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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균의 개그 펀치] 아쉬운 요코하마

독일과의 경기가 끝나는 순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미 경기시작 전부터 이기든지 지든지 무조건 빨리 끝나서 우리 선수들이 제발 좀 발 뻗고 푹 쉬었으면 하는 게 나의 소망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1승만, 16강에만 들어주었으면 하는 게 전국민의 소망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소박한 꿈이 말을 몰면 종도 부리고 싶다는 욕심으로 부풀어지고 그런 욕심을 우리 선수들이 '알았어, OK, 내가 해줄게' 하듯이 차례차례 8강, 4강으로 채워주는 것을 다 받았다. 그뿐이랴. 우리는 선수들에게 요코하마로 가자고 부추기며 상암 경기장까지 나오게 했다.

누가 그러더라. 우리 선수들이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꼭 정자의 활발한 움직임을 연상하게 된다고.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꼼지락거리며 난자를 향해 돌진하는 정자들 중, 오직 선택된 한 마리, 혹은 2~4 마리가 난자와 수정된다. 달려들어 슛을 하고 골이 들어가면 비로소 이기고 수정되는 것이다. 생명(=골인)을 잉태시키기 위한 선수들의 처절한 사투를 보는 것 같았다.

하루를 놀이동산에서 놀다가 와도 그 다음날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피곤해서 뻗어버리는 우리는 정작 선수들이 한달 내내 사투를 벌이듯 그 넓은 운동장을 누비고 다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TV로 경기를 지켜보다가 문득 이 많은 응원단들이 패한 경기에 실망해서 난동을 부린다거나(우리 국민은 스스로 냄비 체질임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니까) 거리의 독일 선수들이 탄 버스를 뒤집어 엎어버리거나, 혹을 길거리에서 폭력적인 울분의 감정을 토해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만의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여태까지 죽자하고 뛰어준 우리 선수들이 너무 안스럽고 불쌍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 우리 붉은 악마들은 잠시 실망을 했다가 이윽고 서로서로 격려를 하며 ‘대~한민국’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얄미운 독일 선수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쳐주는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패배보다는 우리가 이룩해낸 4강 신화를, 그 짜릿한 업적을 기억해내며 행복해 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비결, 우리 모두가 꽤 괜찮은 민족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당당했던 아름다운 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연예인 A양이 생각났다. 평소에 화끈하고 성격이 좋기로 소문난 A양은 우리나라가 16강을 통과하자 선언을 했다.

"야, 기분이다. 우리가 8강에 들면 한번씩 포옹해 준다. 4강에 들면 찐하게 뽀뽀해주마."

설마 했는데 몇몇은 진짜로 뽀뽀를 했다는 후문이고 더 화끈한 약속까지 내걸었단다.

"요코하마로 가게 되면 까짓 것, 내가 한번 줄게. 딱 한명만 뽑아서 준다."

A양의 성격을 잘 아는 동료들은 그래서 독일과 경기가 있던 날, 필요이상으로 흥분하며 응원을 해댔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기막히고 화끈한 약속은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이제는 성지가 되어버린 시청 앞 광장. 너무 경건해서 평소에는 손도 못 대고 우러러보기만 했던 태극기를 온몸에 그리고 휘감고, 그것도 부족해서 젊은 아가씨들의 새로운 노출의상으로 변신시켜버린 붉은 악마들의 열정. 이제는 정부에서 기준을 제시를 해주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월드컵 때문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응원단들이 그 흥겨움을 잊지 못해 아시안게임이나 그와 동등한 국제수준의 경기, 혹은 기능올림픽 용접부문에서 우승했을 때도 거리로 뛰어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정부여, 우리는 또 언제 뛰어나올 수 있나요? 마음껏, 안전하고 흥겹게 뛰어 놀 수 있도록 법적 조항을 신설해주세요.

월드컵이 끝나고 흥겨운 뒤풀이가 마무리되면 오랫동안 앓고 난 사람처럼 핼쑥한 얼굴로 후유증에 시달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쓸모없는 기우일 것이다.

피곤에 지친 장한 선수들은 이불을 어깨까지 여며주며 자장자장 푹 쉬게 해주고, 우리는 온몸에 휘감았던 태극기를 가슴 속에 차곡차곡 접었다가 또다시 다가올 그 순간에 거침없이 꺼내 들고 시청 앞 광장에서 뜨겁게 만나자고 굳게 약속을 해본다.

입력시간 2002/07/0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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