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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서해교전 책임은 김정일에

서해 교전이 일어난지도 상당시간이 흘렀다. 서울, 워싱턴, 도쿄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는데도 평양은 조용하다. 평양은 최근 “남북간 수명이 다쳤다”라고만 밝혔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744부대를 혁명수뇌부 요원과 시찰 했는데 시찰 시점이 서해교전 후인지, 전인지는 분명치 않다. 1998년 9월 개정된 북한 헌법 100조에 의하면 김정일은 국가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이며 전반적인 국방관리기관인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이다.

이런 그가 교전에서 죽은 북한 병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너무 제왕적이다. 또 교전의 책임에 대해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는 것을 보면 북한의 국방위원회의 실상이 무엇인지 생각케 된다.

빌 클린턴 미국 정부시절 국무부 장관이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김 위원장을 “대화를 나눌만한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2000년 10월 30일, 12시간 동안 평양에서 그와 대화를 나눈 그녀는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방송에서 숙고 끝에 소회를 밝혔다. 200만 인민이 굶어 죽는데 미사일을 만드는 것에 대해 질문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물론 우리(김 위원장과 올브라이트)는 북한의 경제 문제를 논의했다. 그는 홍수와 한발로 인민들이 최소한의 식량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은 자기의 책임이라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그는 경제 문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을 알면서 세계식량계획의 원조만을 바랬다.”

올브라이트는 김 위원장이 창당 55주년을 기념하는 집단체조에서 25만 명의 인민이 박수로 맞이하자 마치 제왕처럼 인민의 환영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드리는 모습에 놀랐다.

왕은 인민이 굶는 것을 자기 잘못이다고 생각 않는다. 하늘의 탓이요, 신하의 잘못이다. 그래서 미국 하버드대에서 한국역사를 가르치는 카터 에케르트는 1996년 ‘역사적 인식에서 본 한국통일’이란 논문에서 지적했다.“김정일이 북한을 개혁 하려는 모습은 조선의 고종과 거의 같다.

고종은 서구화를 통해 일본에 맞서자는 개혁파의 주장에 반대하는 보수 엘리트층을 제어하지 못했다. 고종은 여러 가지 국가적 제어장치를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근대화 움직임을 지연시키고 좌절시켰다.”

미국 버클리대에서 한국 근대사를 가르치는 비핀 챈드라는 1995년 쓴 ‘19세기의 제국주의와 저항, 개혁 운동’에서 고종이 개혁과 왕권강화라는 상반된 정책을 왔다 갔다하며 흔들렸던 사실을 분석했다.

챈드라에 의하면 고종은 1895년 독립협회 등을 지원하는 등 경장(庚障ㆍ개혁)에 앞장 서는 척 했지만, 개혁파의 지원세력이 일본이 아닐까 하는 왕권 상실의 두려움 때문에 개혁을 저지했다. 고종의 서구화나 근대화에 대한 생각은 ‘애매하고 흔들리는 것’이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과의 대화에서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싶어하는 의지를 느꼈다. 그러나 그가 공산주의 경제를 변혁시키려는 것은 고작 ‘스웨덴식 사회주의 경제’였다.

김정일과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김정일의 개혁에 대한 애매성은 이를 위한 개방이 이뤄질 때 열려질 북한 정치의 판도라 상자 때문이다. 이 판도라 상자가 열리면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정치보복으로 죽은 사실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35년간 추적한 셀리그 해리슨(주간한국 6월29일자 ‘어제와 오늘’ 참조)에 의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택한 것은 자신의 제왕적 성격에 애매성과 흔들림을 숨긴 ‘비밀스런 개혁’(Reform by stealth)이었다.

이런 도깨비 같은 비밀스러움은 이번 서해교전에서도 의도적이냐, 우발적이냐는 설전을 낳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김 위원장을 객관적 시각에서 관찰해온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진단에 의하면 “모든 군사적 책임은 국방위원장의 것”이다.

북한을 김일성의 항일 게릴라 중심의 유격대 국가로 규정했던 하루키 교수는 북한은 1998년 9월 헌법개정으로 정규군 국가가 되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나라의 수령이 됐다고 주장했다.

하루키 교수는 김 위원장을 북한을 정규군의 도움을 받아 통치 하고 있는 최고 사령관으로, 공산주의 정당인 노동당을 군을 위한 당으로 파악했다.

혁명 수뇌부는 김영춘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상, 이용무 국방위 부위원장, 정하철 당 선전부장, 김기남 중앙위비서, 리명수 대장(인민군 작전국장), 현철해 대장(총정치국장), 박재경 대장(총정치국 선전 부국장), 리용철 조직지도부제 1부부장, 장성택 부부장, 김희택 부부장이다.

김 위원장은 권력을 휘두르는 면에서는 조선의 고종과 같다. 동시에 그는 서해교전에 관한한 명백한 책임자임에 분명하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7/1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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