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민주당, 정체성부터 찾아라

이번 지방자치 선거에서 민주당은 패배했다. 아니, 패배라기보다는 차라리 붕괴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광역단체장선거에서 한나라당 11석에 비해 4석만을 차지했고, 그 득표율에 있어서도 한나라당의 52.9%에 비해 29.2%만을 얻었을 뿐이다.

광역의원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전국적으로 47.6%에 431석을 차지한데 비해, 민주당은 30.4%의 득표율에 121석만을 얻었다.

정당 비례대표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52.2%를 얻었는데 비해 민주당은 29.1%를 얻는데 그쳤다. 더구나 호남 이외에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근거지인 서울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무려 10% 포인트 이상 뒤졌다.

민주당은 왜 이렇게 형편없이 패배했는가? 가장 간단한 대답으로 대통령 아들의 권력비리문제의 영향과 48.8%밖에 되지 않는 낮은 투표율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대통령 아들의 권력비리문제가 처리되고 투표율이 다시 높아진다면 민주당은 다시 재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내포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나는 민주당 패배의 원인을 그 동안 계속 증대되어 왔던 민주당의 정체성 약화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본다. 민주당 정체성에 대한 회의가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왔고, 그 회의의 확대가 지지 약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민주당의 정체성은 독재에 대한 저항, 즉 민주 야당이라는 데에서 출발했다. 그리하여 독재가 존재하는 한 민주당은 억압은 받을지언정 생존할 수 있었다.

독재에 저항하는 한, 언젠가는 이루어질 민주화가 시대적 과제인 한 민주당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민주당의 생존과 그 정체성이 유지되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1987년 대선에서 민주 야당이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두 정당으로 분열되고 뒤이어 그 중 한 정당은 보수 여당으로 흡수돼버렸을 때, 민주당의 정체성은 한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체성이 특정 지역과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존재의 정당성은 그런 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호남이라는 희생 받는 지역과 서민을 대변한다는 정체성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그 정체성은 점차 약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취했던 보수세력의 한 분파인 자민련과의 협조체제, 즉 DJP공조체제는 대선 승리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민주당의 전통적인 정체성을 희석시켰다. 더구나 집권 이후 김대중 정부와 정부 여당인 민주당의 역할과 위치는 그들 스스로를 준(準)기득권화시켰다.

이 같은 현실에서 민주당의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스스로 준기득권화된 그들이 과연 서민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이 호남을 대변하고 있기보다는 호남이 그들의 생존을 위한 인질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 발전과 정치개혁을 위해 새로운 지지층인 젊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 즉 어렵기는 하지만 꼭 했어야 할 그러한 노력은 과연 시도된 바 있는가? 오히려 민주당은 정권을 장악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 분파인 자민련과 연대하는 손쉬운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보이는 젊은 유권자 대부분은 축구장에 가 있다. 젊은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리라는 기대는 환상이다. 그들은 마지 못해 참여하기보다는 차라리 불참을 통해 그들의 의사를 표시하는 세대이다. 정치를 거부하고 있는 그들은 참여하는 만큼 그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 축구에 열광하고 있다.

민주당은 기로에 처해 있다. 젊은 층의 유권자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는 한 그들은 고사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그 정체성을 잃어 가는 그들은 점차 재기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데, 유독 그것을 모르고 있는 민주당은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입력시간 2002/06/2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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