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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에버랜드 동물원 원장 신남식

"동물에게 배운 인생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어"

“솔직히 아직 실감이 안 납니다. 자리가 바뀐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일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실제로 떠날 때가 되면 기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용인에버랜드 동물원 신남식(50) 원장. 몇 달 뒤면 동물원이 아닌 학교로 간다. 최근 서울대 수의학과 조교수 임용이 확정된 후 그는 요즘도 곳곳에서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가르칠 과목은 ‘야생동물 질병학’. 올 가을 학기부터 강단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단체나 교육기관이 아닌 민영 기업 출신으로 수의학과 교수가 되기는 드문 사례다.

무엇보다 20여년 야생동물과 함께 한 실전형 동물박사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든 현장을 떠나기는 섭섭하지만 동물원에서 쌓은 살아있는 임상 지식들을 후학들에게 나누는 것도 그에겐 의미 있는 일이다. 현재는 평소와 다름없이 동물원을 이끌고 있다. 총 130종 1,500여 마리의 건강을 총 책임진 대장이다.


동물의 세계는 인간사회의 축소판

“야생 동물원은 인간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흥망성쇠, 생로병사가 다 그 안에 있습니다. 때로는 이들에게서 도리어 인생을 배우기도 합니다. 맹수들만 하더라도 대개 힘의 세계뿐인 줄 알지만 그 힘과 더불어 철저한 책임이 존재합니다.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특권도 많이 누리지만, 외부의 적이 나타나면 제일 먼저 달려나가 대적하는 것도 우두머리입니다. 냉혹한 권력투쟁 속에서도 철저한 질서와 보호의 책임을 지킵니다.”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자신이 수의사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고교 때만해도 문학의 꿈을 꾸고 있던 그에게 수의학 공부를 권한 건 큰 형이었다. 1970년 서울시립대 수의학과에 입학, 동물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때 방황도 있었다. 1974년 졸업 후 한 제약회사에서 취직했다가 적성에 맞지않아 1년 반 만에 나왔다.

그 후 고향 온양에서 가축병원을 개업해 2년 반 동안 가축들을 돌보며 살았다. 주로 농가에 왕진을 다니며 젖소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문학 공부에 대한 미련이 뒤섞여 수의사의 길을 접을 생각까지 한 적도 있다.

그러다 당시 조성된 지 5년째를 맞고 있던 현재의 동물원 야생동물 수의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뭔가 새롭고 흥미진진할 듯 보여 1981년에 입사, 맹수들과의 대면이 이뤄졌다. 처음 6개월간은 냄새 나는 동물 우리 청소와 사료 주는 일만 했다.

현재도 이곳 신입 사원들이라면 전원 통과의례처럼 거쳐가는 수순이다. 맨 처음으로 맡은 진료임무는 멧돼지에게 예방주사 놓기. 단 몇 초면 끝날 접종을 위해 한참동안 멧돼지와 추격전을 벌였다.

사실상 야생동물 수의사들에게 가장 큰 고충도 바로 이런 치료 전 단계에 있다. 치료 자체보다 더 고되고 조심스럽다. 예민한 동물의 경우엔 붙잡으려고 쫓는 과정에서 지레 놀라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엉뚱한 사고가 터질 수도 있다.

사자, 곰과 같은 사나운 거구들은 접근조차 쉽지 않다. 사나운 성질에다 그 거구를 들어 옮기자면 장정 여럿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어떤 경우든 사육사와 수의사 등 단체로 움직인다. 날뛰는 동물에 정확히 마취총을 쏘는 것도 수의사의 몫, 이를 위해 틈틈이 사격연습을 하기도 한다.

초창기엔 관련 전문서적도 많지 않아, 대부분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익혔다. 이른 아침부터 나와 밤늦게 퇴근하기도 예사. 자다가도 응급호출에 달려 나오곤 했다. 상태가 심각할 땐 밤새 꼬박 곁을 지키는 일도 적지 않다.

치료에도 고분고분하지 않지만, 아파도 아프다고 스스로 알려주지 않는 게 동물이다. 조그만 이상이라도 수시로 살피고 보살펴줘야 한다. 원장이 되기 전까지 그의 일과는 항상 같았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담당 동물들 회진, 아침밥은 잘 먹었는지, 배설물 상태는 괜찮은지, 걸음걸이며 눈빛까지 꼼꼼이 살폈다. 그리곤 저녁까지 이어지는 진료, 개중엔 ‘지병’을 앓는 장기치료 환자도 섞여있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본능, 가슴 아파

심지어 다치고도 다친 내색을 하지 않는 녀석들까지 있다. 점잖아서가 아니라 살벌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본능이다. 입사 3년차에 만났던 이런 호랑이는 지금도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사파리에서 한 호랑이가 공격을 받아 배를 심하게 다쳤습니다. 치료를 위해 달려갔는데, 다친 채로 풀장에 들어가서는 아무리 몰아내도 물 속에서 꼼짝도 않는 겁니다. 할 수 없이 저녁쯤 다른 호랑이들을 다른 곳에 보낸 뒤 겨우 몰고 나온 뒤에 보니 얼마나 상태가 심각한지 찢어진 배 틈으로 끔찍하게 물어뜯긴 창자가 바깥까지 풀려나와 주변의 풀장 물이 온통 벌겋게 된 상황인데도 그렇게 반나절을 태연자약하게 물속에서 버틴 겁니다. 약점을 보이면 곧바로 다른 놈들에게 당하기 때문에 그 고통을 참은 겁니다. 그만큼 살벌한 세계입니다.”

더 으시시한 체험담 하나. 호랑이 4마리가 지내던 우리에 다녀온 사육사가 갑자기 3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룻밤 새 한 마리가 깜쪽 같이 증발한 것이다. 그간 잘 지내던 녀석들이라 의아해 하며 현장을 뒤져보니 한쪽 구석에 앙상한 호랑이 뼈가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밤새 세 마리의 먹이 감이 된 것이다. 그 아찔한 정글에서 그는 산다.

한때 ‘원숭이 집단 가출 사건’도 치렀다. 엄밀하게 말하면 집단 테러에 못이긴 필사의 탈출 사건이다. 함께 있던 원숭이 무리 중 세력에 밀린 소 그룹 원숭이 10마리가 끝내 항복을 하지 않고 버티자 ‘패권’을 잡은 원숭이 무리가 맹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견디다못한 원숭이들이 사력을 다해 철조망까지 뚫고 단체로 야반도주, 허기에 몰리자 성남에서 ‘참외밭 습격사건’을 벌이다 주민의 눈에 띄어 새벽 댓바람에 연락을 받은 동물원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당시 동물원 직원 거의 절반이 현장에 총출동했다.

잔뜩 독이 오른 원숭이들을 가까스로 먹이로 유인해 모두 되찾아오는데 무려 열흘이나 걸렸다. 돌아온 뒤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것으로 사태가 종료됐다.

“특히 호랑이와 사자를 한데 풀어놓은 사파리는 매일매일이 아찔한 전쟁터입니다. 일반인들이 보면 흔히들 늘 잠만 자고 재미가 없다고 하시지만, 그건 절대 한가롭거나 ‘재미없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곳에선 평화가 평화가 아닙니다. 여차하면 순식간에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긴장상태가 저희들에겐 보입니다. 졸거나 무심한 듯 보일 때가 더 무서운 겁니다. 1년에 한 두번쯤 저는 연례행사처럼 사파리의 꿈을 꾸곤 합니다. 맨 몸으로 혼자 그곳을 지나가는 꿈인데, 꿀 때마다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 땀이 납니다.”

맹수는 물론 순한 야생동물도 치료를 하는 수의사에겐 위협적인 존재다. 조금만 방심해도 치료 중 동물들에게 물리거나 할퀴는 등 당하기 일쑤다. 실제로 상당수 수의사들의 몸엔 군데군데 흉터가 있다. 천성적으로 철두철미한 성격의 신원장의 경우 다행히 별 사고를 겪지 않았던, 운 좋은 경우다.

치료 자체는 오히려 간단하다. 야생 동물 치료란 것도 일반인들의 상상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특수 상황을 빼놓고 대부분 동일 ‘과’의 가축들의 질병 치료법으로도 대개 해결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고양이과인 표범이나 치타는 집고양이에게 나타나는 질병이나 치료법과 대부분 상통한다. 같은 방식으로 코요테는 개의 치료법과 통하고, 타조나 펭귄은 닭의 경우를 적용할 수 있다.

아픈 동물의 병이 말끔히 나았을 땐 그만한 희열이 없다. 8년 전 신문지상에도 크게 보도됐던, 새끼 백호를 살렸을때는 특히 그랬다. 이 희귀하고도 앙증맞은 아기 백호는 한 쪽 폐가 이지러진 ‘기흉’ 증세로 20여일 간 사경을 헤맸다.

소식이 알려지자 내과, 소아과 전문의, 한의사 등 각계 각처의 도움과 관심이 밀려들었고, 동물원 안팎의 그 극진한 정성과 사랑의 힘으로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때의 기분은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 것보다 더 기뻤다.


인간사와 똑 같은 생로병사 있어

반대인 경우도 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해 떠나는 동물을 볼 때 면 늘 마음이 착잡하다. 9년 전 호흡기 질환으로 죽은 한 오랑우탄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TV에도 출연할 만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주인공이었다. 발병 후 백방으로 손을 써봤지만 병색은 하루하루 짙어갔다.

속이 타다 못해 나중엔 한 대학병원의 도움으로 한밤중을 이용해 사람들에게나 쓰는 CT촬영까지 받게 한 적도 있다. 석 달이나 끌었던 투병과정. 그가 찾아가 치료를 할 때면 오랑우탄은 뭔가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곤 했다.

‘당신들은 그렇게 애쓰지만, 나는 이렇게 떠나갑니다’라는 듯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끝내 숨을 거둔 날, 지켜봐 왔던 모두 허탈감에 빠졌다.

한편에선 끊임없는 탄생도 이어졌다. 번식과 분만도 수의사의 몫. 그간 수많은 동물들의 세대교체를 지켜보았다. 개중엔 발정기이면서도 힘이나 위세 등 자신의 이상형 기준에 자격 미달인 상대는 끝까지 짝짓기를 거부하거나, 교배 자체를 거부하는 ‘섹스리스’ 맹수 등 특이한 녀석들도 보았다. 한국 야생호랑이나 침팬지 등이 대표적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것보다 야생 동물의 세계는 훨씬 넓고도 오묘했다.

동물들과 부대끼는 동안 그는 점점 더 이 작은 밀림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길이란 확신을 얻으면서 대학원 공부를 병행, 1985년엔 건국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1998년엔 서울대 대학원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해에 원장이 되기도 했다. 관람객이 몰려드는 휴일엔 휴일이라서 더 바빴던 인생. 어느새 변해있는 자신을 보기도 한다.

“원래 활달한 성격이었는데 이 일을 시작한 후 말 수도 적어지고 실제로 말을 많이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집에선 도무지 표현을 잘 안 한다고 야단도 맞습니다.(웃음) 젊었을 땐 친구들이 ‘휴일에도 못 쉬고 참 고생’이라고 하면 정말 그런 것도 같아 가끔 고민도 했는데, 특히 10년 전부터는 참 좋은 일을 선택했다는 생각을 확실히 갖게 됐습니다.”


동물과 20년, 어느새 야생동물의 대부

국내 제일의 야생동물박사로 불리는 그에게도 못다 푼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10여 년 전에 있었던 단봉 낙타 세 마리의 의문사다. 바톤을 이어받듯 세 마리의 낙타가 사흘간격으로 차례대로 앓다가 죽어버렸다.

혈액과 배설물 검사는 물론 외부 전문가들의 자문까지 긴급 동원했지만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사막에도 살아 남는 독특한 비결은 물론, 죽음까지도 미스터리를 남기고 간 동물. 궁금하지만 차차 풀기로 한다.

동물 그림 넥타이를 매고 동물원을 지키는 유쾌한 원장, 동물원에 있든 학교로 가든 변함없이 야생동물의 대부로 자리할 그에게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다.

글·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입력시간 2002/06/0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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