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박근혜와 김정일

세 장의 사진을 보노라면 마음이 어두워 진다. 사진 세 장은 5월 18일 구속수감 되는 김대중 대통령 3남 홍걸씨의 “죄송합니다”의 모습과 17일 신당 한국 미래연합의 대표 박근혜 의원이 힘겹게 당기를 휘두르는 장면, 13일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박 의원을 만나 아버지처럼 뒷짐을 지지않은 채 찍은 사진 등이다. 세 스냅은 역사 속에 꽤나 괜찮은 지도자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반면교사인가를 묻게 한다. 지도자였던 아버지의 어제는 자식들의 오늘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묻게 한다.

물론 해답은 제 각각 일 것이다. 그러나 박 의원이나 김 위원장의 오늘 만남이 박 전 대통령이나 김일성 주석의 어제와 동 떨어진 별개의 모습이라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마음이 어두워 지고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박 의원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았다는 몇 가지 약속이 신당의 당기를 힘차게 흔들게 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점이다.

좀 엉뚱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김 위원장은 박 의원과의 면담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를 향한 여론의 개선은 꾀한 것 같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을 ‘위대한 영도자’로 받들어온 조선인민군에 대해 박 의원을 통해 확고한 지지를 보내는 노회함을 보였다.

박 의원은 그녀의 정치적 야망에 맞물려 이제 환갑을 넘은 김 위원장이 감춘 의도를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으로 받아 들였다. 김 위원장은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엉뚱한 이런 결론은 러시아과 북한의 사회주의를 착실하게 연구해 온 와다 하루키 교수(도쿄대 명예교수 ‘김일성과 만주 항일전쟁’ 등의 저자)의 연구에 근거한 필자의 엉뚱한 추론에 따른 것이다.

박 의원은 금강산 댐 문제와 관련해 “남북 전문가로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실태조사를 벌이자는 자신의 제의에 대해 김 위원장도 동의했다”고 전했다. 그녀에 의하면 댐 이야기는 남북 경험추진위가 돌연 연기된 배경을 김 위원장이 이야기 하면서 나왔다는 것이다. “함께 있던 김용순 비서가 이 문제에 대해 말을 꺼냈다.

5월 7일에 회의를 하게 되어 금강산 댐 문제는 그때 의논할 수 있었는데 댐이 형편없는 것처럼 보도되어 북한측으로서는 섭섭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와다 교수에 의하면 금강산 댐은 김 위원장에게는 1937년의 보천보 사건이 ‘수령 김일성’ 신화의 첫 장인 것처럼 ‘정규군 국가’의 ‘위대한 영도자’로서 개척한 신화의 첫 장이다. 와다 교수는 1998년 3월 ‘북조선’이란 책을 통해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 아래 변모된 북한의 모습을 정리했다.

부제는 ‘유격대 국가의 현재’였다. 그는 같은 해 5월 경남대학교 세미나에서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 변해 가고 있다면서 그 동안의 연구를 진전 시켰다. 그는 2월 ‘유격대 국가 현재’라는 부제를 ‘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 바꿔 ‘김정일 체제의 구조와 정치문화’라는 보론과 후기를 첨가해 한국어판을 새로 출간했다.

이 보론과 후기에 금강산 댐은 김 위원장이 아버지의 ‘유격대 국가’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실증, 그 첫번째로 등장한다. 1995년 10월 8일 김일성 사후 최초로 김 위원장이 인민군 총사령관과 국방위원장으로서 새로운 군 체제를 갖추어 조명록(현 국방위 제1부위원장). 김영춘(총 참모총장) 등을 차수로 승진시킨다. 이어 군 부대 순방에 나서 군을 지지세력으로 다졌다.

경제건설에도 군이 동원됐다. 그 결실은 1996년 6월말 금강산 발전소 1기 공사의 완공이었다. 김 위원장은 ‘혁명의 붉은 기를 높이 들고 높은 군인정신과 대중적 영웅주의, 무비(無比)의 헌신성을 발휘했다”고 치하했다.

그는 건설 현장에만 세 차례, 10월 14일에는 국방위원인 이을설 원수, 조명록 차수 등을 비롯해 건설에 참가한 군 지휘부 및 장병들과 함께 촬영했다. 그 배경에는 ‘경애하는 최고 사령관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가 걸려 있었다.

금강산 댐은 ‘유격대 국가’에서 ‘인민이 유격대 사령관인 김일성을 위해 항일 유격대원처럼 살았듯이 ‘정규군 국가’에서는 “인민군이 김정일 ‘정규군’ 최고 사령관의 총폭탄이 되고 당이 되고 인민이 되는 선군 사상이 배어 난 곳”이 됐다. 금강산 댐은 정규군 국가의 보천보가 된 것이다. ‘정규군 국가’는 구호 속에서는 ‘선군 정치’로, 그 국가는 ‘강성대국으로 불러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와다 교수는 “선군 정치, 정규군 국가, 군사 독재국가의 딜레마는 국가의 모든 자원을 군에 집중 할 것이냐, 군의 힘을 국가의 개건(改建)으로 확대할 것이냐에 있다”며 “어느 쪽도 경제, 기술의 현대화가 관건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규군 국가의 상징인 금강산 댐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인공위성 사진을 근거로 남한측이 밝혔으니 김 위원장은 섭섭함 이상을 느꼈을 것이다. 이것을 누구에게 전하고 싶었고 전령사로 택한 인물이 박 의원이 아닐까.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5/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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