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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서양 협력시대 열렸다

러시아·나토 위원회 발족, 21세기 단일 안보체제 출범

미국, 러시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3각축으로 한 신대서양 협력체제가 출범했다. 미국, 러시아, 및 나토 18개 회원국들은 5월 28일 로마선언을 통해 ‘러시아-나토위원회’를 발족키로 함에 따라 대서양 양안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동서 유럽을 아우르는 단일 안보협력체제가 태동했다.

이는 1,2차 대전과 동서냉전으로 얼룩진 대립의 20세기 대서양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21세기 새로운 협력의 단일 안보체제를 출범시켰다는 점에서 가히 역사적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미국 주도의 새로운 나토 탄생

대서양권이 미국과 러시아, 동서 유럽권으로 나뉘어 있지만 러시아의 나토 합류로 사실상 미국 주도의 새로운 나토가 탄생한 셈이다. 대서양 양안을 잇는 유럽권에 역사상 처음으로 적이 사라지게 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오늘은 위대한 동맹(나토)과 위대한 유럽국가(러시아)가 역사적 위업을 달성한 날”이라며 “나토와 러시아는 지난 반세기 분열과 10여년의 불안정을 딛고 적대자에서 동반자로서 새 출발선에 섰다”고 선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범세계적인 안보체제 확립됐다”며 “러시아는 신대서양권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차 대전 추축동맹의 주도국이었던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고 역시 추축국 일원이었던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동구와 서구의 결혼”이라며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현상황에서 기존 나토 19개 회원국+러시아 체제의 확대재편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은 11월 체코 프라하 나토 정상회담에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트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중부와 동부 유럽 7개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것이 확실하다.

신 나토는 러시아의 합류를 계기로 군사 동맹적 안보체제에서 전환해 유럽권의 공동안보와 군축, 평화유지, 테러대처와 지역분쟁해소 및 위기관리, 군사협력과 지역현안 논의와 협력을 위한 새 정치군사체제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토는 1949년 4월 워싱턴에서 창설된 이후 1991년 공산진영 종주국이었던 소련 붕괴와 동구 공산권 바르샤바조약기구(WTO) 해체에 이어 러시아의 나토 합류로 새로운 전환점에 서게 됐다.

미국은 신 나토 출범을 계기로 향후 테러전 확전에 대비한 나토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이끌어내려 할 것이고 러시아는 나토 합류에 따른 국방예산 절감으로 경제부흥에 여력을 쏟는 이득을 얻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러시아를 저울질하며 대서양권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나토를 통한 견제 세력으로 입지를 강화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토 19개 회원국들과 러시아는 6월 6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첫 ‘나토-러시아위원회’를 열어 나토의 새로운 진로를 폭 넓게 논의한다.


나토ㆍ러시아 갈등과 대립, 역사속으로

지난 10년간의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갈등과 대립, 화해를 거듭한 애증의 역사로규정할 수 있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시절 러시아와 나토는 밀월관계를 유지했으나 1999년 나토의 유고 공습 때는 대립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1991년 나토에 대항한 군사 동맹체인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해체한 뒤 나토를 더 이상 우려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1994년에는 러-나토 우호 조약이 체결됐으나 양측 관계에는 아직 어떤 확신도 주지 못했다. 당시 나토는 유럽 평화를 위해 옛 소련 공화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같은 해 나토가 동구권 확장을 꾀하며 양측 관계는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나토가 아직 냉전 논리를 버리지 못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키려 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하비에르 솔라나 당시 나토 사무총장은 이에 따라 러시아와 관계 복원을 위한 ‘러-나토 기본법’ 협상을 시작해 3년 뒤인 1997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최종 서명했다.

나토에 대한 러시아 발언권 확대를 보장한 이 기본법은 실제로 옐친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것에 불과했으나 1998년 나토 훈련에 러시아군이 처음으로 참가하는 긍정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러시아는 또 나토 평화유지군 일원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분쟁 지역에 파견돼 중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당시 1,350명 규모의 장갑차 부대를 파병했다. 하지만 1999년 나토가 유고 공습에 나서며 양측 관계는 또다시 얼어붙었다. 옐친은 나토 공습 이틀 뒤인 같은 해 3월 26일 모스크바 주재 나토 대표를 추방하고 모든 군사 교류 계획을 취소했다.

이후 2000년 12월 15일 추방된 나토 대표가 모스크바에 복귀하며 양측 관계도 다시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옛 소련 공화국인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해 연안 3국이 나토 가입 방침을 천명하고 나서며 다시 팽팽한 긴장 관계로 접어들었다.

러-나토 관계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9ㆍ11 테러 직후 대 테러 전쟁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며 급격한 전환점을 맞았다.

러-미 양국의 급속한 관계 개선으로 정체성 위기에 빠진 나토는 급기야 같은 해 12월 러시아를 동등한 입장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고, 이 같은 방침은 3월 14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러-나토 외무장관 회담에서 최종 승인됐다.

이어 28일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열린 러-나토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에 나토회원국과 동등한 발언권을 주는 새 `러-나토 위원회' 설치안이 최종 조임됨에 따라 양측 관계는 신기원을 맞게 됐다.


체첸사태등 잠재적 걸림돌 여전

나토가 새로운 21세기 국제질서에서 명실상부한 유럽 안보기구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나토는 주요의제에 대해 러시아에 발언권과 의사결정 참여권을 부여했으나 러시아와 나토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경우 러시아를 배제한 채 자체적으로 최종 의사결정이 가능토록 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 무관한 지역분쟁, 평화유지활동 등에서는 양측이 별 어려움 없이 협력할 수 있으나 러시아의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문제에 부딪힐 경우 불협화음을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무자비한 민간인 탄압으로 인권시비를 낳고 있는 체첸 사태를 양측 충돌의 첫번째 잠재적 걸림돌로 보고 있다.

나토가 러시아를 의사결정과정에 포함시킴으로써 나토의 정체성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나토의 적이 누구이며 이로부터 회원국을 지키기 위해 수행해야 할 임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토는 서방이 지고의 선으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회원국을 지키는 것이 제 1 과제라고 말한다.

로마 선언서 주요 내용
   
21세기의 개막과 함께 우리는 새로운 위협과 도전으로 더욱 단합된 대응을 요구하는 새롭고 긴밀하게 상호 관련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 나토 회원국과 러시아는 오늘 상호 관계에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된 것이다.

나토 회원국들과 러시아는 ‘나토-러시아 위원회’의 틀 안에서 공동 이익 분야에서 동등한 협력자로 협조할 것이다. 나토-러시아 위원회는 유럽-대서양지역의 안보문제에서 협의와 공감대 형성, 협조, 공동 결정, 공동 행동의 자리를 제공하게 된다. 나토-러시아 위원회는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 발전을 위한 기본 구조와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며 합의에 기초하여 운영할 것이다.

또 문제의 조기 발견과 최선의 공동 해결책 결정, 공동 행동을 위해 안보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정치적 대화에 의거하여 운영할 것이다. 나토-러시아 위원회는 나토 사무총장이 의장을 맡게 되며 외무장관급과 국방장관급이 일년에 두 차례 회의를 갖게 되고 정상회담은 적절한 시기에 개최한다.

또 대사급 회의는 최소한 한 달에 한번씩 열며 필요하면 더 자주 만날 수도 있다. 군사 대표단과 참모 총장들도 나토-러시아 위원회의 후원아래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첫 조치로 △테러와의 투쟁 △위기 관리 △비확산 △무기통제 및 신뢰구축 조치 등에 합의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2/06/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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