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세계여행⑨] 필리핀 마닐라

아픔이 묻어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접어들면서 바라보는 마닐라의 모습은 과히 혼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

마닐라만에 접하고 있는 항구도시 마닐라, 오랜 전통의 고풍스러움과 함께 현대적인 세련미를 고루 갖춘 독특한 면면을 보인다. 화려하면서도 거친 그리고 고급스러우면서 천박한 후진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 그 틈을 비집고 지나가는 지프니와 트라이시클 그리고 수많은 인파들, 정돈되지 않은 거리에는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대의 혼잡을 이룬다.

반면 마카티, 케손 등에서는 서울의 테헤란로에 버금가는 현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잘 정비된 도로를 따라 고층 건물들이 줄을 서 있고 거리에는 세련된 복장을 한 직장여성이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또한 고급 승용차들이 지프니와 함께 거리를 수놓아 필리핀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마닐라는 엄밀하게 말해서 수도권에 속한 한 도시를 가리킨다. 정식 명칭은 메트로 마닐라. 마닐라시를 비롯해 에르미타, 케손, 마카티 등 13개의 행정구가 하나의 수도를 이룬다. 우리가 흔히 마닐라라고 하면 메트로 마닐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중 파시그강을 따라 펼쳐지는 마닐라시가 메트로 마닐라의 구심점이 된다.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가장 역사에 먼저 등장하는 도시로 석양이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메트로 마닐라에만 약 1,200만 명의 인구가 모여 있으니 그 규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크고 넓다.

메트로 마닐라 내에는 스페인 제국시대 스페인의 아시아 요새였던 중세 성벽도시 인트라무로스, 전통적인 상업 중심지 에르미타와 말라테, 유서 깊은 파코와 루네따공원, 리잘공원 등이 볼거리. 다만 이들 유적지는 필리핀 역사를 느낄 목적이 아니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영웅 호세 리잘을 기리는 시민공원, 리잘공원

리잘공원은 쇼핑가인 에르미타에서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위치한다. 공원 내부에는 마닐라의 허파라고 할 만큼 숲이 무성하고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덕분에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휴식공간이 된다. 리잘공원은 필리핀의 국민적 영웅 호세 리잘을 기리는 공원이다.

스페인 식민 정책에 항거하던 리잘이 1896년 이곳에서 총살되어 그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공원을 조성해 두었다. 기념탑 뒤에는 그가 죽기 직전 조국 필리핀을 위해 남긴 시 ‘나의 마지막 고별’이 세계 주요 국어로 번역돼 전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에르미타에서 리잘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에 마닐라호텔을 만나게 된다. 마닐라 호텔은 1912년에 지어진 건물로 한눈에 그 오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세계대전 직후, 미군이 임시정부를 마련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조선호텔격에 해당한다. 북동쪽 부르고스 거리에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도 놓치질 말 것.


16세기 스페인시대의 유물 인트라무로스

마닐라 중심부를 흐르는 파시그 강의 남쪽 제방을 따라 가면 성벽도시로 불리는 인트라무로스가 세워져 있다. 16세기말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세워진 성벽 인트라무로스는 그 길이만 약 4.5㎞, 내부 면적이 약 19만4천 평에 이르러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에 충분했다.

교회, 학교, 정부청사는 물론 서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생활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어 외부와의 통제가 철저히 이루어졌다. 1898년 미국에 점령당할 때까지는 특히 심했다. 그 후 2차 대전으로 일본군에 대한 미군의 폭격으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지난 1979년 국가에서 관광유적으로 지정하면서 다시 복구되었다.

인트라무로스 관광은 산티아고 요새에 있는 인트라무로스 방문 센터에서 담당한다. 각종 안내 자료를 받을 수 있으며 인트라무로스 역사를 알 수 있는 홍보물을 상영하기도 한다. 인트라무로스 북서쪽에 위치한 산티아고 요새는 스페인 군대의 본부였고 호세 리잘이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되었던 곳이다. 파시그 강 하구를 내려다보는 전략적 요충지로 일본군 점령기간 동안 수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이곳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밖에 아시아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마닐라 대성당, 카사 마닐라 박물관, 산 아구스틴 교회 등이 볼거리.


활기가 넘치는 마비니거리

리잘공원에서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달리면 에르미타와 말라테지구가 연이어 나타난다. 마닐라 시민들이 평범한 삶을 살펴볼 수 있는 거리로 쉽게 말하면 유흥가가 밀집된 일종의 관광지구다. 에르미타의 마비니거리가 그 중심이 된다. 이곳에서는 여행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쇼핑센터, 선술집, 나이트클럽 등 관광객들이 즐겨 출입하는 명소들이 즐비하고 현지인들의 출입도 잦아 밤이면 늘 들뜬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그저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에 들어가 산 미구엘 맥주를 마셔보는 것도 독특한 체험이다. 아름다운 선율의 필리핀 여가수의 율동과 음악은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또 인근에 마닐라 대학이 위치해 학생들의 출입이 많아 늘 활기가 넘친다. 마비니거리와 함께 나란히 달리는 로하스 거리 역시 걸어 볼 만한 명소다. 로하스거리는 마닐라만을 끼고 있어 항구 특유의 정취와 함께 여러 호텔, 쇼핑센터 등을 지나게 된다.


대표적인 관광명소 팍상한 폭포

외곽으로 눈을 돌리면 마닐라를 대표하는 관광지 팍상한 폭포를 비롯해 히든벨리, 코레히도섬 등이 볼만하다.

팍상한 폭포는 마닐라에서 남동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가장 일반적인 관광코스의 하나로 급류를 거슬러 폭포까지 올라가는 '급류타기'가 일품이다. 관광객 2인이 방카라고 불리는 나무배의 가운데에 타고 앞뒤에서 사공 두 명이 끌고 당기며 1시간 정도 바위 위로 흘러내리는 급류를 오른다.

물보라를 맞으며 폭포가까이 다가섰다가 다시 폭포 밑을 돌아 나오는 코스로 웅장한 폭포소리에 고막이 멍해지고 물보라에 온몸이 젖게 되지만 그 스릴만큼은 만점이다. 또 수십미터가 넘는 웅장한 폭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 내려올 때는 속도감이 붙어 30분 정도 걸린다.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공들의 노력을 감안해 보통 팁을 건네주는 것이 관례지만 간혹 지나치게 많은 액수를 요구하는 사공들이 있어 사전에 흥정을 마치고 타는 것이 좋다.


▲항공-서울에서 필리핀 마닐라로 가는 방법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필리핀 항공, 세부 퍼시픽 4개 항공사를 이용하면 된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필리핀항공(02-774-0088)이 매일 주7회 운항하고 세부 퍼시픽(02-3708-8500)은 일월목금 주4회 운항한다.

▲입국-비자 없이 21일간 체류가 가능하다. 그 이상은 현지에서 약간의 수수료를 내고 쉽게 연장할 수 있다. 단 6개월 이상의 장기적인 체류는 서울의 필리핀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

▲시차-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리다. 우리나라가 자정이면 필리핀은 새벽 1시가 된다.

▲기후-건기(12월-4월)와 우기(5월-11월)로 구분할 수 있다. 3월과 5월 사이는 섭씨 25도에서 32도를 오르내리는 덥고 메마른 날씨, 6월과 10월 사이는 비가 많이 오고, 11월과 2월 사이는 섭씨 22도에서 28도 정도로 선선한 날씨다.



■ 지프니

지프니는 필리핀 시민들의 발이 되는 독특한 교통 수단이다. 화려한 색상과 장식으로 꾸며진 지프니(jeep+pony의 합성어)는 그 형태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코믹하다. 지프니는 미군이 쓰던 지프를 개조해 만든 일종의 승합 버스인데 4인승 지프보다 차제가 길다.

주인의 취향에 따라 색깔도 제 각각이고 차체에 새겨진 이름도 저마다 독특하다. 앞 유리창에 붙어있는 글씨가 목적지를 알리는 표시다.

도시에서 지프니는 마을버스 역할을 독특히 한다. 버스가 들어가지 않은 좁은 길까지 차가 들어가기 때문에 주로 서민들이 즐겨 이용한다. 또 지프니는 일정한 노선을 달리지만 내리고 타는 승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손님이 원하는 장소에서 어디든지 태워주고 내려주기 때문. 그래서 외국인이 이용하기란 쉽지가 않은 편이다.

우선 지프니 앞에 적힌 노선을 보고 자신이 가는 곳이면 어서 손을 들어 탑승 의사를 보여야 한다. 지프니가 서면 얼른 올라타고 자리에 앉으면 된다. 내릴 때도 크게 소리를 질러 내릴 곳을 얘기하면 된다.

필리핀 사람들은 주로 ‘바라(정지)’하고 소리를 치거나 천장을 두드려 하차할 의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요금은 처음 1㎞까지 2.5페소, 이후 1㎞마다 0.5페소가 추가된다. 러시아워 때는 타는 것도 어렵지만 요금을 기사에게 건네주고 받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돈을 건네주는 식으로 전달되고 잔돈도 앞 사람이 건네주는 식으로 돌려 받는다. 어떤 때는 뒷자리에 매달려 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게도 요금 적용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글ㆍ사진 전기환(여행작가)

입력시간 2002/05/2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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