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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준비된 대통령’은 필요 없다

퇴임한 지 1년 5개월이 넘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6월 8일 리틀 록(아칸소 주) 강변에 세워지는 클린턴 기념도서관 부지 착공 공사가 노조측 반대로 중단되었다가 곧 재개 될 것 같다는 기사를 실었다.

기념 도서관 문제가 불거진 것은 도서관을 지을 건설 노동자들의 상부 단체인 산업노조가 그 동안 민주당과 클린턴 당선 및 재선을 위해 많은 헌금을 했는데도 이들 노조 건설 인력을 100% 고용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도서관측은 건설 공사에 노조원의 75%가 참가하는 등 타협이 이루어 졌다고 밝혔다.

이 기사를 언뜻 보면 언론이 클린턴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기사를 꼼꼼히 읽다 보면 기념관 건립을 위해 헌금한 사람들 가운데 마크 리치라는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클린턴은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 경제사범인 마크 리치로부터 100만 달러의 헌금을 받았다. 또 산업노조도 250만 달러나 냈다. 이 도서관의 건설비용은 1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 도서관 개관에 앞서 아칸소대학(리틀 록)은 내년 1월 클린턴 강좌를 개설한다. 1996년 공화당 후보였던 밥 돌 전 상원의원, 클린턴을 견제한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 클린턴 섹스 스캔들의 변호사였던 데이빗드 켄들 등이 강사로 나선다.

좀 색다른 그에 관한 보도도 있었다. 영국 BBC 방송은 4월 2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클린턴을 초청해 “재임 중에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자신의 언급을 지키도록 할 것 같다고 보도 했다. 북한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북한의 해명을 클린턴에게 한다는 것이다.

클린턴에 관한 기사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주는 여론조사가 있다. 갤럽이 4월 8일 미국 성인 남녀 1,900명을 상대한 최근의 전직 대통령 8명의 직무수행 방식에 대한 찬반조사를 벌인 결과, 클린턴이 존 F케네디(83%), 로널드 레이건(73%), 조지 부시(69%), 제럴드 포드(60%), 지미 카터(60%) 다음인 51%를 기록했다.

갤럽이 그의 2001년 1월 퇴임 후 14개월 만에 처음 실시한 그에 대한 조사는 그의 재임 중(1993~2001) 평균 찬성률 55%에 못 미쳤으나 첫 임기(1993~1997년)에 기록했던 50%보다 높은 수치이다. 그의 2기(1997~2001) 중 찬성률은 61%로 경제성장, 국제평화에 노력한 결과였다고 갤럽 여론 조사자인 프랭크 뉴포트는 분석했다.

클린턴에 관한 여론조사 중 특이한 것은 47%가 클린턴의 직무능력에 대한 반대를 표시 한 점이다. 이는 닉슨에 대한 반대율(61%)에 이은 최하위였다. 그러나 그의 지지율의 구성을 보면 재임중의 그의 지지그룹과 거의 비슷하다.

클린턴은 민주당원의 79%, 비백인의 79%, 18~29세 유권자 63%, 무소속의 60%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비해 공화당원은 21%, 여성은 50%, 50~64세의 백인은 41%, 중서부 주민은 41%의 지지를 보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을 예견하듯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출마했을 당시의 선거 양태를 그린 베스트 셀러 ‘원색(Primary Colors)’을 익명으로 냈던 정치평론가 조 크라인(뉴요커지 칼럼니스트)는 3월 클린턴 자신보다 클린턴을 더 이해하고 비판 하려는 자세로 ‘내추럴-빌 클린턴 대통령제의 잘못된 이해’라는 230쪽짜리 책을 냈다.

지난해 역사부문 저작에서 퓰리처상을 탄 조셉 에리스(‘건국 형제들’의 저자)는 “우리가 책을 역사에 대한 초안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이 책은 클린턴 대통령 역사에 대한 초록이다”라고 격찬했다.

조 클라인은 뉴스위크의 백악관 출입기자 등은 지내며 1989년께부터 클린턴을 알아왔고 클린턴이 대통령에 출마 했을 때는 클린턴이 그에게 몸을 기댈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됐다.

흑인인 그는 신민주파에 속하는 자유주의 지식인이다. 클린턴과 거의 신념과 신조가 같았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의료보험제도를 둘러싼 자유주의적 정책의 포기와 가난한 계층을 위한 복지정책 확대의 부진으로 인해 두 사람은 서먹한 관계가 됐다.

그 후 그는 96년 ‘원색’를 익명으로 출간했으나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인간적으로 클린턴을 무덤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14년간 사귄 클린턴은 ‘태어난(natural) 정치가’였으나 신념과 신조가 약했다.

그렇다고 현금에 집착하거나 권력욕에 사로잡힌 편집광은 아니었다. 프랭크린 루즈벨트 같은 영웅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그에게 닥쳐온 것은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과 같은 추문정치와 여론조사를 쫓아 신념을 바꾸는 추종정치였다.

클라인은 결론을 내고 있다. “클린턴이 그렇게 바라던 위기를 부시는 9ㆍ11로 얻어 국민을 통합 할 수 있었다. 60%에 가까운 국민이 클린턴을 여전히 좋아하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한다. 새 지도자는 생각이 새롭고 목적도 뚜렷해야 한다. ‘준비된 대통령’은 이제 필요 없다.”

클린턴은 DJ나 YS처럼 어렸을 적부터 ‘준비된 대통령’을 꿈꾸었지만 목적과 신념과 신조를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준비보다 신념과 신조를 닦으라고 클라인은 대통령 지망자들에게 권하고 있다.

박용배칼럼

입력시간 2002/06/1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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