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밴 헌신이 태극전사를 빛냈다

막강 코치군단, 대표팀 담금질한 '서프라이즈 코리아'의 빛나는 조연

‘4강 신화’의 연출자는 히딩크 감독이었고, 주연은 23명의 태극전사들이었다. 하지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블록버스터가 탄생하기까지는 무대 뒤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낸 조역들의 피땀이 있었다. 숨은 일꾼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히딩크 사단은 경기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다.


운동장선 ‘저승사자’ 사석에선 ‘큰 형님’

펨 베어벡(46) 수석코치는 작은 히딩크였다. 히딩크는 전술과 훈련, 작전 등 중요사안을 결정할 때 반드시 그의 조언을 구했다.

한때 네덜란드 1부 리그 소속 감독으로 히딩크의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했던 베어백은 대표팀의 훈련프로그램 작성, 경기 출장ㆍ교체 선수 결정, 감독이 직접 가지 못하는 해외 선수들의 경기 관전 등 사실상 감독이나 다름없는 임무를 수행했다.

히딩크 사단의 조감독인 박항서(43) 공격 담당 코치는 선수들의 큰 형님이었다. 서글서글한 외모로 훈련지도 뿐 아니라 인생상담까지 했다. 이천수 차두리 등 새내기들이 거리낌 없이 장난을 걸 정도로 성격이 좋다.

90년대 초 비쇼베츠 감독 밑에서 트레이너를 맡은 적이 있어 유럽 지도자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다. 히딩크가 경기에서 이긴 후 가장 먼저 박 코치의 성근 머리에 키스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박 코치가 카운슬러였다면, 정해성(44) 코치는 군기반장이었다. 후배들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때면 엄하게 꾸짖는 악역을 맡았다.

그러나 훈련 때는 스파링 파트너 역할도 마다 않는 열성으로 선수들의 신망을 얻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차두리와 부딪쳐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주로 수비를 담당했다.

골키퍼 전담인 김현태(41) 코치는 이운재 김병지 최은성에겐 ‘저승사자’로 통했다. 필드훈련 때 하루에 슈팅 500개를 날리는 강훈을 이어갔다. 특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한 근육강화운동을 강조, 골키퍼들이 곤욕을 치렀다.

코칭 스태프 명단에는 없지만 최진한(41) 트레이너는 훈련장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었다. 현직은 올림픽 상비군 코치다. 히딩크에게 지도자연수를 받았다. 선수들 위로하랴, 미니게임에서 함께 뛰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그는 후배들의 ‘볼 보이’ 역할도 자청했다.


강철 체력 만든 파워프로그램

세계를 놀라게 한 태극전사들의 체력은 레이몬드 베르하이옌(29) 트레이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히딩크 사단의 트레이드 마크인 파워 프로그램의 입안자였다. 네덜란드 왕립축구 아카데미에서 운동생리학을 전공한 박사다.

2000년 유럽선수권 때 히딩크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앳된 외모와는 달리 ‘유격대장’으로 불릴 만큼 스파르타식 훈련을 선호해 선수들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가혹한 훈련으로 선수들의 심장은 강철처럼 강해졌다.

암스테르담의 프레이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TV 해설자 출신의 기술분석관 얀 룰프스(40)씨는 체력과 기술 축구의 종합 설계사였다.

196㎝의 큰 키에 항상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그가 내놓은 보고서들은 그대로 실전에 투영됐다. 지난해 히딩크 사단에 합류한 이란계 미국인 압신 고트비(37) 비디오 분석관은 선수들의 장ㆍ단점과 해결책을 정확히 짚었다.

신승순(30) 비디오 촬영담당은 지난해 축구협회에 들어와 대표팀 훈련과 경기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왔다. 그는 “내가 찍은 필름이 4강 진출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주치의ㆍ물리치료사는 ‘엄마’같은 존재

주치의 김현철(41) 박사는 국내 몇 안 되는 족부 정형외과 전문의다. 광주 조선대에서 조교수로 근무했던 그는 지난해 말 다니던 직장까지 포기하고 히딩크 사단에 합류했다.

부상 선수에게도 강도 높은 훈련을 고집하는 히딩크와 종종 마찰을 빚었으나 선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치료해 부상을 최소화했다.

그는 마라톤 선수들의 식사법을 도입, 훈련 때 고단백 식사로 기초 영양을 키우고 경기 며칠 앞두고는 탄수화물 위주로 바꾸었다.

최주영(49) 물리치료사는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이 가장 먼저 찾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의료진의 터줏대감으로 94년 대표팀에 들어와 비쇼베츠ㆍ박종환ㆍ차범근ㆍ허정무 감독과 생활했다.

온몸을 주무르며 특유의 사근사근한 말투로 인생 경험도 곁들이면 파 김치가 된 선수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강훈(32)ㆍ차장일(27) 마사지사는 선수들의 근육 피로를 마사지와 얼음찜질로 풀어주느라 자정을 넘기기가 허다했다.

네덜란드 물리치료사인 아노 필립(27)은 마사지사들과 함께 부상으로 지친 선수들의 몸을 회복시키는 일을 해냈다.


히딩크의 입, 언론담당 창구

허진(40) 언론담당관과 전한진(32) 축구협회 통역담당 과장은 히딩크의 ‘입 역할’을 맡았다. 허진 담당관은 외교통상부 구주국 서구과 소속 서기관으로 축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지난해 4월 대표팀 합류를 자청했다.

네덜란드서도 근무했던 그는 98년 예멘 근무시절 부인ㆍ딸과 함께 현지 반정부 조직에 의해 사흘간 납치된 적도 있다. 전한진 과장은 히딩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선수들에게 내리는 지시를 전달했다.

히딩크의 절대적 신뢰를 받아 감독ㆍ선수단 미팅, 코칭스태프 회의에 참석했고, 훈련장에서 공 줍기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표팀 멤버는 아니지만 이용수(43)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히딩크의 방패막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히딩크를 영입했으나 단번에 성적을 내놓지 못하자 그 책임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그는 그러나 외국선수 귀화 추진 등 사안에 따라 자기 목소리를 냈다.

안정환 등 히딩크의 절대적 신임을 받지 못했던 선수들을 적극 추천해 맹활약을 이끌어냈다. 프로선수 경험(럭키금성ㆍ할렐루야)과 이론(미 오리건주립대 운동생리학 박사)을 겸비, 한국 축구의 보배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자처럼 움직인 살림꾼들

김대업(29) 대표팀 주무는 히딩크 사단의 살림꾼이다. 히딩크의 지시사항 전달, 선수의 잡무 대행, 훈련 준비 등으로 1분도 쉴 틈이 없었다. 해외 전지훈련 때는 대표팀의 상황을 축구협회에 수시로 보고하고, 뒤늦게 합류하는 선수들의 비자 발급 등을 전담해 ‘대표팀의 손발’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한양대에서 체육학을 전공하다 축구가 좋아 98년 5월 무작정 축구협회의 문을 두드렸다. 훈련장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대표팀의 장비 담당 윤성원(28) 축구협회 경기국 대리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다.

공 조끼 등 각종 훈련 장비를 어깨에 메고 양손에 물통을 들었다. ‘몸으로 때우는 일’이 하루 일과였던 그는 “경기 전날엔 혹시 빠뜨린 물건이 없나 걱정이 돼 잠이 안 왔다”고 말했다.

대표팀 식구 중 최연장자로, 안전운전을 책임진 전용 버스기사 이윤우(57)씨는 10여년 전 뒷좌석에 군기가 바짝 들어 앉아 있던 홍명보 황선홍을 생각하면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한다”면서 “선수들 따라다니고 응원하다 보면 아플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이동준 기자

입력시간 2002/07/05 17:15


이동준 dj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