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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를 등에 업고 비리의 늪으로

홍업씨 최측근 김성환·이거성, 각종 이권·청탁에 개입하며 호가호위

황태자들과 관련한 기억력 테스트 두가지

여러분의 기억력은 어느 정도인지요. 지금부터 시계추를 5년전으로 되돌려보겠습니다.

“피고인 김현철은 1992년 7월께 나라사랑실천 운동본부(이하 나사본)를 설립, 14대 대통령선거를 지원하고 93년 2월부터는 특정한 직업없이 개인사무실을 운영하던 자인바, 고교동문 기업인들로부터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받고 이들의 청탁을 들어주는 등…” 1997년 대검 중수부가 공개한 김현철씨의 공소장에서 고유명사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범죄 사실들을 대체하면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에 대한 수사진행과 소름이 끼칠만큼 똑같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은 모두 대통령의 차남, 이른바 황태자들입니다.

또 하나의 기억력 테스트.

혹시 박태중씨와 이성호씨도 기억이 나실런지. 현철씨의 중학교 동기인 박씨는 나사본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현철씨의 위세를 이용해 업체로부터 건당 4억원의 민원대가를 받은 이른바 오른팔입니다. 대호건설 부사장으로 현철씨를 ‘현철이 형’으로 부르던 이씨도 역시 케이블TV사업자 선정과정 등 각종 민원에 개입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또한 현철씨의 비자금 관리자로서도 유명합니다. 박씨는 대선 잔여금 132억원을 관리했고, 이씨는 현철씨 돈 50억원을 실명전환하는 한편 22억여원을 5차례에 걸쳐 돈세탁한 뒤 현철씨에게 건넸습니다.

자, 이제 시간만 5년이 흘렀고 장소는 여전히 대검 중수부입니다. 전 서울음악방송 회장 김성환씨와 풍산프로모션 대표 이거성씨가 5월과 6월 한달의 간격을 두고 구치소로 향했습니다. 홍업씨의 고교 및 ROTC 동기인 김씨와 대학후배인 이씨는 각각 업체로부터 민원해결대가로 10억2,000만원과 17억원을 받았습니다.


5년만에 돌아온 황태자와 친구들

‘그들’이 돌아왔다. ‘황태자’의 친구들이 다시 비리사건의 전면으로 복귀한 것이다. 홍업씨와 김성환, 이거성씨 관계는 김현철씨와 박태중, 이성호씨간 관계를 복제한 듯 닮았다. 검찰의 칼날도 이들 친구들의 배후에 있는 홍업씨를 겨냥하고 있다.

사업실패로 신용불량자 신분이던 김성환씨나 권투경기 흥행사인 이거성씨가 혼자 힘으로 이권에 개입했을리는 만무하다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이들 수사의 종착점은 홍업씨의 묵인 또는 지원여부가 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러다가 모방수사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며 역사의 우연에 기막혀 하고있다.

김성환씨는 홍업씨의 ‘죽마고우’다. 본인도 인정하고 홍업씨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김씨는 홍업씨와 유치원에서 만나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과외도 함께 받았다. 홍업씨가 경희대를, 김씨가 중앙대로 진학하면서 잠시 갈리는 듯 했던 이들 관계는 ROTC 10기 동기로 다시 맺어진다.

동기들은 김씨를 남자답고 남의 얘기를 잘 하는 않는 친구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홍업씨는 ‘암울했던’ 야당시절 김씨를 만나 흉금을 털어놓았고 한때는 포장용 박스제조업체를 동업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돈거래도 거리낌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김씨는 스스로 “홍업씨와는 80년대이후 서로가 급전이 필요할 때 차용증도 없이 돈을 주고 받은 사이”라고 털어놓았다.

이거성씨는 경희대 체육학과를 나와 권투선수로서 승부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한때 동양챔피언까지 지낸 이씨는 현역생활을 접은 뒤 프로복싱 흥행사로 변신했다. 복싱계에서 이씨의 수완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이씨는 지난해 5월 조인주 선수와 북한의 홍창수 선수간 리턴매치를 성사시켜 화제를 모았다.

이씨는 홍업씨의 대학 1년 후배로 민주당 김홍일 의원의 처남이자 홍업씨 대학동기인 윤흥렬씨의 소개로 홍업씨를 알게 됐다. 이씨의 성격도 김성환씨처럼 남자답고 화통하다는 것이 주변의 공통된 얘기다. 홍업씨는 이런 이씨를 후배이상으로 가까이하고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한다.

이씨는 홍업씨가 95년 선거홍보기획사인 ‘밝은세상’을 설립하며 선거전에 나서자 김성환씨와 함께 사재를 털어가며 홍업씨를 도왔다고 한다. 두 사람은 또 현정권 출범이후 홍업씨가 서울 역삼동에 마련한 개인사무실에 수시로 드나들며 측근임을 과시했다고 한다.


트로이의 목마를 생각하는 검찰

따라서 두 사람의 이권개입행각도 홍업씨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기본적 시각이다. 김성환씨의 경우 특별세무조사 무마, 검찰내ㆍ수사 선처, 국방부 발주공사 수주 등 전방위 로비능력을 보여왔고 이거성씨도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을 상대로 검찰수사를 무마해주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했다.

특히 두 사람은 안면을 가리기로 유명해 로비의 정점으로 불리는 대 검찰로비에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ROTC 동기나 청탁업체 관계자들은 두 사람이 검찰 고위간부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불러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전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로비스타일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성환씨가 여러 종류의 사건을 잡식하는 스타일이라면 이거성씨는 한건을 계속해서 파고드는 스타일로 분류된다. 김씨는 주로 한건에 대해 한번의 로비를 벌인 반면 이씨는 이재관씨에 대한 검찰과 금감원이 추적이 계속된 1년간 6차례에 걸쳐 금품을 받았다.

그렇다면 검찰은 황태자의 친구들을 어떻게 설득 또는 압박해 홍업씨의 비리의혹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 5년전 김현철씨 사건 때 검찰은 각고의 설득 끝에 박태중, 이성호씨 두 측근을 현철씨가 조사받고 있는 특별조사실로 보낸 적이 있다. 결과는 참담했다.

현철씨가 “너희들이 어떻게…”라며 두 사람을 매몰차게 내보냈다. 검찰은 그럼에도 끈질긴 계좌추적과 두 친구에 대한 압박을 통해 현철씨의 비자금을 파고들어 끝내 그를 사법처리했다.

홍업씨 수사팀도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지만 문제는 홍업씨에 대한 김씨와 이씨의 의리가 고래심줄처럼 질기다는 데 있다. 두 사람은 아직 홍업씨의 ‘홍’자만 나와도 말문을 닫는 등 ‘쭉 뻗어버린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럼에도 수사팀은 ‘트로이의 목마’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을 욕심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라며 두 사람에 거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손석민 기자 hermes@hk.co.kr

입력시간 2002/06/0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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