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껍데기 미국문화에 대한 경종 울리기

■ 미국 문화의 몰락
모리스 버만 지음
심현식 옮김
황금가지 펴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문화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건국이래 최고의 호시절을 누리고 있는 미국은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는 나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미국의 문화역사학자 모리스 버만은 미국 문화는 겉만 번듯할 뿐 실상은 곪고 썩어서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버만은 한술 더 떠서 미국 문화의 몰락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처럼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이라며 미국 선각자들은 미국 문화의 사망에 대비해 후대에 물려준 문화 유산을 정리해 두어야 한다는 기가 막힌 제안까지 하고 있다.

저자는 문명에는 필연적으로 영고성쇠가 있다는 문화의 순환론에 입각해 점차 심화돼가는 빈부격차, 문맹률의 급격한 증가, 지성에 대한 사회적인 거부감 등이 미국 문화의 몰락이 현실화되고 있는 증거라고 말한다.

미국인의 42%가 세계지도에서 일본을 찾지 못하고 58% 이상이 신문 사설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전반적인 지적 수준이 하락했으며 문화적 상업주의가 모든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민주화 과정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소비와 물질을 찬미하게 만드는 기업의 문화 지배를 성토하고 있다. 기업의 문화지배는 경제적 불평등 뿐 아니라 교육의 붕괴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미국 문화의 몰락은 사람의 노력과 지혜로 저지할 수 없는 운명이라며 ‘수도사적 해법’이란 기발한 방안을 제시한다.

중세 수도사들이 그리스ㆍ로마 문명의 지혜를 필사본 등에 담아 근세 유럽의 문예부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처럼 오늘을 살고 있는 ‘신수도사적 인물’이 학생들에게 고전문학을 권하는 등 미국 문화의 정수를 보존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체적인 흐름은 종말론 내지 신비론에 사로잡힌 반골 학자의 저주나 푸념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미국 따라하기에 골몰하고 있는 지금, 곱씹어 볼 대목도 많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06/2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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