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105)] 몽유병은 유전이다

인간은 평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 깨어있는 동안 소진한 에너지를 충전하고 혼란스럽고 흐트러진 하루의 기억을 정돈하는 중요한 일이 잠을 자는 동안 일어난다. 때문에 잠은 곧 보약이며 활력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다시 말하면 잠을 설칠 경우 건강과 생활에 심각한 이상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 주면에는 수면부족이나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물론 가장 큰 이유로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꼽힌다. 그런데 최근 재미있는 의학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적 원인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수면장애를 타고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눈길을 끈다. 초콜릿과 수면장애, 수면장애와 몽유병, 그리고 유전자가 엮어내는 잠의 수수께끼가 하나씩 풀려가고 있는 것이다.

한 여름 납량 특집에 단골메뉴로 떠오르는 몽유병 환자는 모두가 잠자는 밤이면 잠옷을 입고 어딘가 사라졌다가 새벽녘에 돌아온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의 발에 흙이 묻어있고 옷은 이슬에 젖어있다. 환자 입장에서 얼마나 오싹한 일인가. 그래서 몽유병 환자를 두고 귀신에 홀렸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이 몽유병 환자들은 동시에 램수면장애 환자다. 이들은 깊은 잠을 자는 동안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수면기의 장애:환자들로 꿈을 꾸는 동안 물건을 부수고 소리를 지른다. 램수면장애는 주로 남자에게 있으며 200명에 1명 정도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몽요병의 원인이 유전자에 있다면 바로 믿을 수 있을까? 스위스 번 대학병원의 연구팀이 30년 간 환자 74명을 조사한 결과 사람의 염색체 중 하나의 부위에 몽유병과 관련된 100여개의 유전자가 포함된 부위로 대부분 단백질 생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부위에 있는 유전자들이 면역과 관련되어 있지만 과연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몽유병이 발생하는 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자동면역계의 이상이나 유전자 변이로 인해 몽유병이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다.

조사대상 환자 중 58%가 어린시절부터 몽유병을 앓아왔으며 24%는 가족 중 다른 사람도 몽유병 환자였다는 사실은 몽유병에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스탠포드 대학의 수면이상센터 마우리스 오얀박사와 센타라 노폭병원의 보로나 박사는 폭력적인 악몽에 시달리는 램수면장애가 초콜릿에 의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보로나 박사에 따르면 초콜릿의 카페인이 꿈을 꿀때 몸을 마비시키는 아토니아라는 자연적인 과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잠자는 사람의 움직임이 더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꿈속에서 벌어지는 자기의 행동이 몸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폭력적 행동은 초콜릿 아이스프림 시럽을 먹을 때마다 분명하게 나타났다. 물론 초콜릿이 수면장애가 없는 사람에게 수면장애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수면장애가 이쓴 사람의 증세를 악화시키는 만큼 일반적인 초콜릿 애호가들은 걱정 할 일은 아니다.

초콜릿이 과연 램수면장애를 거쳐 몽유병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모르지만 몽유병과 유전자의 관계는 분명해지고 있는 듯하다. 정신적 영역으로만 생각하던 몽유병까지 유전적 요인이 있다면 과연 유전자는 인간의 어디가지를 관장하는 것일까?

물질적인 육체의 통제를 넘어서 정신작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그렇다면 혹 육체와 정신은 하나인가? 아니면 유전자가 육체와 정신의 연결을 담당하는 것인가? 또 그 정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모든 의문의 열쇠가 또한 유전자 속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2/05/2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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