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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희망을 심어준 승부사 히딩크

[2002 한·일 월드컵] 희망을 심어준 승부사 히딩크

도전정신과 철저한 준비로 한국 축구 업그레이드

“거스 히딩크 감독을 귀화시켜라.”

월드컵 출전 반세기 만에 한국 축구를 당당히 세계 강호들의 반열에 올려 놓은 거스 히딩크(56)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에 대한 찬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엄청난 체력훈련과 치밀한 상대분석, 과감한 용병술’ 한국이 폴란드를 꺾고 월드컵 축구 사상 본선에서 첫 승을 거두고 미국과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1승 1무의 선전을 한 데에는 히딩크 감독의 치밀한 준비와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용병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1월 부임한 이후 한국에 맞는 전술선택과 옥석 고르기를 계속했던 히딩크 감독은 승패의 관건은 체력에서 결판날 것으로 보고 강도 높은 파워 트레이닝으로 선수들을 조련했다.

대한 축구 협회의 한 관계자는 2000년 12월 히딩크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자 “대표 선수들이 나무에 올라가라고 지시한다면 따를 것이냐”고 물었으며 “선수들이 감독의 말을 잘 따를 것”이라는 대답을 듣자 감독 직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처음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청사진을 갖고 있었으며 때마침 한국 대표팀이 손을 내밀자 이를 잡았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최근 네덜란드 테레그라프지와의 회견에서 “한국 선수들의 순수함에 놀랐다”고 밝혔다. 이 말은 히딩크 감독이 자신의 계획대로 충실하게 따라준 한국 선수들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말 그대로 네덜란드인의 특징인 도전과 모험심, 철저한 준비, 완벽한 계획을 통해 자신의 야망과 우리의 염원을 실현한 것이다.


평범한 선수시절, 화려한 지도자 생활

네덜란드 비스에서 태어난 히딩크 감독은 21살 때인 1967년 네덜란드 1부 리그 그라프샤프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 이어 71-72시즌은 네덜란드 최고명문 PSV 아인트호벤에 속했으나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다 다음 시즌에 그라프샤프에 복귀했다.

이어 76년부터는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워싱턴 디플로매츠, 새너제이 어스퀘이크스에서 각각 한 시즌을 보냈으며 77년에 네덜란드로 복귀했다. NEC니메가(77년~81년)에서 활약하다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라프샤프(81년~82년)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시즌을 보냈다. 히딩크 감독은 36세까지 선수생활을 했지만 그렇게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다.

히딩크는 은퇴와 동시에 그라프샤프 구단 코치를 맡아 지도자 생활에 접어든다. 두 시즌을 보낸 뒤에는 PSV 아인트호벤으로 옮겨 코치생활을 했고 다시 두 시즌뒤에는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승격됐다.

히딩크 감독이 국제축구계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때부터이다. 곧바로 팀을 1부 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것을 시작으로 3년 연속 팀을 네덜란드 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특히 88년에는 네덜란드 리그와 FA컵, 유럽 챔피언스 리그 등 3개 타이틀을 동시 석권해 단숨에 세계적인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터키 페네르바제(90~91)를 거쳐 91년 스페인 발렌시아 클럽 감독을 맡았으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95년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히딩크 감독은 96 유럽선수권에서 네덜란드를 8강으로 이끌었으며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4강 진출했다. 당시 예선에서 한국 대표팀을 5-0으로 격파해 차범근 감독을 중도 하차시켰다.

히딩크 감독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98~99) 감독으로 남미-유럽 클럽축구 최강전인 98 도요타컵 우승을 차지했으나 스페인리그에서 2위에 그치자 트레이드 실패 등의 책임으로 사령탑에서 물러났고 2000년 상반기에는 3개월 계약으로 레알 베티스 감독을 맡기도 했다.


한국땅에서 영웅으로 거듭났다

승승 장구하다 제동이 걸린 히딩크 감독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들은 후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재기하기로 마음먹고 2001년 1월 부임했다. 체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화끈한 공격축구를 지향하는 히딩크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한국 대표팀 지도에도 반영됐고 히딩크 감독은 전술훈련을 소홀히 한다는 주위의 비난에도 불구, 고집스럽게 체력강화 훈련에 주력해 왔다.

또 안정된 수비가 전력 향상의 기본이라는 원칙에 충실했던 히딩크는 스리백과 포백을 오가며 한국 축구에 맞는 수비라인을 꾸준히 시험해 왔다.

히딩크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와 스트라이커의 예리한 골 감각을 의미하는 ‘킬러 본능’ 등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말솜씨와 젊은 연인 엘리자베스와의 각별한 관계 등으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전에서 승리한 후 “월드컵 첫 승리는 한국 축구에 큰 의미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대표팀을 맡을 때 일부 사람들은 월드컵에서 1승만 거둔다면 다 이룬 것이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며 “팬들의 성원을 바탕으로 거둔 이 첫 승리는 한국축구가 한단계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부임한 이후 선수들이 내 지도방식에 너무나 헌신적으로 따라와줬으며 최근 몇 개월간 많은 연습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큰 힘이 됐다”며 “선수들은 나를 잘 따라 주었고 내가 가르치는 것들을 빨리 배워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6월 10일 미국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뒤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승부였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전력을 정비해 14일 포르투갈전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겠다”고 덧붙였다.

경주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2/06/1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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