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40대의 앞과 뒤

“솔직히 말해 그때까지 가봐야지.”

평소 진보적 인사임을 자처하던 한 언론사의 40대 중반 간부는 “평소 지론처럼 12월 대선 투표에서 개혁적 후보에게 한 표를 주겠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주저했다.

취재 과정에서 안 사실이지만 1956년생 원숭이띠인 이 간부와 비슷한 475세대(나이 40대, 70년대 대학 학번, 1950년대 생)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는 상당히 비슷했다. 총론에선 개혁과 진보를 지지하면서도 막상 투표와 같은 각론에선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인다. 비약하자면 마음은 진보, 몸은 보수였다.

이에 비해 40대에 갓 진입한 386세대(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의 고참(80~82학번)들은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을 이끈 승리자로서의 자신감 때문인지 대학시절 유신체제와 기성세대에 가위눌려 정치적 욕망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했던 475세대 같은 극심한 양면성은 두드러지게 포착되지는 않았다. 물론 이들 역시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증상을 서서히 보이고 있었다.

40대의 이런 표리부동과 기회주의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성토하고 있는 국민사기극(말로는 개혁과 진보, 지역 통합을 지지하면서 행동은 정반대로 하는 것)의 핵심세력이 어쩌면 40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40대의 이런 모습을 매도할 수만은 없다. 달리 보면 젊은 세대에서 기성 세대로 건너가는 낀 세대의 방황이며 경륜과 신중함을 갖추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0대에게서 세대간의 갈등을 완화하는 스폰지나 가교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자가 40대를 가리켜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불혹(不惑)으로 표현했다지만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의 평균수명(춘추시대 보다 후대인 로마시대의 경우 30대 후반이었다고 함)을 감안할 때 40대는 요즘으로 따지면 노년에 해당한다.

‘40대=불혹’은 어울리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등식인 셈이다.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흔들리는 40대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40대는 단순한 구애에 빠져들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 개혁과 안정의 절묘한 절충이란 풀기 힘든 고차원 방정식을 원하고 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5/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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