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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축구는 사회적 약자의 욕구분출구

월드컵이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조직하고 있다. 기말시험이 조별리그 일정과 겹치는 대학생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고화질 평면 텔레비전을 아직까지는 사치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꼭 필요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영화 ‘컵(cup)’에서 월드컵 중계를 보기 위해 주지스님의 눈을 피해가며 텔레비전 안테나를 세우던 티벳의 꼬마 스님들을 기억하는지. 이번에도 그들은 염불보다는 월드컵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부처님도 축구를 좋아하신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있으니, 결코 불경(不敬)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축구가 오늘날처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하게 된 것은 길게 잡아도 한 세기를 넘지 않는다. 축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차기는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놀이다. 따라서 축구의 인류학적인 기원을 확정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하지만 축구가 근대적인 스포츠로 성립되어 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산업화 이전에 있었던 격렬한 공놀이는 농촌사회의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 놀이문화였다.

참가자의 수·경기시간·경기장 규격 등과 관련된 규칙은 당연히 없었고, 선수들은 손과 발을 함께 사용하며 목표물을 향해서 돌진할 따름이었다. 힘과 정열이 분출하는 공놀이의 광경은 중세의 전쟁터를 연상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축구가 근대적 스포츠로 자리잡는 데는 학교의 역할이 컸다. 앙드레 모루아의 말처럼, 축구는 행동과 품성의 훌륭한 학습장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영국의 이튼 칼리지나 트리니티 칼리지가 축구팀을 조직했고, 축구의 규칙이 조금씩 정비되면서 럭비와 분리되었다.

1871년 영국에서는 럭비 유니온이 탄생해서 럭비와 축구와 확실하게 분화되었다. 1898년에는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는 17개조의 축구 규칙이 제정되었다.

축구의 룰이 마련되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글이나 연표를 보면, 입가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축구에서 심판이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 놀랍게도 1874년이다. 따라서 그 전에는 심판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골대의 크로스바가 설치된 것은 1875년의 일이고, 골대의 그물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890년에 가서야 구경할 수 있게 된다. 그 동안 심판도 없이 골인 여부를 놓고 얼마나 격렬한 신경전이 오고 갔을까.

반칙행위에 제재를 가하는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는 1976년에 등장했다. 축구황제 펠레가 공이 아니라 사람을 차는 월드컵 경기에 다시는 출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영국 월드컵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축구는 학원 스포츠면서 동시에 노동자 계층의 문화였다. 19세기 후반 공업화가 진전되고 교통수단이 발달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 축구가 확산되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팀들이 산업화시대 노동자 계층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앙리와 베르캄프가 뛰고 있는 아스날은 군수공장의 클럽이었으며, 베컴과 베론이 중원을 지휘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철도 노동자 클럽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토요일이 공휴일로 되면서 관객이 증대했고, 전신과 전화가 발달하면서 신문과 잡지는 축구 기사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1927년에는 라디오 중계가 시작되었고,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는 처음으로 텔레비전 위성중계가 실시되었다. 월드컵은 세계적 규모의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미디어 이벤트가 된 것이다.

월드컵은 전세계인의 축제이다. 하지만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있으니, 다름 아닌 훌리건들이다. 1985년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는 유럽클럽챔피언컵 결승전이 열리기 직전에 관중 난동으로 3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이 경기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고, 이로 인해 반(反)훌리건법이 제정되었다. 훌리건이 보여주는 물리적 폭력이나 집단적 히스테리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훌리건은 축구의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알렌 에렙베르그의 분석처럼, 축구는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는 참여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훌리건은 사회적 지위 향상이 구조적으로 차단된 상태를 반영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동시에 축구에는 인간의 몸에 근거한 원초적인 역동성과 민주적인 가치가 내재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역설적인 존재들이다. 혁명이 끝난 시대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헤비메틀 공연장과 축구장에서 정치적 광장의 대체물을 발견했던 것이다.

축구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조직하는 시절이다. 축구에 내재되어 있는 역동성과 민주적인 가치가 우리사회에로 옮겨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tan@empal.com

입력시간 2002/06/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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