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집] 붉은 응원물결, 이젠 서울…

거대한 파도되어 전국을 강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최대 화두는 붉은 악마 응원단이다.

D조 예선 경기가 열린 부산, 미국, 인천은 물론 16강전 대전과 8강전 광주까지 전국의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 군중이 한꺼번에 거대한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 “~찍고”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우연이지만 붉은 물결이 한국의 주요 도시들을 ‘지역차별’하지 않고 지나서 마침내 서울까지 도달했다.

지금 ‘대~한 민국’에는 흥분과 환호가 넘쳐 흐르고 있다. ‘붉은 악마’로 상징되는 폭풍은 문화와 시각을 새롭게 뒤바꾸며 질풍노도처럼 돌진하고 있다. 그러면 이 같은 응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새로운 변화와 가치 속에 응어리진 응원의 힘을 되새김 해보자.


레드 콤플렉스로부터의 해방

한반도의 분단으로 ‘빨강색’은 금기 색깔이었다. 붉은 색과 푸른 색은 전통적으로 음양을 상징한다. 태극기의 태극이 붉은 색과 푸른 색으로 구성된 것도 그 이유다. 좌우대립은 붉은 색을 금기의 색깔로 유폐시켰다.

홍군과 청군으로 나뉘던 초등학교 운동회 진영도 언제부턴가 백군과 청군으로 바뀌었다. 한국 전쟁을 겪은 기성 세대일수록 빨간색에 대한 거부감은 무척 커서 붉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빨갱이’이라는 말에는 이를 터부시하는 극단의 감정이 실려 있다.

정치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이른바 ‘색깔론’이었다. 비슷하다 싶으면 빨간 색이라고 몰아붙였고 분단 상황인지라 ‘빨갱이’와 ‘색깔론’을 이길 만한 정치인은 없었다. 붉은 악마는 색깔을 색깔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거기에 또다시 색깔을 씌워대는 풍조에 과감한 도전장을 냈다.

경기장 안팎을 가릴 것 없이 전국은 붉은색으로 통일됐다.


태극기에 대한 금기도 날려버렸다

건곤감리 홍백으로 장식된 태극기가 거리에 물결치고 있다. 태극기를 열정적으로 흔드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치마와 망토, 두건으로 두른 젊은이, 태극기로 미니스커트, 바지, 탱크탑을 만들어 입은 여성들도 많다.

바디 페인팅으로 얼굴과 가슴에 그려진 태극무늬와 차량에 붙여진 태극기 스티커, 응원용 대형 태극기까지 합치면 시청 앞 광장은 붉은 색 티셔츠와 태극무늬의 도가니나 다름이 없다. 1970,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이라면 태극기에 대한 이 같은 ‘불경(不敬)’은 국기 모독죄로 걸려 혼 줄이 날 행동이다.

붉은 악마 티셔츠에 태극기 치마와 두건을 두른 채 친구들과 함께 시청 앞에서 길거리 응원을 펴던 대학생 김선영(21)씨는 “6월 4일 한국과 폴란드 전 당시만 해도 태극기를 함부로 다루는 것 같아 태극기 패션이 부담스러웠다”며 “그러나 태극기를 몸에 밀착하고 응원을 하면서 태극기와 대한민국이 마치 내 몸처럼 더욱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월드컵 직전까지만 해도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며 한민족의 표상으로 가깝기 하기에는 너무 먼 근엄과 경건의 결정체였다. 이 바람에 태극기는 창고 속에 모셔져 국경일 이외에는 거의 햇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태극기가 신전에서 땅으로 내려와 국민과 일체가 됐고 아예 패션이 됐다. 덕분에 태극기 제작 업체들은 전대미문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주문량과 판매량이 갑자기 수백 배로 늘어나는 바람에 공장을 밤낮으로 가동해도 물량을 대기 힘들 정도다.

월드컵이 각성시킨 국민적인 ‘자신감’이 ‘태극패션의 도래’로 이어지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실 국기패션은 외국에선 생소한 현상이 아니다.

간호섭 동덕여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는 “성숙한 문화적 토양을 바탕으로 국기를 대중문화와 결합 발전시킨 사례는 많다”며 “태극기 패션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버릴지는 알 수 없지만 변형과 단순화 등의 그래픽 작업을 통해 태극기 문양을 더욱 멋스럽게 승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존의 가치도 거부했다

붉은 악마는 태동 때부터 논란을 일으켰다. ‘천사’도 있는데, 하필이면 ‘악마’냐는 것이다. 개신교계는 정색을 하고 명칭 변경을 촉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02 월드컵선교단 등은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응원단 이름을 ‘붉은 호랑이’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성경 속의 악마는 물리쳐야 할 저주의 대상이다. 악마는 사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신교계는 ‘화이트 엔젤스(하얀 천사들)’를 자체 구성해 운영에 나섰지만 반응은 썰렁하다. 붉은 악마는 이 같은 비판을 무시했다.

길거리 응원에서 악마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음습함과 잔인함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악마의 뿔로 머리를 장식한 모습이 자주 눈에 띄지만 오히려 애교가 넘친다. 붉은 악마는 경직된 용어에 탄력을 부여하며 희화화시켰다. 악마라는 말이 뭐가 잘못됐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당당한 악마라고 선언했다.


광장이 부활했다

전국적으로 500여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전국의 길거리에 나섰다. 마라도에서 휴전선까지, 미국과 일본 등 해외 교포들까지 흥분하고 있다. 전광판이 설치돼 있거나 TV가 놓여 있는 곳은 어디나 광장으로 돌변했다.

특히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서울시청 앞은 실로 오랜만에 사람의 물결로 가득 넘쳤다. 한갓 도로일 뿐이던 광화문 네거리 일대도 엄청난 인파가 운집하면서 공간의 성격이 전혀 달라졌다.

광장은 그 동안 관제 행사와 저항운동을 상징하는 엇갈린 장소였다. 1960~70년대에 반공궐기 대회 같은 관제 행사가 자주 열렸다면 80년대에는 군사독재 반대 등 민주화 집회가 줄을 이었다.

90년대에는 노동자들의 집회 장소였다. 월드컵을 계기로 광장은 국민적 열광이 분출되는 곳으로 변했다. 광장은 통쾌하고 신나는 통합의 축제 마당이 된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월드컵 대회 이후 이 같은 열기와 힘을 어떻게 승화하느냐는 것이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06/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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