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만에 다시 열린 경희궁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 복원사업 14년만에 시민 곁으로

조선 시대 5대 궁궐 중 하나인 경희궁(慶熙宮ㆍ사적 21호)이 복원돼 5월 21일 첫 공개된다. 1988년 경희궁터 복원 사업이 시작된 지 14년만의 일이다. 궁터 안에 있던 서울시립미술관은 정동의 구 대법원 자리로 이전, 17일 문을 열었다.

이로써 정전인 숭정전(崇政殿)을 비롯, 임금이 집무를 보던 자정전(資政殿), 임금의 초상을 봉안했던 태령전(泰寧殿), 숭정문(崇政門), 태령문(泰寧門) 등 주요 건물은 물론 조선 시대 담장 미술의 모범을 보여 주는 회랑(回廊)까지 모두 2만 9,786평의 역사 공간이 시민 곁으로 돌아 온다.


일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정궁

신문로 경희궁의 복원은 400여년 동안 이곳을 덮친 영욕의 결과다. 1617년(광해군 9년) 건립에 착수, 4년 만에 완성된 정궁이다. 원래는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문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발음이 같다 는 이유로 1760년(영조 36년)에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창궁과 창경궁을 합쳐 부르던 동궐(東闕)과 대조, 서궐(西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궁궐의 중요성은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친 임금이 머물렀다는 사실로 확인된다.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강점기이던 1910년 일본인 학교인 경성 중학교가 이곳에 들어 앉으면서 대부분의 주요 건물들은 헐리게 됐다. 이와 함께 면적도 절반으로 축소, 옛 모습은 오간 데 없게 됐다. 해방 후 이 곳에는 서울중ㆍ고등학교가 들어섰다.

경종 헌종 정조의 즉위식이 거행됐던 숭정전은 1926년 일인 사찰이었던 조계사(曹谿寺)에 팔려가 절의 소유로 전락했다. 공무 수행처였을 분 아니라 역대 선왕들의 어진(御眞ㆍ초상화)이나 위패를 임시 보관하기도 했던 자정전도 풍채가 절반 이하로 줄어 들었다.

훼손된 건물들은 조선 궁궐을 상세한 그림으로 기록한 ‘서궐도안(敍闕圖案)’에 의거, 복원됐다. 특히 일제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파괴한 태령전은 원형대로 복원(정면 5칸, 측면 2칸)한 것은 물론 현판 글씨를 석봉 한호의 글을 집자(集字)해 만들었다.

흥화문(興和門)은 1932년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을 위한 사당인 박문사(博文寺)의 정문으로 쓰려 떼갔던 것을 복원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시민들의 기증이 큰 몫

경희궁터 가운데 서울역사박물관이 차지하는 땅은 경희궁 유적이 발굴되지 않은 6,900평이다. 총사업비 64,157백만원(건축 공사비 34,256백만원, 전시공사비 29,901백만원)이 소요된 이 사업은 1985년에 계획 수립된 이래 1997년 12월 지하 1층 지상 3층(건축 면적 2,253평, 연면적 6,100평) 건물이 완공돼 일단락 지워졌다.

이 박물관은 민과 관의 합작품이다. 총 보유 유물 20,160점 중 운형궁이 자체 보유해 오고 있던 것이 6,206점(30.8%), 구입해 들인 것이 4,149점(20.5%)이다. 시민의 적극적 참여는 1996년 이래 서울시가 유물 소유자 등을 중심으로 추진해 온 사업의 결과다.

2000년 결성된 서울 태생자들의 모임인 ‘서울토박이회’를 중심으로 펼친 유물 기증 운동이 최대의 공신이다. 모두 9,804점의 기증분이 전체 유물의 반수인 48.7%를 차지한다.

기증 물품들은 대부분 족보, 문집, 시권, 교지 등 ‘집안 물건’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문중인 안동의 진성 이(李)씨 문중이 고문서 등 2,313점을 내놨고 동래 정(鄭)씨와 의성 김(金)씨 문중도 이에 동참했다.

공무원 김재종씨는 정년 퇴임을 하면서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포도그림 병풍 등 서화 37점과 도자기 50점 등 아껴 왔던 물건 87점을 내놓았다. 1월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 난 김씨는 “자식에게 물려 주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돈이 궁하다고 팔면 어떻게 할 지 몰라 걱정됐다”고 말했다.

또 국내 지리학계의 고(古)지도 전문가 이찬 서울대 명예교수는 1500년대에 제작된 조선팔도여지도 등 희귀 고지도 115점을 기증했다. 과학사가인 전상운 전 성신여대 총장은 조산말기 수표(水表)와 저울, 분청인화문 귀때발 등 89점을 내놓았다. 이에 박물관측은 지난해 ‘기증 유물 도록’을 제작, 개인 또는 단체 73곳이 제공한 유물 4,811점을 수록했다.

이 박물관은 ‘터치 뮤지엄’이다. 어린이 관람객들이 해시계, 계측 기구 등 각종 과학기구 놀이기구 생활용구 등을 직접 만져 보고 생생히 체험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일제시대 건립된 경희궁내 방공호를 철거, 임금의 산책로인 어도 복원 등 2차 공사를 2008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경희궁은 하절기(3~10월)에는 평일 오전 9~오후 6시, 토ㆍ공휴일 오후 7시까지이며,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9~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경희궁 안에 개방돼 있는 숭정전(崇政殿) 자정전(資政殿) 태녕전(泰寧殿) 금천교(禁川橋) 등의 비경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개관일인 21일은 오전 9시 30분~정오까지 길놀이, 시립국악관현악단의 축하 연주, 다과회 등 다채로운 행사도 펼친다(02)724-0135.


‘서울이 빛과 색’ 기획전 여는 시립미술관

서울시 미술관도 거듭난다. 경희궁터에서 14년 동안 대중 영상 문화의 홍수속에서 시민을 지켜 오다,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동 옛 대법원 자리로 가 4,100평으로 거듭났다. 덕수궁, 정동극장, 주한 미국과 영국 대사관 등 도심 숲 속의 유서 깊은 공간이 함께 한다.

한국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1,000여 점(서양화, 동양화, 조각, 공예, 사진, 판화, 서예, 설치 미술 제외)이 준비돼 있다. 개관을 기념, ‘한민족의 빛과 색’, ‘천경자의 혼’ 등 두 가지 대형 전시회를 마련했다.

흑백청적황 등 오방색(五方色)을 중심으로 한 ‘색으로 보는 한국 문화’, 생활소품의 색감을 주제로 한 ‘남겨진 빛과 남은 색’, 반상 구분에 따른 색의 사용을 보여주는 ‘잔잔한 빛, 화려한 색’, 서울 속에 숨겨진 음양오행의 이치를 보여주는 ‘서울의 빛과 색’, 첨단 매체와의 조화를 보여주는 ‘디지털로 흐르는 빛과 색’ 등을 거쳐 민족마다 독특한 색깔 상징 ‘보이는 빛, 의미하는 색’으로 첫 기획전은 접는다. 월요일 휴관(02)2124-8830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최규성 사진부 차장

입력시간 2002/05/2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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