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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수놓은 그라운드의 불꽃들

땀과 눈물로 고통의 순간을 넘어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

태극 전사들은 이제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4강 신화의 주역이 되기까지 이들은 그라운드에 땀과 눈물을 쏟아 부으며 오랜 인고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보다 더 힘든 축구가 싫어 가출을 하고, 웨이터까지 했던 선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해 온 사람들 특유의 질박함과 도전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교훈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원조 멀티플레이어 유상철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의 유상철(31ㆍ가시와 레이솔)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완벽하게 커버해 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성격과 달리 그는 그라운드에 들어서기만 하면 거친 플레이와 지칠 줄 모르는 투지를 보인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홈런왕이다. 크고 작은 경기에서 홈런과 같이 시원한 공을 날린다고 해서 네티즌이 붙여 준 별명이다. 그의 팬 페이지에 재미 있는 사연이 눈에 띄는 것은 별명 덕택이 크다.

예를 들어 ‘달나라까지 차는 그날까지‘, ‘수직 상승 로켓포’, ‘한국 야구의 자존심’ 등이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불명예스러울 지도 모를 이 별명들은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통렬한 대포알 슛으로 모두 날아가 버렸다.

어린 시절 그는 축구를 포기할 뻔 했다. 학창 시절의 그는 키도 작고 비쩍 마른 약골이었다.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축구부에 들었지만 가족의 염원과는 달리 나아지는 기미가 안 보였다.

당시 경신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은 부모에게 축구를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 해 겨울은 부모의 배려로 모처럼의 휴식을 가졌다.

유달리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이영표(25ㆍ안양 LG)는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준족이다. 어머니 박정순씨는 “영표는 어려서부터 누구에게도 달리기를 져 본 적 없다”고 했다.

안양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는 경기도 초등학교 단축 마라톤 대회에 출전, 8위를 차지했다. 4학년 축구부에 들어 간 그는 스트라이커로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그는 히딩크 사단의 등 번호 10번이다. 히딩크에게 10번이란 그 선수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국내 정상급의 드리블 실력을 히딩크에게 공인받은 것이다. 특히 헛다리 짚기 묘기는 팀에 생기를 불어 넣고 관중의 탄성을 자아내는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다.


황선홍ㆍ홍명보 부상 시련딛고 우뚝

한국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 황선홍(34ㆍ가시와 레이솔)은 사실 중고 시절만 해도 평범한 선수였다. 그러나 건국대 2학년인 1988년 태극 유니폼을 입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급부상했다.

졸업후 독일에 진출했지만 부상과 수술등으로 좌절도 경험했다. 국내프로에 입문했을 때도 부상의 악령은 그를 괴롭혔지만 그때마다 재기한 그였다.

1992년 그는 독일 2부 리그 부퍼탈 소속으로 최상의 플레이를 펼칠 무렵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 사건은 공교롭게도 포항 구단의 복귀 명령과 맞물려 귀국행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아직도 그에게 한으로 남아 있다. “결혼했거나 함께 할 국내 동료라도 있었으면 분데스리가에 정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그의 말이 당시 정황을 잘 말해 준다.

대표팀의 영원한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인 홍명보(33ㆍ포항 스틸러스)는 지난해 6월 입은 왼쪽 정강이 부상을 딛고 선 오뚝이다. 올 2월 그라운드를 다시 밟은 그는 수비수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웠다는 과외의 공을 세웠다.

이천수(21ㆍ울산 현대)는 172㎝, 62㎏이라는 자그마한 체구에도 불구, 적진을 순간적으로 돌파해 들어가는 스피드와 빠르고 낮은 센터링으로 팬들에게 깊이 각인된 선수다. 부평고 3학년때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 다리 부상으로 묶어 둔 깁스를 풀고 뛰어나가 결승골을 터뜨렸던 일은 유명하다.

한국 대표팀이 너무 얌전하다고 지적해 온 히딩크 감독의 예봉을 피한 선수가 김태영(32ㆍ전남 드래곤즈)이다. 유니폼을 잡고 늘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뚫리면 파울로 공격을 끊는다.

공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달려드는 저돌형 수비다. 현재 홍명보-최진철-김태영이 구축하고 있는 강력한 일자 쓰리 백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운재, 김병지 그늘 벗고 괄목상대

이번 월드컵을 통해 가장 빛났던 선수는 골키퍼 이운재(29ㆍ상무)다. 모든 경기에 출전,그라운드를 꿰뚫는 폭넓은 시야와 페널티 킥에서도 흔들림 없는 배짱 등은 그간 그늘에 가리어졌던 ‘거미손’ 이운재를 새삼 인식시켰다.

김병지에 밀려 만년 2인자에 만족해야 했던 과거를 뒤집는 것이기에 그의 불끈 쳐든 오른손은 팬들의 뇌리에 깊은 영상으로 남아 있다.

국가 대표 발탁과 월드컵 출전으로 따지자면 이운재는 김병지보다 선배격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축구의 주전 골키퍼는 2001년까지 A매치에 54차례 출전했던 김병지였다.

그의 입지점이 뒤바뀐 것은 히딩크호에 승선하면서부터다. 김병지가 빠진 틈을 타 수문장으로 자리 잡은 이운재는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숨겨져 있던 역량을 모두 발휘했다.

아버지 차범근의 신체적 조건을 그대로 이어 받은 차두리(22ㆍ고려대)는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폭발적 스피드로 일명 ‘공보다 빠른 사나이’다.

네살 때 독일 레버쿠젠의 유소년팀에서 자책골을 넣은 뒤 그 실수를 계기로 축구에 빠져 들었다. 본격 선수의 길로 들어 서게 된 것은 중3때 서울 배제중으로 진학하면서부터 였다.

대표팀에 들어 오면서 그는 또 다른 별명 하나를 더 갖게 됐다. ‘움직이는 무기’라는 별명이다. 이 때문에 체력 훈련 도중 정해성 코치와 부딪쳐 정 코치의 갈비뼈에 금이 가는 등 사고가 당하기도 했다.

또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는 훈련중 이영표 선수와 충돌해 허벅지 부상을 입은 이 선수가 본선에 나오지 못 하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차두리ㆍ이천수ㆍ최태욱, 히딩크호 총알

차두리, 이천수와 더불어 히딩크호의 ‘총알 탄 사나이’ 최태욱(21ㆍ안양 LG)은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힘과 패기에서는 유럽 선수들과 맞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1994년 만수복초등학교 때 제 6회 차범근 축구 대상을 수상한 이후 18세 청소년 대표를 출발로 시드니 올림픽 대표, 국가 대표 등 탄탄대로를 걸어 왔다.

1999년에는 이천수와 함께 부평고에서 백운기를 제패하는 등 3연승의 주역으로 떠오른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팀에 입단했다.

성실한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쉴새 없이 누비는 오른쪽 윙백 최성용(27ㆍ수원 삼성)은 100m를 12초대에 주파하는 공수형 플레이어다.

수비와 공격이 반복되는 현대적 축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산공고 시절이던 1990년 16세 이하 청소년 대표를 시작으로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쳐 차범근 사단에서 좌우 윙백으로 활약했다.

대표팀에서 주전 경쟁이 가장 치열한 포지션인 미드필더진에 속했다는 것이 그의 죄라면 죄다. 올 5월 26일 프랑스전 등 몇 차례 경기에서 후반 중반에 교체 투입되는 기회를 얻었지만 시간이 짧았다.

그라운드에서의 저돌적 플레이로 ‘작은 탱크’로 불리는 그는 알고 보면 대단히 상냥한 성격이다. 예쁜 짓을 많이 한다고 선배들은 ‘예쁜이’로 부른다.

이을용(27ㆍ부천 SK)은 미국과의 2차전 전반전에서 황선홍이 얻어 낸 천금 같은 패널티킥을 실축해 역적이 될뻔했다. 그러나 후반전에서 주눅 들지 않는 플레이로 안정환에게 어시스트해 극적인 동점골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그는 강원도 산골 황지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해 축구 명문대 진학을 꿈꾸다 실력 외적 요인으로 대학 진학과 청소년대표팀의 꿈이 좌절되자 한때 축구를 포기한 적도 있다.


깜짝스타 최진철ㆍ이을용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나이트 클럽 웨이터로도 지냈던 그는 1995년 한국철도 아현창 감독의 간곡하고 끈질긴 설득에 축구로 돌아 온다. 한국 철도 소속 선수로 그라운드에 복귀한 그는 상무를 거쳐 1997년말 프로축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부천의 지명을 받는다. 그리고 1993년 생애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다.

최진철(31ㆍ전북 현대)은 히딩크가 찾아 낸 깜짝 스타다. 2001년 9월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대표팀 명단에 들지 못 했던 최진철은 훈련중 유희준과 박지성이 다치는 바람에 코치들의 추천에 따라 엉겁결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히딩크 체제 아래서 최는 수비수이지만 초중고교 시절에는 뛰어난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원래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단거리 육상 선수였던 그는 축구를 하던 큰형이 부상으로 꿈을 접게 되자 그 꿈을 이은 셈이다. 형이 입었던 축구 유니폼이 너무 멋있게 보여 내린 결정이었다는 후문이다.

이민성(29ㆍ부산 아이콘스)은 공중전에서 몸싸움을 마다 않고 부상 속에서도 전의를 불태우는 투지의 전사다. 수비수로 적당한 182㎝, 73㎏의 체격에 100m를 12초에 주파하는 그는 홍명보ㆍ김태영과 한국 수비라인의 뼈대를 이뤄왔다.

최근의 압권은 일명 ‘도쿄 대첩’으로 불리는 9월 도쿄 국립 경기장에서의 열렸던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전이다. 1대 1 동점이던 후반 41분 그림 같은 왼발 중거리슛으로 역전 결승골을 터뜨렸다.


비운의 천재서 거듭 난 윤정환

자로 잰 듯한 송곳 패스의 윤정환(29ㆍ오사카 페레소)은 파워와 수비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표팀에 중용되지 못 했던 비운의 천재다. ‘국내용’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던 그는 뼈를 깎는 체력 훈련을 넘겨 히딩크의 최종 엔트리에 들게 된다.

최고의 순발력을 갖춘 꽁지머리 철벽 수문장 김병지(33ㆍ포항 스틸러스)는 1997년부터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인기 선수다.

2001년 1월 칼스버그컵 때 파라과이전에서 단독 드리블하는 위험한 플레이를 하다 히딩크 감독의 미움을 샀다. 그러나 히딩크는 2002년 1월 미국 전지 훈련에서 “팀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고 그를 추켜 세웠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7/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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