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DJ는 더이상 눈물을 흘려선 안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 영어(囹圄)의 몸이 된 두 아들 때문이 아니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의 승리 때문이었다. 6월 22일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은 한마디로 전 국민의 피를 말리는 경기였다.

연장전에서도 비겨 결국 5명씩 승부차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승리가 확정되자 많은 국민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김 대통령도 아마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달랐다. 기쁨보다는 오히려 회한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레임덕’이라는 말을 듣는 김 대통령은 임기 중 많은 업적을 이룩했다. 1997년 외환위기에 빠진 한국을 수렁에서 건져냈으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김 대통령도 예상을 못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한국 축구 대표팀은 눈부신 성적을 올렸고 전국민이 12번째 선수인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 민국’을 연호했다. 단군 이래 이 같은 국민적 성원과 단합된 힘이 한꺼번에 분출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김 대통령도 이 역사적 드라마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몸이 불편한 김 대통령은 노구를 이끌고 경기장을 찾아 국민의 힘을 가슴으로 느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의 앉아 있던 자리는 어쩐지 어색하기만 했다. 환하게 웃을 수 없는 대통령. 당연히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국민의 선두에 서서 이 축제를 이끌어야 했지만 김 대통령은 뒷전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김 대통령은 6월 21일 아들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사과했다. 김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지난 몇 달 동안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왔으며 국민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준 것을 부끄럽고 죄송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자식들의 문제는 법에 맡기고 국정에 전념해 모든 소임을 완수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의 대 국민 사과 성명에는 잘못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남은 임기를 제대로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의 사과를 바라 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오히려 그 것 밖에 안 되느냐는 시니컬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검제를 밀어붙일 태세이고 민주당 일부에서는 아태재단의 사회환원을 주장하는 등 아직도 김 대통령의 아들 문제와 측근 인사들의 부정부패 등이 계속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김 대통령이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 찍힌 아태재단을 즉각 해체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면 아태재단을 해체해도 국민 감정이 누그러질 것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김 대통령의 임기 중 가장 큰 실책은 인사를 잘못했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 출신 인사들과 자신의 가신들을 중요 자리에 배치, 이들이 국정을 농단 하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이들은 ‘이 때 아니면 언제’라는 식으로 ‘끼리끼리’밀고 당겨주며 이권과 자리를 챙겼고 구린 냄새를 풍겼다. 또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아 버렸으며 아들들을 이용하는 등 호가호위 했다.

김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단호하게 결심해야 한다. 자신과 아들들에 관련된 의혹들을 청산해야 한다. 모든 사정 기관을 동원해 부정부패에 연루된 인사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임기 말이지만 잘못된 인사도 바로 잡아야 한다. 아들들까지 처벌하는 마당에 꺼릴 것이 없다. 대한민국은 월드컵의 승전으로 국운 상승의 계기를 맞았다.

‘깨끗한 대~한민국’을 후임자에게 넘겨줘야 한다. 김 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일 것이다. 차라리 거스 히딩크 감독을 찾아가 자문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장훈 부장

입력시간 2002/06/2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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