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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여행] 김씨스터즈(上)

 전 세계에 떨친 코리아 우먼의 끼와 재능

주한 미8군 가수의 탄생을 알렸던 최초의 여성보컬그룹 <김씨스터즈>는 전쟁으로 얼룩진 국민들의 상처 입은 마음에 커다란 자긍심을 안겨 주며 국위를 선양했던 여성 트리오였다.

이들의 부모는 국민가요 <목포의 눈물>로 대중들의 설움을 어루만져 주었던 이난영과 한국 뮤지컬의 개척자인 KPK 악단장 이었던 작곡가 김해송이다. 남동생들로 구성된 김브라더스의 가세로 이들은 1960-70년대의 대표적인 음악 가족으로 군림했다.

특히 가수, 댄서, 연주가를 겸했던 김씨스터즈는 시대를 앞서간 음악 실험은 전 세계에 <만능 쇼 우먼>으로 한국 대중음악인의 뛰어난 재능을 알렸던 개척자들이었다.

첫무대는 6ㆍ25 전쟁 직전 부친 김해송이 가족 뮤지컬 쇼를 만들어 온 가족이 참여했던 시민회관 공연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남편이 납북되어 처형당하자 이난영은 7남매를 이끌고 1ㆍ4후퇴의 피난민 대열에 끼어 부산으로 떠났다.

큰언니 영자, 셋째 숙자, 넷째 애자로 구성된 세 자매만의 첫무대는 1951년 부산행 미군 열차. 당시 세계 각지에 파견된 미군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미국 여성보컬그룹 <앤드루 시스터즈>의 히트곡 <낯익은 우유 빛 하늘><캔디와 과자> 2곡을 뜻도 모르고 무작정 외워 노래했다. 열 살을 갓 넘긴 소녀들이 앙증맞은 화음으로 노래하는 모습에 미군들은 넋을 잃었다.

‘우울하다’는 뜻의 ‘갓 더 블루스’는 ‘갓 뎀 블루스(빌어먹을 블루스)’로 엉뚱하게 노래하는 해프닝이 벌어지자 미군들은 배꼽을 쥐며 즐거워했다. 세 자매는 노래를 잘 불러 미군들이 즐거워하는 것으로 알고 더욱 당당하게 노래했다.

실수 연발의 공연이었지만 <한국의 앤드루 시스터즈>라는 애칭으로 어린 세 자매는 미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죽 한 그릇의 끼니도 잇지 못했던 피난 생활에 세 자매는 맨발로 땅콩, 사탕장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난영은 딸들을 본격적으로 미군 무대에 세우기로 작정, 작곡가인 오빠 이봉룡과 KPK 쇼단을 결성했다.

회초리를 들고 강제로 하루 5시간이상의 피눈물 나는 노래공부를 시켰다. ‘노래를 잘하면 과자를 먹게 해준다’는 말에 세 자매는 졸음을 참고 견뎌냈다. 돈 대신 <초콜릿>을 공연비로 받으며 미군 클럽을 전전했던 3년간의 피난시절은 눈물겨운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이난영은 휴전 직후 처음으로 <김씨스터즈>란 이름으로 1953년 가을 수도극장(지금의 스카라 극장)에서 자매트리오의 탄생을 대중들에게 알렸다. 이후 뛰어난 노래, 춤 솜씨는 미군 무대 뿐 아니라 방송, 극장무대에 까지 영역을 넓히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1958년 뉴욕에서 <차이나 돌>나이트 클럽을 운영하던 미국인 톰 볼은 새로운 음악터전을 마련해 준 은인이었다. 동양 쇼 프로그램 전문가인 그는 새로운 흥행거리를 물색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도쿄에서 우연히 휴가 나온 주한 미군들로부터 한국의 김씨스터즈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귀가 번쩍 튀었다. 곧바로 한국으로 내달아 말로만 듣던 자매들의 기막힌 공연을 보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주한 미군 맥 매킨을 매니저로 삼고 500달러(당시 15만원선)의 헐값에 계약을 맺었다. 큰언니 영자 대신 외삼촌 이봉룡의 딸 민자로 팀을 새롭게 구성한 톰 볼은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냈다. 해외진출 1호 보컬 팀의 탄생이었다.

1959년 초 세 자매는 태평양 상공 위에서 화려한 미국무대의 달콤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저녁 9시부터 새벽5시까지 강행된 라스베가스 선더볼트 호텔 나이트 클럽공연은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했다.

공연 후 집으로 돌아올 땐 다리가 퉁퉁 부어 계단을 엉금엉금 기었을 만큼 심신은 파김치가 되었다. 공항을 떠날 때 ‘데이트 하지말고 오로지 연습을 많이 해라. 무대 위에서는 늘 즐거워하고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눈물어린 당부는 이들을 지탱하게 한 좌우명이었다.

싸구려 옷에 양배추 김치만으로 연명하면서도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은 좌절보다는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독기를 가슴속에 품게 했다. 세 자매는 하루 8시간 이상의 연습벌레로 변해갔다.

엄격한 어머니의 통제로 미군들과 일체의 교제를 하지 못했던 자매들은 영어를 배우지 못했기에 언어소통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한국에서 배운 엉뚱한 노래가사도 문제였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수많은 보컬그룹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악기 연습을 시작했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으로 숙자는 섹스폰, 애자는 베이스, 민자는 드럼을 중심으로 각기 10여 개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었다. 적중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 보컬그룹은 미국에서도 드문 광경이었다. 아리랑, 도라지타령 등 우리민요를 곁들인 춤과 노래와 연주가 버무려진 이색적인 무대는 순식간에 ‘다이나마이트 걸 트리오’란 찬사로 이어지며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2002/05/3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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