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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통쾌한 복수극?

프랑스 격침시키며 월드컵 8강 위업

아프리카의 최빈국 세네갈이 피지배 민족의 한을 풀고 축구를 통해 진정한 독립국으로 거듭 태어났다.

세계 랭킹 89위인 세네갈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지난 대회 우승팀이자 세계 랭킹 1위인 프랑스를 1-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킨 데 이어 덴마크와 우르과이에 각각 1-1과 3-3으로 비겨 16강에 진출하는 등 아프리카 축구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했다.

세네갈은 또 16강전에서 스웨덴을 2-1로 꺾고 8강에 진출, 이번 대회에서 ‘태풍의 눈’으로 강호의 면모를 과시했다.

세네갈은 6월 16일 16강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0-1로 뒤지던 전반 37분 오른쪽 문전에서 앙리 카마라가 동점골을 터뜨려 극적으로 연장전에 들어갔다. 세네갈은 이어 연장 14분 카마라의 통쾌한 골든 골로 8강에 진출했다.

세네갈은 이날 일순간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새벽 6시(현지시간)부터 생중계되는 TV를 지켜보던 세네갈 국민은 연장전 끝에 극적인 골든골로 승리가 확정되자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세네갈 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앞서 세네갈의 16강행이 확정된 6월 11일 수도 다카르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나와 열광의 축제를 벌였다. 1960년 프랑스의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세네갈은 이날을 ‘제2의 독립 기념일’로 선포하기도 했다.


한ㆍ일 월드컵 ‘검은돌풍’의 선두주자

인구 1,000만 명에 불과한 세네갈은 1인 당 국민총생산이 520달러(1998년 기준)에 머무는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 TV 보급률도 매우 낮아 시민들은 TV가 있는 집에 모여 앉아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정도다.

1444년 포르투갈의 노예무역상이 세네갈에 들어온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지배권을 다투다가 19세기 말 프랑스가 세네갈을 완전 장악했다. 특히 다카르는 1902년 수도로 자리잡으면서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 통치의 중심지가 됐다.

17~18세기에는 다른 아프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노예, 상아, 금 매매 등을 착취당했다. 이전까지 세네갈은 국가 이름보다는 수도 다카르가 더 유명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를 횡단하는 파리-다카르 랠리(자동차 경주)가 다카르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세네갈은 1960년 8월 20일 독립할 때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세네갈은 식민지 시절에도 이미 프랑스 의회에 대표를 파견했다. 독립 이후에도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쿠데타나 내전 등을 거의 겪지 않고 선거로 정권을 교체해 왔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저력이 있는 나라로 꼽힌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언론의 자유가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힌다. 작가, 시인, 영화감독, 음악인을 배출하는 등 문화 수준도 높다. 작가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로 쓴다. 국민들은 가족과 친척을 특히 중시한다. 또 외국인을 환대하고 세계 정세에 관심이 많으며 개방적이다.


아프리카의 자존심 세계에 알려

식민 종주국 프랑스와의 관계도 돈독해 프랑스공동체의 회원국이고 프랑스와 공동방위협정을 맺고 있다. 압둘라예 와데(75) 대통령은 2000년 3월 대선 도전 5번 만에 당선됐다. 변호사 출신의 노련한 정치가로 세네갈 민주당을 창당했다.

초대 대통령은 시인으로 유명한 레오폴드 셍고르이다. 그는 1960년 집권 후 온건개혁, 근대화 노선을 밟으면서 80년까지 재임했다. 주산업이 농업인 세네갈의 국명은 11세기 중엽 이슬람교를 전파한 북부의 제나가족(모리타니의 베르베르계 종족)에서 유래했다.

세네갈 국민의 94%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월드컵에 첫 출전한 세네갈은 프랑스를 꺾고 16강에 진출함으로써 전세계에 자국을 알리는 동시에 식민통치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는 자존심을 얻게 됐다. 또 8강까지 올라가 아프리카 축구의 매운 맛까지 보게 하는 등 전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세네갈 축구의 영웅이 된 감독 브뤼노 메추.
   
세네갈 축구 대표팀 뒤에는 세네갈을 너무나 사랑하는 프랑스 출신의 브뤼노 메추(48) 감독이 있었다. ‘세네프(Senef.세네갈 태생 프랑스 리그 용병.세네갈 대표 선수들은 대부분 세네프다)’보다 더 세네갈을 사랑하는 메추 감독의 애정과 지도력이 없었다면 결코 세계 최강 프랑스를 물리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2000년 11월 처음 부임했을 때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최약팀 중 하나였으며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부나마르 구예 세네갈 축구연맹 부회장도 “당시에는 엘 하지 디우프 등 프랑스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조차 대표 선수로 뛰기를 거부했었다”며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며 대표팀에 참여하도록 한 것은 메추 감독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메추 감독은 3월 세네갈 여인 로카야 은디아예와 결혼, 세네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며 선수들을 감동시켰다.

현역시절 프랑스 리그에서 선수로 뛰었으나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던 그는 1988년 자신이 뛰던 보베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10년간 여러 팀을 전전하는 등 성적을 제대로 올린 적이 없었으며 1999년 프랑스 2부 리그인 발랑스에서도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를 악물었던 메추 감독은 짐을 싸서 아프리카로 떠나면서 인생의 마지막 도박을 걸었다. 프랑스 2부 리그에서 세네갈 선수들의 활약을 보았던 그는 해외에 나가있던 선수들을 설득해 대표팀에 끌어 모았다.

또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이들에게 친구 또는 형처럼 대하며 조직력을 다져 나갔다. 메추 감독이 2000년 10월 대표팀을 맡은 후 세네갈은 믿기지 않는 고공비행을 계속해왔다.

부임 후 국제경기성적이 22전16승4무2패. 2001년에는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첫 본선티켓을 따냈고, 올 2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4강에서 나이지리아를 꺾고 결승에 올라 준우승했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뛰어난 용병술을 보여 주었다. 세네갈팀의 주된 포메이션은 엘 하지 디우프(랑스)와 앙리 카마라(세당)가 투톱으로 서고 칼릴루 파디가(오세르)가 미드필드 왼쪽에서 경기를 지휘하는 4-4-2전형. 하지만 프랑스전에서 메추 감독은 앙리 카마라를 과감히 빼고 디우프를 원톱으로 내세우고 수비를 4명에서 5명으로 보강하며 역습을 시도해 대이변을 만들어냈다.

덴마크전에서도 원톱을 유지한 전반에 경기가 풀리지 않자 후반 들어 앙리 카마라, 슐레이만 카마라 등 스피드가 뛰어난 두 스트라이커를 한꺼번에 투입, 1-1 동점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출신으로 아프리카팀을 맡은 감독은 쟝 뱅상(카메룬 1982년), 라시드 메크루피(알제리 1982), 앙리 미셸(카메룬 1994, 모로코 1998), 클로드 르로이(카메룬1998), 필리프 트루시에(남아공 1998) 등 많았지만 16강에 올려놓은 것은 그가 처음이며 8강도 물론 처음이다.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메추 감독은 “유럽에서 나를 실망시켰던 모든 가치를 아프리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면서 “나는 흰 피부를 갖고 있지만 아프리카인처럼 빨간 피와 뜨거운 심장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2/06/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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