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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축구는 대권에 이르는 지름길이 아니다

온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된 듯하다. 전국에서 빨간색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고 ‘대~한 민국…’이라는 응원 구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수십만 명이 폴란드, 미국과의 경기에서 우리 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길거리 응원’에 나섰다.

혹자는 용광로처럼 분출하는 응원 열기를 해방이후 처음 보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20,30대를 중심으로 한 이 같은 응원의 힘은 국가의 이미지를 바꿔버릴 수 있을 정도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 이전만 해도 ‘열기’가 없다는 말이 나왔으나 지금은 정반대다.

이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로지 축구만을 좋아하고 애국심이 저절로 우러나와 응원을 하는 것일까. 물론 이 힘의 정체를 단순하고 명쾌하게 해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축구’가 이 힘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결집을 보다 견고하게 하는 요인들이 있다. 예를 들어 거스 히딩크 감독이 비록 외국인이지만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갖고 고참과 젊은 선수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등 뛰어난 용병술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또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등을 보여주는 선수 개개인들도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다. 명승부의 장면을 지켜 보면서 가슴속에 그 동안 맺혀있던 한(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들어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사라져 버렸다. 또 여야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인기도 고만고만하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대다수 국민들은 DJ 정권이 들어서자 개혁과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으나 그 결과는 부정부패만 양산된 꼴이 됐다. 국민의 응어리진 힘은 마침내 축구를 통해 솟구쳐 나온 것이다. 그러면 축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는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정치인들은 너도 나도 ‘히딩크처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히딩크의 인기에 편승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얄팍한 작전이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이 같은 선택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나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도 축구를 통한 인기몰이에 나섰다.

물론 이번 월드컵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몽준 의원의 경우는 다른 대선 주자들과는 차이가 있다. 대한축구협회장도 겸직하고 있는 정 의원은 애초부터 이번 월드컵을 대선에 뛰어 들 발판으로 생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노사모’와 유사한 성격의 ‘MJ 러브’가 이미 본격적인 조직활동에 나서고 있다. 정 의원은 또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www.mjchung.pe.kr)를 통해 정치, 경제, 통일, 외교, 안보 등 전분야를 망라하는 ‘정책보좌 인턴’을 모집하고 있다.

정 의원의 후원회(회장 이홍구 전 총리)도 조직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월드컵 이후 정 의원의 행보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인제 민주당 의원과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 등도 덩달아 움직이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까지 가세한 ‘4자 연대’ 시나리오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축구를 정치에 접목시킨 정 의원의 ‘어프로치 샷’이 국민에게 어필할 것인가. 히딩크의 교훈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펀더멘털을 구축하기 위해 히딩크는 대표 선수들에게 엄청난 체력 강화를 요구했다.

정 의원은 한국 축구를 세계 수준을 올려놓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지만 정치에서 축구만큼 활약하지는 않았다. 무소속이라는 점을 내세워 민주와 한나라당의 진흙탕 싸움에 가세하지 않았지만 캐스팅 보트의 역할도 외면했다.

또 지역구나 정책 및 입법 활동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것은 아니다. 고 정주영 현대 그룹 회장의 6남으로 현대 중공업의 회장인 정 의원은 정치 자금이 따로 필요 없는 재력가이며 학력이나 경력 등도 탄탄하지만 축구이외의 비전은 제시한 적은 없다.

특히 현대의 고향인 울산에서 부친의 후광으로 국회의원이 됐으나, 울산은 언제나 노사분규가 끊이질 않고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처럼 재벌이자 축구광인 정 의원은 이제 한국 정치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축구에 쏟아 부은 정열을 정치로 돌려야 할 때다. 축구로 정치에서 꽃을 피우기 보다 축구를 거름으로 생각해 정치를 키워야 할 것이다.

이장훈 부장

입력시간 2002/06/1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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