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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는 '악의 축'

현금 융통수단으로 변질,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

“빚으로 사세요~”

비씨카드 CF의 말미에 탤런트 김정은이 흥얼거리는 콧노래는 “비씨로 사세요~”. 그 유명한 장면이 네티즌들 사이에선 ‘비씨’가 아닌 ‘빚’으로 유통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인터넷에는 낯익은 카드회사 광고를 요리조리 비꼬는 블랙 유머들이 인기다.

고소영 정우성 커플이 등장하는 재벌계 카드사의 광고를 패러디한 유머. “내 남편이에요. 돈 펑펑 쓰는 사람이죠. (남편이 무언가를 활짝 펼쳐 보인다. 카드연체 경고장이다) 가끔씩 여자를 놀래줄 줄도 아는 남자죠.”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등장하는 CF는 “아…죽고 싶다. (면도도 못하고) 카드연체 또 뒤집어썼네…같이 갚으실래요?”로, ‘떠나라’ 컨셉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모회사 광고는 “열나게 연체한 당신…(갚을 수 없다면) 죽어라”로 바뀌었다.


무분별한 카드발급이 부른 ‘화’

카드 빚으로 인한 자살과 살인, 강도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언제부터인가 카드회사는 우리사회의 ‘악의 축’으로 지목되고 있다. 네티즌들의 암울한 패러디가 그런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성년자 등 무자격자에 대한 무분별한 카드남발과 사채업자 뺨치는 고리(高利) 장사, 비인간적인 연체 빚 독촉…. 신용카드가 범죄의 온상으로 낙인 찍히게 된 것은 일차적으론 국내 카드업계의 잘못된 영업관행이 부른 ‘화(禍)’ 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무차별적인 ‘현금서비스’ 확장경쟁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 외국에선 신용카드 사용의 80%가 물품구매(신용거래)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돈을 빌려 쓰는 현금 서비스나 카드론이 압도적이다.

현금 사용을 줄이자고 만든 신용카드가 오히려 현금 융통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셈. 신용카드가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도 이 때문이다.

여신전문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들의 신용카드 이용금액은 480조원6,771억원(카드론 포함). 연간 카드 사용액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63조5,500억원으로 급락했다가 99년 90조원 대로 증가한 데 이어 2000년 200조원을 돌파하더니 지난해 다시 두 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연 금리(수수료)가 23%대를 오가는 카드대출(현금 서비스ㆍ카드론)의 증가 추이다. 현금서비스의 경우 97년 전체 카드사용액의 47.1%이던 것이 98년 51.5%, 99년 53.0%, 2000년 64.6%로 급격히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2000년 전체 신용카드 사용액(224조) 보다도 많은 267조를 기록, 카드론을 제외한 전체 사용액의 60.4%를 차지했다. 만약 3개월~1년 짜리 대출 상품인 ‘카드론’취급액까지 합칠 경우 전체 카드 사용액의 무려 71.6%에 달한다.

이쯤 되면 신용카드가 아니라 ‘대출증서’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대부분의 카드업체들이 돈이 된다 싶으니까 너도나도 대금(貸金) 장사에만 몰두, 카드업의 양태 자체가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돈장사에 혈안, 개인파산 속출

정부가 고강도 규제로 카드업계를 압박하는 논리도 카드사들이 본업과는 거리가 있는 ‘돈놀이’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카드범죄를 강력히 차단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도 정부 정책에 지원사격을 해주고 있는 상태.

현금서비스 비중을 강제적으로 신용판매 규모와 똑 같은 비율(50대 50)로 낮추도록 하겠다는 것도 비슷한 배경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미 수요와 공급원리에 따라 대출이 이뤄진 상태에서 총량을 줄이겠다는 발상은 누가 봐도 ‘반(反) 시장적’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상 ‘현금 융통 최고한도를 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현금 서비스 한도를 법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단호한 입장.

하지만 카드 업계는 카드대출 규모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서민들에 대한 신용공여 규모를 줄여 가계파산 등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01년을 기준으로 신용판매액은 175조원, 현금대출(현금서비스+카드론)은 305조원”이라며 “둘의 비중을 50대 50으로 맞추려면 신용판매를 인위적으로 늘리기 힘든 이상 카드대출 가운데 130조원은 강제로 회수할 수밖에 없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드사로부터 상환압박을 받은 고객들이 사채시장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사채부담의 가중으로 개인파산이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신용카드에 대한 방문판매 금지조치도 논란을 사고 있다. 금융당국은 무자격자 및 미성년자에 대한 카드발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목적으로 금년 중 여신전문금융업법을 개정, 길거리 카드모집은 물론 방문 영업행위까지 완전 금지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카드업계는 방문판매마저 금지되면 신규회원의 70% 이상을 모집인에 의존하고 있는 전업 카드사의 경우 치명적 피해를 입게 된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방문판매 금지조치로 모집인 제도가 사라지면 현재 10만 명에 이르는 모집인들의 대량실직 사태가 우려될 뿐 아니라 은행과는 달리 영업망이 취약한 전문 카드사들은 존립근거를 상실하게 된다는 게 전업계 카드사들의 주장.

카드업계 관계자는 “모집인에 의한 회원유치는 신청인을 1대 1로 대면 확인할 수 있어 인터넷이나 텔레마케팅에 의한 유치보다 본인확인을 철저히 할 수 있다”며 “은행대출이나 통신, 보험, 화장품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방문판매 방식을 카드업에만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도 잘못된 카드영업에 대해서는 당연히 제재를 가해야겠지만 시장의 자율경쟁까지 훼손하는 ‘여론몰이식’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카드업계 ‘벙어리 냉가슴’

“억울한 것은 많지만 모두 ‘오프 더 레코드’로 해주세요.”(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모 카드업체 사장) 금융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 등 강력한 철퇴를 맞은 카드 업체들은 정부의 규제에 대해 직접적인 반발은 자제하고 있다. 연일 규제책을 쏟아내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서슬이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대신 땅에 떨어진 ‘신용카드’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우선 힘을 쏟겠다는 전략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공익성’ 광고. 카드업계는 특히 새로운 형태의 광고를 통해 “신용카드는 정상적인 소비생활을 위한 필수도구”임을 강조, 이미지 만회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비씨카드는 최근 주요 일간신문에 ‘신용카드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전면광고를 냈다. 1~2주일 동안 계속될 이 광고에서 비씨카드는 “아직 경제관념이 부족한 일부 사람들에게 신용카드가 마치 돈이 없어도 물건을 살 수 있는 마법의 카드처럼 여겨지고 있는 현실에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관리하는 회사로서 책임을 느낀다”며 “하지만 신용카드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신용카드의 편리한 기능이 오용되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광고는 또 “신용카드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소비를 위한 편리한 도구일 뿐”이라며 “개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계획적이고 건전한 소비가 이뤄질 때 비로소 신용카드는 존재 가치를 갖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카드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기존 홍보용 광고하고는 성격부터 크게 다르다.

LG카드도 6월부터 신규회원 모집영업을 재개하면서 TV나 신문에 대대적인 공익성 광고를 내보낼 예정이다. 새로 발급하는 카드에는 ‘과소비를 자제하고 신용카드를 바르게 씁시다’라는 문구까지 넣기로 했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용카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여보자 것이 공익성 광고의 일차 목표”라면서도 “하지만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책에 대해 그 동안 입 한번 뻥긋 못하던 카드업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성격도 있다”고 전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입력시간 2002/06/0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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