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상을 연 태극의 축제

특별기고 '3박 플러스2박'의 문화적 승리 - 붉은 악마

고생 많았다. 그리고 참 잘했다.

우리 민족은 물론 전세계 인류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것을 민족 역사의 한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스포츠 보다 우선 그 모든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 낼 모태로서 하나의 새로운 문화 틀을 지어 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족과 인류에 대한 역사적 사명이다.

붉은 악마들은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한 일을 스스로가 똑똑히 설명함으로써 신세대만의 독특한 문화이며, 민족 전체의 자기 문화요, 전 세계 인류의 새로운 문화인 새 틀, 새 알맹이를 창조해야 한다.

우리가 20대였을 때 우리가 저지른 4월 혁명을 우리 스스로 설명하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늘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제 붉은 악마들이 조국에 대해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한다. 그 일에서 나는 다만 한 사람의 선배로서 참으로 약간의 도움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붉은 악마들이 보여준 문화의 핵심은 ‘3박 플러스 2박’이다. 3박 플러스 2박은 한마디로 ‘엇박’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름 아닌 태극기의 기본 원리요, 한국 음악의 기본 박자다.

그 문화는 동양, 특히 한국의 독특한 전통 문화의 핵심인데 붉은 악마들은 지키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현대와 젊은이와 인류 전체에 알맞도록 새로이 해석해 낸 것이다.

‘3박’은 3박자로서 움직임, 역동, 혼돈, 변화인데 태극기로 말하면 붉은 빛이니 양(陽)이다. ‘2박’은 2박자로서 고요함, 균형, 질서, 안정인데 태극기로 말하면 푸른 빛이니 음(陰)이다. 3박 플러스 2박은 양과 음이 합쳐진 태극이다.

그리고 엇박은 혼돈적 질서로서의 태극에 대응한다. 3박이란 경기를 혼신으로 지원한 붉은 악마의 역동적인 놀이이고 2박이란 경기에 임해서 일사 분란하게, 필사적으로 싸운 선수들의 노력의 균형 잡힌 틀이다.

이렇게 붉은 악마들의 역동이라는 3박과 선수들의 균형이라는 2박이 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그리고 박력 있는 혼돈의 질서로서 태극 문화를 재창조한 것이다.


‘3박’-응원단(붉은 악마들)

붉은 악마들의 응원이 하나의 문화임을 증거하는 것이 바로 그 응원 전체가 세 가지의 원리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것은 예술적 표현 원리, 역사 의식의 원형, 철학적 원리 등 3자의 종합이다. 역사 의식의 원형은 ‘치우’의 붉은 로고로, 철학적 원리는 태극기를 앞세움으로써, 예술적 표현 원리는 연호(連呼)와 박수이다.


‘대~한’ 3박, ‘민국’2박의 역동적 균형

‘대한민국’의 연호는 4박자의 안정된 구호로서의 틀 속에서 ‘대’를 길게 끌어 ‘대’와 ‘한’이 ‘3박’을 만들어 그 뒤의 2박과 엇섞여 역동적 균형 또는 안정적 변화를 표현한 것이다.

‘대~한 민국’의 연호 바로 뒤에 ‘짝짝 짝짝짝’의 2박 플러스 3박이거나 ‘짝짝짝 짝짝’의 3박 플러스 2박을 붙여서 음성과 소리, 연호와 박수 양 측면에서 각기 음과 양, 양과 음을 서로 통합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서양인들이 잘 따라 하지 못 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이 역동적 변화와 안정적 질서를 동시에 음과 양, 양과 음의 태극으로 공존시켜 구분하면서 동시에 통합하는 탁월한 예술적 표현으로 새로운 문화의 코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역사 의식은 치우의 붉은 로고에서 나타났다. 치우는 4,500만년 전에 살아 있었던 고조선 제 17대 자오지(慈烏支) 천황으로 중국 사람들이 제일 겁을 내는 싸움과 전쟁의 신이다.

당시 중국의 임금인 황제(黃帝)와 벌였던 47회의 전쟁에서 47회를 모두 승리함으로써 중국인들을 압도해 버리고 고조선의 역사를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

이 47회에 걸친 고조선과 중국의 전쟁은 이전까지의 지배적 질서인 유목 이동 문명을 제거하고 당시 새롭게 시작된 농업 정착 문명만을 고집하는 중국의 황제와 유목 이동 문명과 농업 정착문명의 공존ㆍ공영으로 역사와 현실을 통합하려 했던 고조선의 치우 천왕 사이에 벌어진 가치관과 체제의 싸움이었다.


치우천왕에 대한 역사의식 고취

치우의 붉은 로고는 우선 로마적인 전쟁의 신 마르스 대신 싸움과 전쟁의 신인 고조선의 치우 천왕의 붉은 색깔의 전통을 이어 받는 주체적인 경기 문화를 제시했다.

또한 동양에서 지금 막 패권주의 국가로 일어서고 있는 중국 등 외국과의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주고 받는 역동적 문화 교류를 표현했다.

아울러 동서양 모두 농촌 중심의 생명, 생태학 환경 등 농업 정착 문명과 도시 중심의 핸드폰, 노트북, 컴퓨터, 사이버, 그리고 공항, 항만, 주유소, 승용차와 도로와 호텔 등 유목 이동 문명이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둘을 통합하는 새로운 문명 창조를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에까지 미치는 역사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 우리 민족의 전통성을 지키고 그것에서부터 현대의 전 인류 사회적인 희망의 내용을 찾아 새롭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붉은 악마는 커다란 문화적 공적을 세운 것이다.

철학적 원리로서 태극기를 살펴보자. 태극기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우선 바탕이 흰 색이다. 세계의 여러 국기 중에는 바탕이 흰색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흰색은 우선 단일 계통에 순박하고 순결한 민족성을 뜻하고 또한 평화와 신성하고 경건한 광명을 표현한다.

또 가운데의 태극은 음과 양의 대립과 통일인데 평소에는 붉은 양이 위에 있고 푸른 음이 아래에 있어서 하늘(양)이 위에 있고 땅(음)이 아래에 있는 질서를 의미한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우주의 현실이다. 태극은 음과 양이면서 동시에 그 근본인 가운데, 즉 중도(中道)의 상징이다.


태극문화 재창조에 나서야

현실에 있어서 우리 민족은 북한의 사회주의와 남한의 자유자본주의가 마치 음과 양처럼 서로 모순 대립돼 있으면서도 서로 교류하고 장차 통일하려 하고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북방의 대륙 세력과 남방의 해양세력, 세계의 남쪽 즉 가난한 제 3세계와 세계의 북쪽 즉 잘 사는 제1, 제2 세력 사이에 그 조정과 통합, 교류를 주도할 위치에 있어 양쪽을 다같이 아울러야 한다.

건(乾)- 곤(坤)-감(坎)-리(離), 태극기 네 귀퉁이의 네 가지 괘(卦)는 어떻게 생겼는가. 정의와 풍요, 광명과 지혜, 이 네 가지는 우리 국기 네 괘가 상징하는 바이며, 바탕의 흰 빛은 곧 평화를 상징한다.

새문화의 창조와 인류 평화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좌표인 동시에 신인간으로서의 홍익인간의 국시를 표현한다.

붉은 악마는 자기 세대의 힘을 온갖 분열과 분리를 넘어 한 데 모았으니 자기 세대의 독특한 새 문화인 태극기를 전사회적 문화 현실에 확대시키고 자신들의 독특하고 세계적이면서도 보편성을 지닌 민족 고유의 생활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새 세상을 열어 가야 한다.

태극기로 망토를 걸치고, 태극기로 모자 해 쓰고 태극기로 스커트와 바지를 해 입고 다녔으니 이제 그 태극 문화를 공부하고 재창조해야 한다.


2박-선수들(태극 전사들)

몸과 마음이 통일된 완벽한 전사였으니 음과 양이, 안과 밖이 통합된 개인적 완성이 돋보였다. 차라리 몸보다도 더 먼저 기(氣)가 달려갔으며, 경기 시간 내내 끊임없이 뛰었으니 정신과 육체가 함께 고양, 통일된 것이다.

수비와 공격, 좌익과 우익이 융통성 있게 연속되었다. 마치 탁월하고 능란한 차원의 전천후 유격전을 방불케 했다.

개인 개인의 자기 희생 정신과 전체에로 자기를 통합하려는 노력의 결과 팀은 물론 경기 자체가 살아 동요치는 감동을 창조했다. 공격과 방어, 나아감과 물러섬, 남성성과 여성성, 창조와 수성(守城)이 능란하게 통일되었으니 이를 ‘건곤감리’ 네 괘의 구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 고유 동양사상의 완성

이것의 가장 중요한 근원은 붉은 악마들의 그 찬란한 역동적 균형, 즉 3박 플러스 2박의 통합인 엇박의 완성에 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태극이요, 사괘이며, 치우의 전쟁의 역사적 의미, 유목 이동과 농경 정착의 통일 조화며, 동양과 서양, 농촌과 도시, 생명과 영성, 에콜로지와 사이버네틱스를 양립속에서 통합하는 민족 고유의 동양 사상의 전세계적인 문화적 승리인 것이다.

이것이 곧 ‘대~한민국’이다.

김지하 시인

입력시간 2002/07/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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