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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세상] '이불을 덮고' 계신 애청자

몇 년 전 참으로 희한한 내용의 편지 한 통이 방송국으로 배달되었다. 고등학교 교사라고 자신의 신상을 밝힌 청취자의 항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자신은 ‘활기찬 새 아침 ○○○입니다’를 애청하는 사람인데 매일 아침 MC가 "이불을 덮고 계신 지금 시각 7시15분입니다" 라고 멘트를 하는 것이 참으로 듣기 거북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활 시간대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오전 7시15분에 모두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고 누워서 라디오를 듣고 있다는 식으로 방송에서 단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강한 불만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청취자의 편지를 받은 그 즉시 원고를 확인해 보았으나 항의 편지 내용과는 전혀 다른 '2부를 듣고 계신 지금 시각은 7시 15분입니다'로 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싶어 전 PD가 모여서 모니터를 했다.

그 결과 방송국에 편지를 투고한 분의 항의가 전혀 과장이 아닌 것임을 확인했다. 문제는 MC의 억양에 있었다. 당시 ‘활기찬 새 아침 ○○○입니다’라는 이 프로그램은 오전 6시5분에 시작하여 7시까지 1부가 방송되고 7시 아침 뉴스가 나간 후 7시15분에 다시 2부가 시작되어 8시까지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당시 대기자로 명성을 날리던 진행자가 2부가 시작될 때 “2부를 듣고 계신 지금 시각 7시15분입니다”라고 시각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진행자의 고향이 경상도 사람이어서 "ㅡ"발음이 자꾸만 "ㅓ"로 발음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2부를 듣고 계신 지금 시각 7시15분입니다"가 청취자의 귀에는 "이불을 덮고 계신 지금 시각 7시 15분입니다"로 들린 것이다.

나는 신문과 방송의 차이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신문은 보는 문자이고 방송, 특히 라디오는 듣는 문자라고. 신문은 그 기사를 다 읽지 않아도 큰 제목만 보고도 얼마든지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간 활자의 요약기사만 읽어도 전체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신문에서처럼 큰 활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또 중요한 사항이라 하여 갑자기 웅변조로 고함을 칠 수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방송은 전라도 지리산 속에 사는 90세 된 할머니도, 또 경상도 주왕산 산 마을에 사는 80세 된 할아버지도, 도시에 사는 스물 아홉 살 청년도 5살의 어린이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방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전달력이다.

그러기에 같은 말이라 해도 방송인이 하는 멘트는 일반 사람들이 읽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전달력이 강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할 때 적어도 99.9%는 편안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방송 언어는 어떤가? 최근 들어 우리 방송 언어가 범람하는 외국어와 잘못 사용되는 지방 말, 은어와 비속어들로 크게 오염되고 있다. 물론 사회 변화와 시대 상황에 따른 유행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의 기본적 기능인 전달력을 놓고 볼 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가 앞으로의 뉴미디어시대에는 뉴스도 방송 출연자 대신 음향발생기가 대신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요즘의 114전화번호 안내처럼 기계가 만들어 내는 언어가 방송에서 실용화 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것인가.

이런 예가 하나 떠오른다. 한때 미국 이민의 유망한 직업으로 병아리 감별사라는 것이 있었다. 갓 부화한 병아리를 2,3초에 한 마리씩 감별해서 암놈은 양계장으로 수평아리는 그냥 폐사 시키는 감별사. 종로 3가 직업교육 학원가에는 병아리감별사라고 쓰인 간판이 빼곡했다.

그러나 이제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은 거의 사라졌다. 이유는 병원에서 쓰는 MRI, 즉 자기공명장치를 이용해 달걀상태에서 이미 암수를 구분한 뒤 암놈은 부화를 시키고 수놈은 식탁으로 보내는 것이다.

우리의 방송 언어 역시 이런 운명을 자신 있게 비켜 갈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방송 언어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50, 60년대의 방송 언어는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 최상의 덕목이었으나 요즈음은 말을 정리, 정돈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사회가 다변화 될수록 방송 언어는 가장 정확한 모국어가 되어야 한다.

조원석 KBS 라디오편성 주간

입력시간 2002/06/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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