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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평론] 투표장을 비켜가는 국민

[정치평론] 투표장을 비켜가는 국민

6.13 지방선거가 다음 주로 다가왔다. 월드컵에 쏠리는 국민의 뜨거운 관심과는 달리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은 차갑다. 자칫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가장 낮았던 투표율은 38.8%로 1960년 12월 29일에 치러졌던 첫 번째 서울시장과 도지사 선거였다. 중앙선관위가 월드 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 수는 42.7%(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84%)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투표율이 투표하겠다는 비율보다 낮음을 감안하면 정말 큰 문제다. 1998년에도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비율이 67.8%였으나 실제 투표율은 그보다 15%가 낮은 52.7%였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월드컵 분위기가 거의 살아나지 않았다. 그런데 순식간에 월드컵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었다. 국민의 관심을 끈 요인은 딱 한 가지, 월드컵 개막 직전에 치른 평가전에서 보여준 한국 국가대표팀의 일취월장한 실력이다.

축구의 종주국이며 우승후보 가운데 하나인 잉글랜드와 대등하게 맞서 1대1로 비겼다. 전 대회 우승국이자 세계 랭킹 1위인 프랑스에게는 아깝게 2대3으로 졌으나 경기내용은 팽팽했다. 불투명했던 16강 진출 가능성이 커지자 순식간에 월드컵 열기가 확산된 것이다.

지방선거도 국민의 관심을 끌만한 요인이 있으면 투표율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니까 국민의 눈길을 끌 흥미 요소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재미만으로 선거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월드컵 축구경기야 재미없으면 안 보면 된다.

그러나 선거는 그럴 수 없다. 재미없다고 기권하면 민주주의가 뒷걸음칠 수도 있다. 정말로 정치가 잘 되고 지방자치가 잘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다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재미를 느낄 수 없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지켜보면 어떨까. 우선 낡고 썩은 기성정치에 신물이 났다면 새로운 지방정치인의 등장을 눈여겨보자. 이번 지방선거 참여 정당이나 단체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유권자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던 거품정당도 있겠지만 새로운 정치를 약속하는 정당들도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녹색평화당 등 진보를 앞세운 정당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보수 일색의 우리 정치의 폭을 넓힐 것이다.

또 시민운동가, 환경운동가, 여성운동가, 노동운동가들이 정당의 힘을 빌리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이들의 당선 여부도 지켜보자. 1998년 지방선거 때는 민주노총과 국민승리 21이 내세운 49명의 후보 중 23명이 당선(당선율 46.9%)되었다. 한국노총도 정책연합으로 78명이 여야당의 공천을 받았는데 41명이 당선(당선율 52.6%)되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22명 후보 가운데 40.9%인 9명이 당선되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35명의 후보 중 21명이 당선되어 60.0%의 당선율을 나타냈다. 한국농어민후계자연합회는 300여명을 출마시켜 135명을 당선시켰다. 이번에는 과연 이들이 지방정치에 얼마나 진출할까.

또 하나 지켜봐야 할 것은 영남 지역에서 '지역 싹쓸이' 현상이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대구·경북 지역과 부산·경남 지역에서 획득했던 의석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었다.

1995년 지방선거 때에는 김영삼 정부에 대한 영남지역 주민들의 비판적 정서가 민자당 지지를 약화시켰고, 이에 따라 무소속이 대거 진출했다. 그러나 1998년 지방선거에서는 김대중 정부에 대한 '반사적 방어심리'가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IMF 체제라고 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 책임을 져야 할 한나라당이 대구와 경북에서 72.0%씩, 부산에서 45.1%, 경남에서 74.6%를 득표했다.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호남 지역이 집권여당이 된 데 따른 반사적인 방어심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집권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 특히 반대지역정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영남 지역의 결집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민주당이 영남 출신의 노무현 후보를 앞세운 상황에서도 이런 견제심리가 나타날지 지켜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손혁재 시사평론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입력시간 2002/06/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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