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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한국화가 송수남

 선에 담긴 선비정신을 보라

‘마디마디 뜻이 매쳐(맺혀) 곧으면서 굳세거니.’

인사동의 명물 고서점 ‘통문관’ 주인으로 국민문화훈장 수상자인 한학자 이겸노(93)옹이 방명록에 일필휘지했다. 전 홍익대 회화과 교수 이대원은 “이번 그림은 책가도(冊架圖)를 보는 것 같다”는 글을 남겼다.

2002 한일 월드컵 취재차 방한한 영국 BBC 방송 ‘East Asia Today’의 프로듀서 프란시스 마커스도 6월 6일 전시장을 찾아와 인터뷰를 했다.

6월 25일까지 인사동 노화랑에서 펼쳐지고 있는 한국화가 남천 송수남(南天 宋秀南ㆍ64ㆍ홍익대 동양학과 교수). 국내에서는 5년 만에 열리는 23번째 개인전에서는 현장 구매도 심심찮게 이뤄진다.

도쿄에서는 대표적 화랑인 히로다 화랑의 초청전으로 그의 ‘붓놀림’전이 매년 열렸으나 정작 국내서는 학교 일로 바빠 미뤄온 전시회다.


우리시대 한국화를 구현해 낸 작품들

‘안의 구조와 깊이’라는 제목을 단 이번 전시회는 40호에서 600호까지 지난해 작업했던 28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화려한 색상이나 비범한 착상으로 가득 찬 여느 전시회장 풍경을 여기서 기대한다면 큰 착각이다.

한지에는 가늘고 굵게, 짧고 길게, 짙게 옅게 그어 나간 붓 자취만이 빽빽이 도열 됐을 뿐이다. 마치 책꽂이를 연상케 한다는 인상평이 충분히 나올 법 하다.

평론가 오광수씨는 “직물의 단면을 확대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원삼국 시대의 토기 표면에 새겨진 빗살문을 보는 느낌”이라며 “정신에의 환원 의식”이라고 평했다. 남천 특유의 ‘먹의 정신’을 풀어 쓴 말이다.

그는 이번 전시회 작품에 대해 “선을 그었을 뿐이다. 대나무를 연상해서 한국 선비들의 바른 정신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곧음(直)과 바름(正)의 경지를 이 시끄러운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는 첨언이 한참 뒤에 나온다. 5년 전부터 몰두해 오고 있는 작업이다. “세상이란 항상 시끄럽잖아요?” 그는 자신의 궁극적 지향점이 직과 정, 즉 수묵의 정신성을 구현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먹으로만 그린 그림은 한국의 수묵 전통에서만 가능하죠. 일본에는 수묵의 전통이 아예 없죠. 중국의 수묵은 이상에만 치우쳐 있어요. 한국은 현실 세계를 중시해요.” 그래서 그의 이상은 도연명의 무릉도원도, 안견이 보인 몽유도원의 초월적 경지도 아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와 추사 김정희의 정신을 우리 시대에 구현해 내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 꿈은 ‘한국화’를 가장 먼저 주창했던 송수남의 의무이자 권리다.

“동양화란 용어는 일본이 서양화란 말에 대비해서 만들어 낸 편의적 용어죠. 일본과 중국 것 아니면 모두 뒤떨어 진 것으로 보던 일본의 편견이 만든 말이죠.” 1980년대 그가 주창했던 ‘한국화’ 운동은 중국의 국화(國畵)나 일본의 일본화 처럼 한국에도 한국만의 그림이 있음을 알리는 예광탄이었다.

그가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198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했던 ‘현대한국수묵화전’이었다. 그것은 “이제 한국화에 길은 없다”는 비난 반 자탄 반의 분위기 속에서도 성능 좋은 카메라로 찍은 듯 풍경 베끼기를 답습해 가던 기존 화단에 내려친 죽비였다. 국내 미술 사상 단일 그룹을 위한 대규모 기획전으로서는 초유의 전람회였고 그는 중심 인물이었다.


그의 그림에 담긴 한국적 이상향

선과 선은 어느 하나도 겹쳐짐 없이 제 갈 길을 가다 뚝 끊긴다. 길건 짧건 선들은 절대 서로를 침해하지 않는다. 야트막하게 드러누운 산, 유유자적하는 강, 넉넉한 녹음과 풍성한 방초 등 한국인이라면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이상향의 모습이 바로 그의 한국화에서 나왔다.

호방한 묵필로 쭉쭉 그어진 그의 선은 무기교의 자연주의 그 자체다. 1981년 ‘전통 회화 ‘81전’을 기점으로 1983년 ‘한국화, 오늘의 상황전’, 1986년 ‘한국화, 그 다변성전’, 1987년 ‘한국화 신표현전’ 등 1980년대 그가 참여했던 일련의 그룹전들은 한국화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향한 일련의 질문들이었다.

그의 그림속에 나오는 풍경은 삶과 인간에 대한 그의 태도를 정확하게 닮았다. “나는 단체나 모임을 너무 싫어해요. 즐겁게 산다기 보다 마음 넉넉하게 살고 싶죠. 마치 내 그림은 전체가 여백인 것처럼.” 특히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없이 그는 부인과 단둘이 자족적인 삶을 꾸려 가고 있다.

현재 그는 일주일의 절반(월~수)은 학교서 가르치고 나머지는 30평짜리 화실에서 그림을 구상하는 극히 단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언론과의 인터뷰를 물리쳐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서슴없이 “최근 신문에 난 것들은 전부 다 기자들이 지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자신의 웹사이트는 제자들끼리 모여 만들어 업 데이트 시키고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 산그림전 구상 중

미술인으로서는 드물게 그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학생들과 열 마디 하면 아홉 마디는 쓸 데 없는 이야기 같아 말을 아낀다”고 말했다. 그에게 언어가 끊긴 자리란 또 다른 저술 작업의 출발점이다.

1977년 ‘수묵화’에서 출발, 2001년 ‘여백의 묵향’ 등 지금까지 모두 11권의 책을 썼다. 매화-난초-국화-대나무의 다양한 모습을 자신의 그림과 글로 보여주는 독특한 사군자론도 구상중이다. 1990년 예경사에서 펴냈던 ‘남천사군자’(4권)는 기법적 면으로 파고 들었지만 준비중인 책은 자신의 사군자 그림을 곁들여 이야기식으로 꾸민 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글재주는 혈기 방장하던 1950~60년대에는 서양화가이자 시인 이제하 등과 함께 자취와 하숙을 번갈아 했던 시간의 산물이다. 1987년 일간스포츠에 회당 20매짜리 ‘송수남 에세이’를 연재한 것 역시 시인이자 당시 문화부장이었던 이성부의 부탁 때문이었다.

고은, 박재삼, 박성룡 등 선배나 동년배 문인들과 교분을 맺었던 그는 “이제하는 서양 가곡을 정말 잘 불렀다”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북한산의 보현봉과 형제봉 사이에 있는 평창동 자택에서 항상 산공기를 마시며 산다. 안개 짙은 날에는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가 되는 곳이다. 그에게 산이 그림의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해외에서 송수남을 보는 눈은 놀라움에 가깝다. 1975년 스톡홀름 동양 박물관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 동양화 초대전의 주인공으로 그를 선정했다. 당시 그는 주최측의 요청으로 전시장을 찾았던 관람객들 앞에서 특유의 기법을 시범해 보여 찬탄을 자아냈다.

이어 1981년에는 한국화가로는 처음으로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수묵화 2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1995년 런던 대영박물관에 도자기 그림 ‘폭포’가 전시된 것 역시 국내 작가로는 처음이었다. 당시 연세대 언어학당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던 그곳 큐레이터가 “한국의 전통 사상과 동양 철학이 표현돼 있다”며 그의 수묵화와 함께 사갔던 도화(陶畵)였다.

가장 한국적이지만 과감한 조형적 압축미 덕에 동시에 가장 현대적이기도 한 그의 수묵화는 끊임 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는 주최측의 부탁으로 포스터 그림을 그렸다. 그가 굵고 힘찬 먹으로 그린 커다란 원 그림은 영화제에 참석했던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0년 개최될 예정인 여수시의 ‘수산박람회’ 포스터도 그의 작품이다.

가장 한국적인 먹의 전통에서 건져 올린 현대성은 화실과 전시장을 뛰쳐 나와 21세기 한국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전시장에 붐비는 관객들을 보며 그는 1980년대 그려둔 일련의 산수화에다 새 산수화를 추가, 또 다른 ‘산그림전’을 구상 중이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6/1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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