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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특집] 6월, 대한민국은 레드 신드롬에 빠졌다

투쟁·선동의 색에서 열정과 하나됨의 상징으로

‘투쟁과 선동의 도구에서 하나됨의 상징으로’

한반도가 붉은 색깔 아래 하나가 되고 있다. 월드컵 경기장은 물론이고 도심의 거리, 직장, 학교, 산업현장, 가정에서는 온통 붉은 물결이 넘실거린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교사와 학생, 직장인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온 국민이 ‘신명 나는’ 레드 신드롬에 흠뻑 빠져 있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붉은 색은 이념적 의미가 짙게 배여 있는 색깔이었다. 당시 대학가에선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경찰서로 연행되던 때도 있었다.

노사 분규가 있던 산업 현장에서 붉은 띠는 저항과 선동의 도구였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중ㆍ장년층들은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고 부르며 붉은 색에 적대감을 투영하기도 했다.


화해와 통합의 지렛대

그러나 지금 붉은 색은 온 국민이 함께하는 ‘열정과 하나됨’의 상징이 됐다. 남녀 노소, 지역 감정, 계층 갈등을 모두 뛰어 넘은 ‘화해와 통합’의 지렛대가 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그간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던 레드 콤플렉스가 소리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한신대 김종엽 교수(사회학과)는 “붉은 색은 프랑스 대혁명 때 흰색(평등),푸른색(자유)과 함께 ‘박애, 연대, 형제애’를 의미했던 3색기의 하나를 이루던 상징적인 색”이라며 “근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공산주의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선동과 저항의 의미로 사용하면서 붉은 색의 의미가 변질돼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 사회 구성원들이 사상과 이념에 몰입하게 되면 그 사회의 탄력성이 떨어져 국가 발전의 저해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번 붉은 악마의 응원을 계기로 붉은 색에 대해 우리 국민의 근거 없는 레드 콤플렉스가 사라지게 돼 다행”이라고 진단했다.

경희대 석사 학위(사회학과)에 재학중인 중국인 유학생 왕샤오링(25ㆍ여)씨는 “중국에서는 붉은 색은 길(吉)한 색깔이라고 해서 결혼 같은 경사 날에 붉은 빛깔의 옷을 입는데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붉은 옷을 입고 질서 정연하게 응원하는 장면은 놀랍고 감격스러웠다”며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두드러지지 않다가도 나라에 큰 일이 있으면 유독 잘 뭉치는 특이한 민족 정신을 갖고 있어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월드컵의 붉은 색 열풍은 실제 병원이나 직장, 학교, 가정에서도 기존의 적색 공포를 완화시키고 국민 동질감을 배가 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민족 공동체의식 고취에 큰 도움

삼성서울병원의 한 정신과 전공의는 “붉은 색깔에 공포나 각박 증상을 갖고 있는 레드 포비아나 대인 기피 증세를 가진 우울증 환자들이 함께 모여 TV를 통해 한국 경기를 응원하면서 실제 정신과 치료에도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온 국민이 붉은 색 아래 하나가 돼 응원전을 펼침으로서 그간 쌓여 있던 사회적 불안, 불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참교육 학부모회 윤지희 회장은 “온 국민이 이념 지역 성별 계층간의 분열과 갈등의 벽을 뛰어 넘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 것은 민족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는 소중한 기획”라며 “갑작스런 현상이라 성급히 판단하긴 이르지만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 의식은 자라는 청소년들에게도 건전한 공동체 문화를 심어줄 수 있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한국-미국 전이 열린 10일 서울시청 앞에서 길거리 응원전을 펼쳤다는 권순천(38ㆍ자영업)씨는 “꼭 15년 전인 1987년 6월 10일 ‘독재 타도, 직선 쟁취’를 외치며 전경들과 대치하던 바로 그 장소인 시청 앞 분수대에서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게 된 것에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그간 온갖 정치 비리와 벤처 게이트로 상대적 절망감에 빠져 있던 국민들이 스포츠라는 비정치적인 이벤트를 통해 쌓였던 울분과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카타르시스의 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건전한 시민 문화 운동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 운동에 시민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시민운동 단체들 사이에서도 전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번 붉은 악마의 응원을 벤치 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붉은악마 응원은 21세기 새로운 문화코드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은 “노사모가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정치 코드라고 한다면, 붉은 악마는 정치적인 이념, 갈등, 대립 등의 고정 관념을 자연스럽게 넘어간 21세기식 문화 코드라고 할 수 있다”며 “이전과 달리 정치적 호불호(好不好)나 선악 개념이 아니라 국민이 정서적인 동질성을 갖는 모습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이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해 갈 지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김환석 교수(사회학과)는 “최근 월드컵 응원을 통해 나타난 국민적 참여 열기는 우리 국민의 에너지가 충천하면 어떤 큰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잠재력을 안팎으로 재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며 “앞으로 정부와 시민단체는 이런 국민적 열정을 분열과 갈등으로 나눠진 국민을 통합하는 기회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지금의 열기는 월드컵이라는 빅 이벤트가 낳은 일시적인 성격이 강하다. 시민운동 단체들도 부분적으로 이런 국민의 잠재적 성향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시민 열기를 시민 운동으로 연결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흔히 축구 경기는 전쟁에 비유되기도 한다. 축구라는 스포츠 경기, 특히 국가 대항전으로 치러지는 월드컵은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마력이 있다. 어떤 국가에서는 자국 팀의 패배가 집단 난동으로 비화되지만, 다른 나라에서 경제 불황으로 실의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이런 국민적 일체감을 어떻게 국민 화합과 통합으로 이끌어 가느냐가 중요하다. 축구는 선수들의 몫이다. 그러나 스포츠를 통한 하나 됨의 열기를 어떻게 승화 시켜 나가느냐는 바로 국민들의 몫이다.

송영웅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2/06/2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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