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빅뱅 오나] 벼랑 끝 민주당, 간판 내리나

6·13지방선거 참패 후폭풍에 휘청

‘노무현호’가 지방 선거 후폭풍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6ㆍ13지방 선거 결과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나오면서 노무현 후보 재신임과 당 지도부 인책론을 넘어 민주당 해체와 신당 창당의 주장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 JP의 자민련과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그리고 월드컵으로 성가를 올리고 있는 정몽준 의원까지 정치적 변화와 모색을 꾀하고 있어 조만간 정치권이 빅뱅 회오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코너에 몰린 노무현 후보

현재 가장 난감한 쪽은 후보 재신임 공약을 걸었던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다. 노 후보는 믿었던 영남권에서 완패한 데다, 정치적 연고지인 부산시장 선거에서 조차 20%를 밑도는 기대 이하의 참패를 하면서 후보 재신임 주장에 맞설 논리적 근거를 상실했다.

특히 노 후보 진영은 충청권 의원과 비주류 일각에서 “노무현 후보는 영남권 후보라는 당초 프리미엄은 나오지 않고, 오히려 충청권을 내주는 역효과만 낳았다”며 ‘노무현 필패론’을 제기하고 있는 데도 마땅한 대응 논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노 후보측과 쇄신파 일부에서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노무현 후보 스타일 대로 정면 돌파를 해야 한다’며 노 후보가 후보를 사퇴하고 민주당도 사실상 ‘해쳐 모여’를 하는 강수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 후보는 국민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한 대선 후보 자리를 사퇴하는 것은 민의를 거스르는 월권으로 비쳐질 수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각 계파와 소그룹별로 백가쟁명식 논의와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화갑 대표를 필두로 한 당권파는 지방 선거 패인을 ‘김 대통령의 아들 비리’로 규정하고 조속히 재신임 문제를 매듭지어 노 후보, 한 대표 체제로 당을 정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권파는 ‘현시점에서 노 후보가 사퇴할 경우 뚜렷한 대안이 없는데 무조건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것은 당의 분열만 재촉하는 해당 행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원길 총장은 “후보 재신임의 절차는 밟아야겠지만 실질적으로 누가 후보가 되든 지금 상태로는 별 차이가 없다”며 “당정 분리 원칙을 당내 민주화의 성과로 꼽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대통령 후보에게 선거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냐”며 후보 교체론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김근태 장영달 설훈 강성구 임종석 천정배 의원 등 쇄신파들은 “후보와 당 지도부에 대한 재신임이 전당 대회를 통해 준엄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당내 분란 조기 수습과 제2의 쇄신을 통해 당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김 대통령의 대국민 직접 사과, 김홍일 의원 탈당, 아태재단 해체, 김방림 의원 검찰 자진출두를 촉구했다. 쇄신파의 좌장 격인 김근태 상임고문은 노 후보가 대선 경선 전에 ‘대선 후보를 먼저 확정한 뒤 그 책임 하에 지방선거를 치르자’고 주장한 점을 상기하며 노 후보와 한화갑 대표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쇄신파들은 선거 패배의 1차적 원인이 청와대의 권력비리와 편중된 인사정책에 있다며 청와대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 아들 비리에 대해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을 직접 겨냥했다.

추 위원은 “노무현 후보와 당 지도부도 측면에 섰던 것에 대해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며 최고위원 동반 사퇴의 뜻도 밝혔다.

장영달 의원은 6월 17일 연석 회의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후보, 이인제 의원이 당대표를 맡는 형태로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주장, 상당수 의원들의 공감을 받았다.


노후보 ‘재경선 카드’로 정면돌파 의지

노무현 후보측은 자신의 거취가 계속 문제가 되자 17일 당무위원과 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 “지방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 등 일련의 문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8ㆍ8 재ㆍ보선을 치른 뒤에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 경선을 통해 다시 후보를 선출하는 것도 수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노 후보는 “전당대회를 통한 재신임을 받는 것에 이의가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전당 대회를 하면 당이 심각한 내분과 권력 투쟁에 휩싸여 8ㆍ8 재ㆍ보선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재ㆍ보선 이후에 (후보 재경선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정리하자”고 제의했다.

노 후보는 후보 교체 문제에 대해 “그간 개혁과 통합 노선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원칙 없는 영입에 소극적 입장이었으나 당내 요구가 계속돼 더 이상 고집하지 않겠다”며 “누구든 입당시켜 원점에서 후보 경선을 다시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 경선을 통해 다시 후보를 선출하는 것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노 후보는 지도부 인책론에 대해 “모든 책임은 나에게 물어달라”며 “지도부는 책임을 물을 만한 권한을 행사한 적이 없었고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다”며 한화갑 대표 체제로 재ㆍ보선을 치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노무현 후보가 이같이 ‘재경선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심각한 내분에 빠져 있는 민주당을 추스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궁지에 몰린 상황을 모른 채하고 비켜 가느니 차리리 의연히 맞서 나가자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비주류가 주장하는 정몽준 의원과 박근혜 미래연합 대표를 영입하자는 주장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일각에서 ‘전당대회를 피하고, 후보 재신임을 연기하기 위한 책략’이라는 비난을 하고 있다. 안동선 고문은 기자 간담회를 자청하고 “재ㆍ보선 이후 자기(노무현 후보) 거취를 묻겠다는 것은 상황 변화 없이 재ㆍ보선을 하자는 것으로 패배를 자초할 뿐”이라며 “자리보전을 위한 술책이면 미봉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노 후보는 이런 비난에 대해 “재ㆍ보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재ㆍ보선 이후 전당대회를 열자는 것이지 만일 전대가 더 중요하다면 지금 당장 해도 좋다”며 “표류하는 상황을 빨리 정리하자는 것이지, 한두 달 후보 자격을 연장하겠다는 술수는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근본 해결책이 안보인다

민주당의 가장 큰 고민은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무현 후보의 사퇴나 한 대표 퇴진도 현재로서는 근본적인 해답이 안 된다. 더구나 지방선거 보다 정치적 비중이 큰 8ㆍ8 재ㆍ보선이 50일 밖에 남지 않아 민주당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별로 없다. ‘흔들리는 민주호’가 어디로 향할 지 관심이 모아진다.

송영웅 기자

입력시간 2002/06/22 13:11


송영웅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