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초종용

초록의 틀을 깬 보랏빛 더부살이

식물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깔은 초록색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생태계에 1차 생산자로서 엽록소를 가지고 광합성작용을 하여 영양분을 만들고 이를 생태계에 공급하면 먹이사슬 고리를 통해 영양분이 고루 퍼지게 된다. 결국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사는 것도 식물을 녹색으로 보이게 하는 엽록소 덕택인 셈이다.

그런데 식물 중에는 초록색을 하나도 가지지 않는 식물들도 있다.

어떻게 그렇게 되냐고, 그래도 식물이냐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기생식물이기 때문이다. 기생식물 중에도 겨우살이나 동백나무겨우살이처럼 광합성도 하면서 기생하는 식물도 있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초종용을 비롯한, 가지더부살이 개종용 같은 식물들은 초록을 전혀 볼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초종용은 희거나 갈색빛이 도는 줄기에 보라색 꽃을 피워서 독특하다. 키는 한 뼘쯤 크기로 자라지만 아주 상태가 좋으면 30cm 정도로 자라기도 한다.

워낙 생김새가 독특하여 처음 보면 무엇이 잎인지 꽃인지 가늠이 잘 안되지만 줄기에는 비늘조각 같은 길쭉한 잎이 어긋나게 달려 있고(물론 초록이 아니라 유백색이다) 꽃은 이즈음 줄기 끝에 피는데 길이가 1, 2cm 정도의 작은 꽃들이 아주 빽빽하게 모여 달린다.

이 꽃이 달리는 부분이 식물 전체 길이의 3분의 1 심지어는 2분의 1이 되기도 한다. 꽃은 통꽃이고 암술과 4개의 수술 등 완벽한 고등식물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자리에 열매도 익는데 타원형 열매 속에는 까만 씨앗이 많이 들어 있다.

초종용은 주로 바닷가에 산다. 울릉도가 주 분포지로 알려져 있지만 서해지방의 섬이나 바닷가 모래땅에서도 드물게 볼 수 있다. 이웃인 아시아 북부의 여러 나라와 유럽에도 있다. 양분을 빼앗아 먹는 기주 식물(奇主植物)은 사철쑥이다.

땅 위에서 보면 따로 자라는 듯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초종용 육질의 뿌리줄기에서 자란 잔뿌리가 기주의 뿌리에서 양분을 수탈한다. 초종용이 대신 이 기주식물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으니 현재로써는 공생(共生)이 아닌 기생(奇生)인 것이다. 그래서 초종용의 다른 별명은 사철쑥더부살이이다.

이렇게 다른 식물이 공들여 만든 양분을 수탈해가는 기생식물이란 존재는 불필요한 것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의 발달로 모든 섭리를 알 수는 없지만 초종용을 비롯한 비슷한 종류의 식물들은 약용식물로도 유명하다.

초종용의 경우 위와 신장에 염증을 치료하거나 위를 튼튼이 하며 강정효과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같은 집안 식구로 백두산에 살고 있는 오리나무더부살이는 현지에서 불로초(지방에 따라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 일 수 있다)로 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초종용이 사라져갈 위험에 있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자생지가 5개쯤 되었는데 영종도에 있는 것은 공항부대 시설이 되어 버렸고, 울릉도에 있던 한 곳은 울릉도 순환도로에 묻혔으며 천리포에 있는 개체들도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이 신기한 식물의 존재의 이유를 다 알아내기도 전에 사라질까 걱정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6/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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