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대~한 민국, 꿈★은 계속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어느날 갑자기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붉은 열정의 나라도 바뀌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은 ‘붉은 광장’으로 변했으며 전국 곳곳에서 태극기와 붉은 옷들이 물결을 이뤘다. 이 거대한 용솟음은 예고된 것이었을까.

이 힘을 선도한 붉은 악마도, 함께 참여한 국민도,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을 명실공히 세계 강호의 대열에 올려 놓은 거스 히딩크 감독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때문에 우리 스스로 놀라고, 놀란 우리를 바라보며 다시 놀랐다.

뉴욕 타임스는 6월 30일자에서 2002 한일 월드컵 대회는 한국인에게 ‘환희와 절도 있는’축제로 일종의 ‘축구판 벨벳(무혈)혁명’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어떻게 축구가 한국을 활기차게 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인들 중 어떤 사람도 단결과 국가적 자존심을 표출하자고 결의하지 않았다며 자발적으로 응원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힘이 언젠가 분출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붉은 물결을 주도하는 15~25세의 이른바 ‘R세대’를 보면서 기성 세대들도 너도 나도 이 대열에 참여했다. 우리 국민은 박정희 유신 독재 때 변변한 모임조차 가질 수 없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도 없었는데 무슨 자발적인 응원 모임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자유를 만끽해 볼 기회조차 박탈됐으며 이후 전두환과 노태우의 군사 독재 시절을 거쳐 어느덧 인내와 순종의 미덕(?)을 배우게 됐다.

최근에는 IMF 외환위기로 몸을 더욱 움츠릴 수 밖에 없었다. 기성 세대들은 광장은 관제 시위를 하는 장소나 노사 분규로 노동자와 공권력이 충돌하는 부정적 이미지 밖에 가질 수 없었다. 또 붉은 색은 ‘때려잡자 공산당’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축구 하나가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모두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의 열정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도 없다. 이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그대로 우리의 뇌리에 깊숙이 박힐 것이다. 월드컵에서 분출된 새로운 모습은 우리사회를 서서히 그러나 뿌리째 변화시킬 것이다.

그 변화가 도도한 강물이 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결집시키고 융화 시키는 촉매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촉매제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연과 학연 배제, 실력위주 선발, 기본을 강조하고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훈련이라는 리더십이 하나의 교훈으로 남는다.

우리 국민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이 자부심 속에는 간과한 점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의 성적은 ‘기적’이었다. 이 기적을 이변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정 당당하게 싸워 이긴 성적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대표팀 23명의 태극 전사들은 투혼을 발휘해 신들린 듯 경기를 했다. 이 같은 사실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치도 경제도 월드컵 성적을 따라 가려면 한참 가시밭 길이다.

축구 자체도 월드컵 4위에 걸 맞는 인프라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축구 프로 대회인 K리그를 응원하는 관중이 길거리 응원단의 10%만 돼도 프로 축구는 활성화될 것이다. 또 유소년이나 중ㆍ고교, 대학 팀은 물론 프로팀들도 너무 적다. 이런 토양에서 월드컵 4위는 정말 기적이다.

잔치는 끝났다. 흥분을 가라 앉히고 내실을 다질 때다. 우선 히딩크 감독을 붙잡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국내 축구부터 도약 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적 자금 중 1%만이라도 축구를 위해 사용한다면 앞으로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둥그런 축구공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동심원이다. 이 감동과 열기는 대한민국을 변화시켰다. 또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전 국민이 지독한 ‘붉은 악마’가 돼야 한다. 그래야 꿈★ 은 계속될 수 있다.

이장훈 부장

입력시간 2002/07/0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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