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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마법의 티셔츠가 날려버린 레드 콤플렉스

[김동식의 문화읽기] 마법의 티셔츠가 날려버린 레드 콤플렉스

한국사회가 그 동안 붉은 색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해 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붉은 색은 불온한 급진사상의 상징이거나, 위험과 주의를 표시하는 기호이거나, 홍등가를 떠올리게 하는 뒤틀린 육욕(肉慾)의 상징이었다. 물론 붉은 색이 가진 시각적인 효과를 기능적인 목적에 따라 활용한 경우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붉은 색의 지배적인 상징이 위험하며 선정적이라는 인상에 의해서 규정되어 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붉은 색이 위험한 색으로 규정된 이유는 정치적 혁명의 급진적인 열정과 처절한 희생을 대변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때 시민군은 붉은 깃발을 흔들었고, 러시아혁명 당시 볼셰비키들은 붉은 완장을 둘렀다.

우리의 경우 붉은 색이 전통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의 극심한 이념대립에 이어 한국전쟁을 경험하게 되면서, 한국사회에서 빨갛다라는 이미지는 공산주의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붉은 색의 상징성은 정치적으로는 색깔론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는 연좌제를 통해서 사회적인 낙인(烙印)효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붉은 낙인을 중심으로 레드 콤플렉스라는 집단적인 무의식이 형성되었다.

레드 콤플렉스는 극단적인 감정들이 뒤엉켜 있는 복합적인 심리상태이다. 한편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가족과 재산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한 사람들의 원한과 두려움이 있다.

레드 콤플렉스는 그 자체로는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Be the Reds!'라는 문구가 찍힌 붉은 티셔츠를 전국민이 입고 열광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엄청난 놀라움일 수밖에 없었다.

전국을 붉게 물들였던 마법의 티셔츠에 내재된 문화적 기원은 무엇일까. 'Be the Reds!'라는 문구가 찍힌 붉은 티셔츠는 붉은악마 세대(R세대)의 문화적 체험과 전략의 산물이다.

R세대란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박종환 사단이 4강에 진출하던 장면을 컬러 텔레비전으로 지켜보았던 문화적 체험의 소유자들이다. 붉은 색이란 그들의 문화적 체험에 근거한 가장 솔직한 선택인 셈이다.

반면에 Reds라는 말은 문화적 전략에 따른 선택이다. Reds는 정치적으로는 빨갱이를 의미하지만, 스포츠의 영역에서는 붉은 경기복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중성적인 의미를 가질 따름이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다의성을 가치중립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문화적 전략이 붉은 티셔츠에 표현되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붉은악마의 활동은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날개짓은 거리 응원이라는 문화적 허리케인을 불러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Be the Reds!'라는 문구가 찍힌 티셔츠를 입게 되었다고 해서 레드 콤플렉스를 불식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 거리 응원을 통해서 붉은 색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나 억압적인 무의식이 상당 부분 완화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붉은 색의 관습적인 의미를 흔들어 놓을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각별하다.

이제 붉은 색은 개인의 자유와 열정을 의미한다. 또한 문화적 공통체험을 만들어낸 문화적 혁명을 기념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붉은 색의 새로운 이미지는 레드 콤플렉스라는 역사적인 상처를 문화적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

눈앞의 가시적인 변화에 급급해 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인 변화 쪽에는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 듯하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tymtan@empal.com

입력시간 2002/07/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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