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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봉산탈춤 동호회 '신명얼쑤'

어깨춤 절로 "얼쑤~ 우리문화"

보기만 해도 어깨춤이 절로 나는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문화 봉산탈춤. 바로 이 봉산탈춤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둥지를 틀고 있는 '신명얼쑤'는 올해로 창립 3주년을 맞는 봉산탈춤 동호회다. ‘신명’이라는 기존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발전된 이 동호회는 온라인으로 둥지를 옮겨 더욱 폭 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탈춤으로 하나되는 봉산탈춤동호회

신명얼쑤는 흥겹고 신명나는 탈춤 고유의 특성과 얼쑤라는 추임새(판소리 중간에 들어가는 흥을 돋우기 위한 감탄사)를 합쳐서 만든 말이다. 그야말로 탈춤은 얼쑤 하는 소리가 날 만큼 신명난다는 것이다.

동호회 운영을 맡고 있는 김재성씨는 "신명얼쑤는 이름만큼 항상 흥겨움으로 가득 찬 동호회"라며 "탈춤으로 하나된 모든 회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신명얼쑤의 가장 큰 자랑은 회원들의 열정적인 참여정신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대부분의 회원들이 직장인이지만 이들은 결코 탈춤을 취미로만 여기지 않는다. 자신들의 철학이 담긴 탈춤을 추고 싶다는 것이 신명얼쑤 회원들의 소망이다.

중요 무형 문화제 제 17호인 봉산탈춤은 아직도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기만 하다. 그래서 신명얼쑤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봉산탈춤에 대한 각종 정보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매주 수요일 경기 광명시 철산동에 위치한 서울 시립 근로청소년 복지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풍물강좌에는 30여명의 회원들이 꾸준히 참여해 봉산탈춤을 널리 알리는데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또한 신명얼쑤는 외부에서 열리는 각종 공연과 자신들만의 정기공연 등을 통해 봉산탈춤을 홍보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제11회 오리문화제 공연과 광명시 조계종 금강정사 초파일 대공연을 비롯해 직장인 연합 연극제에서 공연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게다가 6월 2일 광명시 시민회관에서 열린 신명얼쑤의 정기공연은 여러 단체와 많은 시민들의 호응 속에 성황리에 막을 내리기도 했다.


"탈을 벗기 위해 탈을 쓴다(?)"

신명얼쑤는 다른 여러 봉산탈춤 동호회와 다양한 교류를 통해 탈춤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가고 있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모자란 정보들을 교환하며 가끔은 비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의 탈춤실력을 겨루기도 한다.

신명얼쑤 창립자인 박창규씨는 “같은 동호회들간의 협조는 봉산탈춤을 이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며 “좀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신명얼쑤가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학생들의 참여다. 그래서 신명얼쑤는 학생들의 동호회 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그들과 함께 호흡할 예정이다.

온라인에 개설된 신명얼쑤(http://cafe.daum.net/sangsadiya)를 방문하면 봉산탈춤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신명얼쑤의 탈춤 사랑은 단순히 그것을 알리고 계승하는 데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흥겨운 우리 가락에 맞춰 거짓을 잊고 신나게 펼쳐지는 탈춤을 통해 진실과 희망의 모습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그들의 염원도 함께 담겨있다.

또한 탈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우리 조상들의 현명한 지혜를 후대에 계승하고 발전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탈춤의 진정한 묘미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또한 신명얼쑤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봉산탈춤이란?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해서(海西:황해도 일대) 탈춤에 속하며 산대도감(山臺都監) 계통의 극이다.

예부터 해서의 각 지방에는 5일장이 서는 거의 모든 장터에서 1년에 한번씩은 탈춤놀이가 벌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봉산은 남북을 잇는 유리한 지역적 조건 때문에 나라의 각종 사신(使臣)을 영접하는 행사가 잦았고 또 지방의 농산물이 모여드는 중심지였기에 더욱 이런 놀이가 성행하였다.

약 200여 년 전 봉산에서 이속(吏屬) 노릇을 하던 안초목(安草木:初目의 訛傳)이 전남에 있는 어느 섬에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후 나무탈을 종이탈로 바꾸는 등 많은 개혁을 이루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19세기 말기부터 해서탈춤의 대표적 놀이로까지 발전하였다.

 

 

강윤화 자유기고가 soulour@mail.co.kr

입력시간 2002/06/2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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