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집] 압박왕에 세계가 질렸다

강철 체력·스피드로 그라운드 휘젓는 조직 축구
유럽 킬러로 축구사 새로 써

‘아시아의 종이 호랑이’에서 일약 ‘유럽 강호 킬러’로.

세계 축구계가 한국 대표팀의 급성장에 경이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 D조 예선에서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꺾고 조 1위에 오를 때만해도 ‘이변’으로 치부했던 세계 축구계가 유럽 강팀들을 상대로 한 한국팀의 연이은 선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유럽의 기술축구 압도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한국식 조직 축구’로 유럽의 ‘기술 축구’를 압도, 세계 축구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간 힘을 앞세운 유럽 축구와 화려한 개인기의 남미 축구로 양분되던 세계 축구계에 스피드와 조직력을 극대화한 ‘한국식 축구’를 창출해 낸 것이다.

탁월한 스타는 없지만 선수 전원이 강철 같은 체력과 스피드를 앞세워 포지션에 관계없이 90분을 쉴 새 없이 뛰며 상대를 압박하는 조직 축구다.

한국의 이 같은 활약은 세계 축구의 변방으로 남아있던 아시아 축구의 부상을 의미한다. 아시아는 그 동안 상대적으로 작은 선수 신체조건, 빅 리그의 부재, 열악한 운동 여건, 스타 플레이어의 부재 등으로 아프리카에도 뒤지는 축구 후진 대륙으로 간주됐다.

이로 인해 월드컵대회 대륙별 시드 배정에서 아시아는 항상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아왔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선전에 공동 개최국인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성원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제 아시아는 한국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고, 세계 언론은 경이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영국의 BBC 방송은 ‘한국의 꿈은 계속된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도저히 믿기 어려운 한국의 월드컵 모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며 월드컵 사상 최대 이변을 몰고 온 한국팀의 행진에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 했다.

로이터 통신도 한국이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오른 것에 대해 ‘72년 월드컵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이었다. 수백만 한국인의 열광적인 응원도 가장 놀라운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타전했다.


외신들 “믿기지 않는 거인 킬러 행진”

독일의 dpa통신은 ‘한국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인 킬러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온라인도 ‘한국이 우승 후보인 이탈리아를 꺾은 데 이어 우승 다크호스로 등장한 스페인을 물리치는 대회 최대 파란을 연출했다’고 관전평을 냈다.

프랑스 스포츠전문지인 레퀴프도 ‘아무도 그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몇주일 전만 해도 한국이 4강에 진출할 것이라고 말하면 비웃음을 샀지만 감동의 드라마는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을 치르면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특히 상대적 약세를 보이던 유럽 팀들에 갖고 있던 징크스를 완전히 털어 버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은 1952년 첫 출전한 스위스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헝가리와 터키에 0-9, 0-7의 치욕적인 완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 팀들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강인한 체력과 개인기, 기술력까지 겸비한 유럽 축구는 한국에게는 넘기 어려운 거대한 산이었다. 국제 대회 때면 유럽 팀 보다는 남미 팀과 만나기를 바랬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 열정ㆍ감독 용병술ㆍ선수투지의 조화

이제 한국은 유럽 징크스는 사라졌다. 오히려 유럽 팀에 더욱 강한 자신감을 보일 정도로 성장했다. 한국 대표팀은 히딩크호 출범 초반 프랑스와 체코에 잇달아 0-5으로 완패, 이번 월드컵에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과 선수들의 투지가 조화를 이루며 이후 평가전에서 핀란드 2-0, 터키 0-0 무승부, 스코틀랜드 4-1, 프랑스 2-3, 잉글랜드 1-1 등 유럽과의 경기에서 호성적을 기록하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런 자신감은 본선에서 빛을 발해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2-0으로 누른 데 이어 세계 5위인 포르투갈을 1-0, 더 나아가 유럽 축구 리그의 양대 산맥인 이탈리아(2-1)와 스페인(PK 5-3승)을 연파하는 기염을 토하며 유럽 킬러로 떠올랐다.

물론 이번 한국 대표팀의 성과는 홈 구장이라는 이점과 선수들의 불굴의 투지, 히딩크라는 명장의 조련, 그리고 전국민의 열화 같은 응원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겐 더 높이 오를 목표가 생긴 것이다.

송영웅 기자

입력시간 2002/06/29 17:58


송영웅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