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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구본무 회장이 움직인다

넓어진 대회 활동 반경, 전경련 실세화 위한 '움직임' 관측도

6월 15일 오후, LG 소유의 경기도 곤지암CC. 구본무 LG회장을 비롯해 김각중 전경련회장, 손길승 SK회장, 김승연 한화회장, 조양호 대한항공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경련 회장단 골프모임이었다. 회동은 만찬까지 이어졌다.

국내 굴지의 재벌 오너들로 구성된 전경련 회장단은 1년에 1,2차례 골프모임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날 회동이 주목받은 것은 바로 LG 구 회장이 ‘호스트’를 맡았기 때문이다.

구 회장의 전경련 행사참석은 3년여만의 일이다. 1998년말 LG반도체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에 넘겨준 ‘빅딜’이 시작된 이후 구 회장은 일체의 전경련 모임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빅딜’ 추진과정에서 전경련이 총대를 멘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시였던 것이다.


골프회동ㆍ전경련 회의 참석 등 활발한 행보

물론 이날 골프회동 주선도 구 회장의 자의는 아니었다. LG관계자는 “재계의 어른격인 김각중 회장이 워낙 간곡하게 요청해서 골프와 식사자리를 한번 마련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당장 구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 모임 참석을 재개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이번 골프회동이 LG-전경련간 관계 해빙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5월 9일 전경련 월례 회장단 회의에는 이건희 삼성회장이 참석했다. 전경련 창립기념식 등 특별 행사에는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이 회장이었지만 월례 회장단 회의에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회장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이 회장은 과거 “환갑 전까지는 대외직함을 갖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재계는 이를 “환갑 이후엔 대외직함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했다.

재계 내에선 내년 2월로 임기가 끝나는 김각중 현 전경련 회장의 뒤를 이어 이 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을 맡을 것이란 소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회장의 ‘전경련 회장설’은 가능성에 대한 ‘관측’이라기 보다는 전경련의 실세화를 위한 재계의 ‘기대’에 가까운 측면이 크다.

차기 전경련 회장은 차기정권과 임기가 함께 시작하는 만큼 다양한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측도 “지금은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며 차기 전경련 회장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차기회장 물색작업이 시작될 하반기이후 이 회장을 추대하려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 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을 맡든 맡지 않든, 구 회장이 전경련과 감정적 앙금을 털어내든 내지 않든 분명한 점은 두 총수의 행보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경련 행사 참여 등 대외적 활동반경도 넓어졌지만, 그 보다는 현장을 누비고,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회사의 장래를 향한 끊임없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그룹 최고리더로서 언행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건희 회장 그룹 변화 직접 주도

이 회장은 올들어 계열사 사장단 회의만 세 차례나 주재했다. 4월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시작으로 5월엔 금융계열사 사장단 회의, 5일엔 인재확보전략 관련 전체 사장단 회의 등 3개월 연속 사장단 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장의 메시지는 ‘10년후를 대비하라’로 집약된다. 회의마다 세부 지시사항은 달랐지만, 주제는 결국 실적이 좋을 때 자만하지 말고 ‘5년, 10년후 무엇으로 먹고 살아갈 지’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이 회장이 생각하는 10년후 대비책의 핵심은 사람과 기술이다. 나이와 국적, 비용을 떠나 우수인재를 조기확보하고 시대상와 소비자의 변화를 미리 예측해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핵심기술 개발을 서두르라는 것이다.

물론 지난해부터 강조해온 얘기였지만, 올해는 그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 몇몇 계열사 사장들은 ‘준비 미흡’을 이유로 강한 질책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달엔 이례적으로 ‘현장점검’까지 실시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그룹 감사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돼 사장까지 교체됐던 서울ㆍ제주 신라호텔에 최근 직접 투숙해 월드컵을 앞두고 서비스의 질을 직접 체크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현장점검 이후 에버랜드 사장을 겸직하던 허태학 사장에게 신라호텔만 전담토록하는 부분 인사까지 단행해 신라호텔은 물론 그룹 전체의 긴장도는 현재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이 회장 자녀들의 경영수업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장남이자 후계자인 재용씨가 삼성전자 상무보로 임명돼 경영일선에 본격 투입된 데 이어 올해 7월엔 장녀 부진씨가 신라호텔 기획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올 7월부터는 차녀 서현씨가 제일모직 패션연구소에 부장급으로 입사할 예정이다. 서현씨의 남편인 김재열씨(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차남)도 3월부터 제일기획 상무보로 재직중이다.

삼성측은 “재산분할 문제로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밝혔지만, 최근 1년여 동안 2세들이 집중적으로 계열사 현업에 투입된 것을 우연으로 넘기기는 힘들다.

내년은 이 회장의 ‘신경영’이 10주년을 맞는 해이다. 다가올 새로운 10년을 맞아 세계 일류 브랜드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한편으론 그룹 전체에 강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다른 한편으론 30줄로 접어든 자녀들을 중심으로 재산분할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최근 이 회장의 행보에 대한 재계의 해석이다.


구본무 회장 1등주의 전도사로 변신

구 회장은 올해부터 ‘1등주의의 전도사’로 변신했다. 올 신년사에서 ‘1등 LG’ 달성의 원년을 선포한 구 회장은 임직원 모임에서도, 사업현장 방문에서도, 해외출장에서도 1등에 대한 강한 집념을 표출하고 있다.

종전 LG는 꽤 내성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었다. 공격적이기 보다는 방어적이었고, 냉혈적이기 보다는 온정적 정서가 강했다. 저돌적이었던 현대ㆍ대우와는 달리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신중함이 LG가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을 수 있게 한 밑바탕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한 생존게임이 시작된 현 시점에선 시장제패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구 회장의 1등론도 이런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구 회장은 연초부터 각 사업장을 잇따라 방문해 1등론을 설파하는 ‘현장투어’를 시작했다. 지난달엔 ‘제2의 내수시장’으로 상정하고 있는 중국을 반년만에 또다시 방문해 사업장을 둘러보며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1등 주의와 CEO 책임론은 동전의 양면이다. 뛰지 않는 CEO, 1등 의지와 전략이 부족한 CEO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올들어 각 계열사와 사장단의 긴장도는 어느때 보다도 높아졌다.

삼성과 LG는 이미 국내 수준을 넘어 국제적 브랜드가 됐다.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두 총수의 확대된 리더십이 과연 숙원과제인 ‘월드 베스트 브랜드’의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입력시간 2002/06/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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