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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칸서 활짝 핀 영화판 삼총사

[문화] 칸서 활짝 핀 영화판 삼총사

인간적 정으로 똘똘뭉친 '임권택사단' 30년, 한국영화계의 거두로 우뚝

임권택 감독 뒤에는 ‘임권택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인연은 세월을 먹을수록 무르익어 마침내 최상의 포도주를 만들게 했다. ‘장군의 아들 1, 2, 3’,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전’에 이어 마침내 ‘취화선’으로 이어진 30년 세월이 칸에서 활짝 폈다.

임권택(66) 감독, 정일성(73) 촬영 감독, 이태원(64) 태흥영화사 사장. 이 세 사람은 조변석개하는 영화계 풍토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우직한 우정의 삼총사다. 5월 27일 칸영화제 시상식장은 이들의 우정이 세계적으로 공인되는 자리에 다름 아니었다.


동물적 감각 지닌 영상의 대가

1980년 12월 ‘만다라’ 촬영장. 시나리오상으로는 불과 몇 초 동안 눈 오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그러나 눈은 쉽게 내려주지 않았다. 안성기 전무송 등 일류 스타들도 살을 에이는 바람 속에서 눈을 기다려야 했다. 바로 카메라를 거머 쥔 정일성 때문이었다. 당시 그의 뇌리에는 ‘인공 눈은 실감이 안 난다’는 상식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물적인 아날로그 감각으로 정상에 우뚝 섰다.

촬영 당시는 그토록 넌더리 쳐 대던 배우들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상을 본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주먹만한 눈보라가 펑펑 쏟아지는 유명한 장면 앞에서 뭐라 군소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가 촬영한 작품들은 성공의 보증 수표가 아니었던가.

그는 ‘촬영 기사’만 있던 국내 영화계에 ‘촬영 감독’이라는 호칭을 고집하고 통용 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일에 합당한 형식을 당당히 요구하는 그의 이력에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명문대 출신이라는 점이 톡톡히 작용한다.

부유한 건축설계사 집안의 4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자신이 입학했던 서울공대 기계과의 공부는 뒷전이었다. 한국전쟁 이듬해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공군 장교로 있던 선배의 부탁으로 우연히 영화 촬영 작업에 뛰어 들어 영화에 빠졌다. 1977년 변장호 감독과 만든 ‘을화’는 촬영장소 헌팅차 설악산을 뒤지다 트럭이 충돌, 200m 골짜기로 떨어지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또 속초 앞바다에 4시간 동안 물속에 서서 촬영을 강행하는 바람에 교통 사고로 상한 내장이 썩어 위와 대ㆍ소장의 일부를 잘라내야 하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1980년 유현목 감독과 ‘사랑의 조건’을 찍을 대는 급기야 직장암 선고까지 받았다. 당시 직장을 떼어 낸 그의 몸무게는 75㎏에서 42㎏이었다.

그를 망쳤던 영화로 그는 다시 살아 났다. 임권택 감독이 ‘만다라’를 찍어 달라며 그의 손을 잡아 끄는 것이었다. “작품을 읽어보니 멋진 영상이 눈앞에 아른거려 견딜 수 없었어요. 배에 붕대를 감은 채 나섰지요.” ‘만다라’의 흥행과 함께 개복의 흔적도 아물어 갔다. 그는 과작주의자다. 그의 믿음은 ‘돈에 팔려 사생아 같은 영화를 찍었다간 신세 망친다’는 것이다. 40여년 동안 1백30여 편을 촬영했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미다스의 손’

영화는 자본의 예술이다. 임권택 감독이 있기 전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이 있다. 그는 임권택이라는 재기와 뚝심을 알아보고 지원과 격려를 아키지 않은 마이더스의 손이다.

평양 출신으로 한국 전쟁 직후 남하,험한 건설업계에서 ㈜태흥상공을 설립해 큰 돈을 모은 ‘보스’인 그에게는 아직도 거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가 영화업계로 뛰어 든 것은 1975년 경영이 어려워 진 친구의 의정부 국도극장을 인수하면서부터 였다.

1983년 태흥영화사를 설립, 영화제작에 뛰어든 그가 임권택 감독과 연이 닿은 것은 1983년 ‘비구니’였다. 파계 여승을 다룬 이 영화에 대해 불교계의 반발이 심화, 결국 제작 중간되는 일가지 빚어졌으나 두 사람은 이로써 더욱 돈독해졌다. 미안해 하는 임 감독에게 이사장이 했던 말은 아직도 충무로에 회자되고 있다. “떡 한 번 크게 해먹은 셈 치지, 뭐.”

그렇듯 두 사람의 관계는 감독-제작자라는 일반적 도식으로서는 풀기 힘든 구석이 있다. 이 사장이 어려우면 임 감독이 돕는다. 1990년대 자신의 영화사가 겪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 사장이 상업적 오락 영화인 ‘장군의 아들’을 제작하기로 결정하자 임 감독이 ‘거장’이라는 명성을 접고 연출에 나섰다. 이 일로 위기를 넘기게 된 임 감독은 이후 이 사장과 더욱 돈독해졌다.

1993년 ‘서편제’, 1994년 ‘태백산맥’, 200년 ‘춘향전’ 등 작품성을 평가 받은 대작들 뒤에는 이들 버디(buddy)의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임 감독을 위한 이 사장의 뚝심은 유명하다. 해방 공간의 좌우익 투쟁을 그려 정부가 판금도서로 낙인 찍혔던 조정래의 ‘태백산맥’ 제작 때다. 좌경성을 이유로 제작 허가를 내주지 않던 정부에 대해 이 사장은 정면으로 대립, 제작 의지를 관철시켰다.

2000년 다른 영화사나 투자자들이 임 감독의 ‘춘향전’을 두고 흥행여부가 불투명하다며 뒷걸음질 칠 때에도 이 사장은 “나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며 제작을 자임했다. 30억을 부은 이 작품에 대해 칸 영화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이 사장은 여기서 20억원을 날렸다. 그의 영화 제작 일화보다 더 유명한 것이 현장에서 쏟아지는 육두 문자와 음담패설이다. 그러나 영화 제작 현장과 거기서 솟아 오르는 인간적 정이 좋아 이 사장은 오늘도 영화판을 뜨지 못 한다. 둘째 아들 우승(39)씨도 영화 제작자로, 지난해 ‘두사부일체’가 흥행을 터뜨리면서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부인 채령씨 내조, 도올과의 우정도 큰 몫

시상식장에서 단연 세간의 관심에 오른 사람은 부인 채령(51ㆍ본명 채혜숙)이다. 임-채 커플은 이미 1979년 결혼 당시 영화계 부부라는 사실은 물론 15년의 연령차로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24살의 나이로 당시 여배우로서는 드물게 군인 영화 ‘바다의 사자들’의 주연으로 열연,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녀의 상대는 바로 43살의 노총각 임권택이었다.

1971년 임 감독의 영화 출연 제의를 신호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7년 교제 끝에 결혼했다. 5월 26일 ‘취화선’ 공식 시사회장에 임 감독 일행과 동행했을 때만 해도 외신이 ‘신원 미상의 여성’으로 소개됐던 인물이다. 젊은 시절 주연급 배우로서 활약했던 미모의 채씨에 대한 호기심이 깃 들어져 있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임 감독은 부인의 손을 꼭 잡고 “고생했어”라며 그 동안 보내준 내조에 대해 치하했다. 평소 집에서는 감정 표시를 꺼려 온 임 감독의 이날 언사는 뜻밖이었다며 주변인들은 입을 모으는 부분이다.

‘취화선’이 더욱 빛나는 것은 14년 우정을 이어 온 도올 김용옥(54)의 대본 작업과 영문 번역 감수 덕분이다. 도올은 지난해 미국 뉴욕에 체류할 때도 e메일과 팩스 등을 통해 ‘취화선’의 시나리오 작업을 해나갔다. 또 촬영장도 수시 방문, 이번 칸에 출품할 ‘취화선’의 영문 번역 작업의 영감을 얻어 가는 등 꾸준히 애정을 표시해 왔다.

영화를 통한 두 사람의 인연은 1988년 운동권 학생들의 삶을 다룬 ‘돌바리’를 태흥 영화사에서 함께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비록 당시의 시대적 정황에 부딪쳐 도중 하차 됐던 두 사람의 인연은 1990년 도올이 ‘장군의 아들’ 시나리오를 각색한 데 이어 1991년 ‘개벽’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계속됐다. 임권택의 승리는 곧 임권택 사단의 승리였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6/0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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