성과 도덕성이 크게 훼손되는 등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은 5월 8일 중국 경찰이 선양 총영사관에 무단 진입, 이미 망명요청을 위해 영내에 들어가 있던 북한 주민 2명을 강제로 끌어낸 후 나머지 주민 3명과 함께 연행해 간 행위는 공관 불가침을 보장한 빈 협약 위반이라며 항의했다.

이와 관련, 가와구치 요리코 외무성 장관은 10일 우다웨이 주일 중국대사에게 공관 침입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일본 외교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일본의 동의 하에 중국 경찰이 북한 주민들을 속전속결식으로 체포, 연행한 것이라는 정황 증언과 증거들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5월 11일 일본의 동의 하에 주민들을 연행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외교부는 일본 총영사관의 부영사가 허락을 해서 경찰이 총영사관 안에 들어갔으며 강제 연행에 대해서도 부영사의 동의를 얻었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어 또 다른 영사가 탈북자 5명을 연행한데 대해 “고맙다”고 사의까지 표명했다고 말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영사가 북한 주민 10여분간 방치, 영사가 휴대전화로 상사명령 확인 뒤 중국 경찰의 주민 연행 동의, 일본 비정부기구(NGO)가 북한 주민 망명 사전 경고 등 총영사관의 대응부재 및 연행방조 의혹을 제기했다.

5월 9일 밤 언론에 공개된 비디오 영상은 총영사관측이 중국 경찰의 무단 진입에 안이하게 대응했고 경찰의 탈북자 강제 연행을 묵인, 방관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 영상에는 5명의 북한 주민이 영사관 안으로 들어간 사실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일본 외무성은 10일 아침 열린 자민당 외교관계 합동 부회에 제출한 자료에 영사관 안에 들어간 주민은 2명이며 나머지 3명은 입구 근처에서 중국 공안 당국에 붙잡혔다고 설명, 물의가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 총영사관은 이와 함께 사건 초동 보고에서 중국 경찰의 무단 진입 사실을 누락한데다 외무성도 총리 관저에 늑장 보고를 한 것으로 전해져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정확한 실상은 선양에 파견된 일본 외무성 팀의 사실관계 조사가 나오면 어느 정도 가려질 전망이지만 일본 언론들의 보도와 중국측의 강력한 대응을 감안할 때 일본의 외교는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선양 총영사관측이 사건의 책임을 면해보기 위해 외무성 본부에 사건 전말을 축소. 왜곡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총영사관 직원들에 대한 징계는 물론 지휘책임이 있는 가와구치 장관에 대한 인책론이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가 일본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구속된 북한 주민들의 신병을 인도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이들의 신병을 어떻게 처리할 지 분명한 입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이 워낙 망명을 받아 들이는 데 인색한데다 북한과의 관계 등을 감안할 때 설사 탈북자들이 ‘원상회복’ 차원에서 일본 총영사관으로 인계돼 일본으로의 망명을 희망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일본의 경우 망명자 처리에 관한 국내 법률이 없으며, 1981년 난민 보호를 위한 국제 조약인 ‘난민 지위 조약’에 가입한 것이 고작이다. 특히 이 조약 가입 이후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경우는 284명에 불과할 정도로 문호는 거의 닫혀 있는 상태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5:57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