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확 달라지고 있다·上] 멀티서비스맨만이 살아남는다

고객만족 위한 토털서비스 제공 등으로 은행기능 대변신

은행원들이 고객 만족의 ‘골’을 넣기 위해 ‘멀티(multifunction) 서비스 플레이어’ 로 재무장하고 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찾아오는 고객의 예금을 받고 손쉽게 예대마진 장사만을 하는 1990년대 업무방식은 이제 은행 지점 한편에 위치한 ‘빠른 창구’ 에서 나 취급하는 단순 기능직에 불과하다.

보험 판매원 이상으로 은행원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고객을 직접 찾아 나서 그들의 재산증식의 가치욕구를 극대화할 만한 맞춤 금융상품을 골라주고 부동산 투자와 보험계약, 세무상담, 노후설계 등 개인의 자산운용 관리까지 직접담당해주는 종합금융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 기능의 전이(轉移)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VIP고객을 잡아라

우리은행이 지난해 말 서울 서초동에 문을 연 VIP고객 전용 점포 ‘프레스티지 로얄클럽’.

최소 1억원 이상 예탁금(분류기준)을 가진 VIP고객이 입구 개폐장치에 고객번호를 누르고 출입문을 들어서면 호텔에서 예절 교육까지 받은 고객자산운용 전담 은행원 ‘프라이빗 뱅커(PB)’가 고객을 깍듯이 맞는다.

대기표와 커피 자판기, 손때 묻은 잡지 등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붉은 와인 색 톤 인테리어에 고급 샹들리에서 비치는 은은한 불빛, 이탈리아산 가죽 소파, 45인치 벽걸이 DVD-TV, 영국 산 고급 찻잔에 카푸치노와 라테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고객에게 주어진다.

이 은행 로고만 빼면 75평 실내는 특급 호텔 라운지나 고급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우리은행은 서울 서초와 대치, 분당 등 3개의 VIP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을지로 1가 하나은행 본점 2층에 위치한 ‘하나 골드클럽’도 고급 미술품 전시장과 실내정원까지 갖춘 고객 서비스를 위한 VIP 전용 공간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디자인한 비디어 설치물을 지나 로비 왼쪽에 사방이 훤히 보이게 유리로 설계한 전용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200평 규모의 VIP 센터 안으로 직접 연결된다.

금색 판넬에 씌어진 ‘골드 룸’에는 7명의 PB들이 예금과 연계한 증권ㆍ보험ㆍ 투신 등 하나은행 전계열사 상품들을 백화점 식으로 진열해 놓고 개별 고객을 위한 ‘토털 웰스 (Total wealth) 매니지먼트’ 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 개인용 금고에서부터 카페테리아, 골프 퍼팅 연습장, 간단한 휴식장소까지 마련된 이곳의 고정이용 고객은 약 220명에 달한다. 그러나 틈틈이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족히 1,000명을 웃돌 정도다.

김인응(38) 우리은행 PB 매니저 겸 재테크팀장은 “VIP고객을 위한 이 같은 시설 확충은은행 전체 수익 80%가 전체 고객 중 상위 20%에 해당하는 VIP 고객들로부터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들로 하여금 ‘선택된 소수’라는 느낌을 불어넣기 위해 은행 특유의 대중성을 버리고 서비스를 차별화할 수 밖에 없다”고 최근 급변하는 은행 마케팅 추이의 맥을 짚어줬다.

‘돈이 되는 곳’에는 은행들의 마케팅 전략도 최상의 개별 맞춤식 서비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시간 환율의 동향에서부터 주식과 부동산 추이 등에 대한 선별된 금융정보 등을 고객들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고객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해 준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개인고객 1,200만 명 중 상위 1%가 총 예탁금의 54% 차지한다. 또 상위 10%가 은행수익의 80%를 내고 있을 정도다. 100명의 고객에게 1만원짜리 서비스를 하는 것보다, 한 명에게 100만원짜리 서비스를 하는 것이 훨씬 수익이 높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5억원 대 이상의 주요 고객을 전담하는 PB의 경우, 공휴일에도 고객과 함께 골프를 치고 사업거래 계약과 부동산 헌팅 장소에도 동행하는 철두철미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한다.

또 가족의 대소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고객 자제의 중매에 까지 관여하는 한 마디로 ‘집사’ 역할까지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업계의 귀뜸이다.

따라서 각 은행마다 VIP고객을 끌어안기 위한 각종의 상품개발과 함께 다양한 경품 및 이벤트 서비스 경쟁도 치열하다. 김희철 하나은행 PB지원팀장은 “1억원 이상 규모의 예탁금을 가진 고객은 전국적으로 32만 여 명에 이른다”며 “이들의 투자가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은행별 차별화 경쟁은 앞으로 더 가속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미은행은 1억원 이상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해외 유명 브랜드 패션 쇼를 열었다. 서울은행은 장례식용 ‘캐딜락’ 서비스 제공과 더불어 VIP고객들을 최고급 호텔로 초청해 ‘쿠킹 페스티벌’을 열었다.

조흥은행 역시 최근 시중은행에서 유능한 PB를 스카우트하는 등 영업 팀을 전면 개편하고 본격적인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은행의 고액 연봉자 PB(Private Banker)가 뜬다.

고객과 접점을 이루며 은행영업의 최전방에 서있는 개인 종합자산관리사 PB의 출현은 기존 은행의 고정관념을 깨고 ‘종합자산 원 스톱 서비스’라는 은행의 새로운 기능을 예고한다.

최근엔 은행별로 PB의 주가가 급 부상하면서 스카우트 경쟁 열풍과 함께 연봉 1억원 대의 ‘영업 맨’이 등장했다.

PB들은 VIP고객은 물론 일반 지점의 고객들에게 상속ㆍ증여세 절세 요령에서부터 예금ㆍ증권ㆍ보험ㆍ부동산 등에 대한 최적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시해 주는 것이 기본 임무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자산관리사가 되기 위해선 수 백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투자 상담사 및 보험대리점 자격증과 공인 설계사(CFP), 재무설계사(AFP) 자격증은 PB가 지녀야 할 필수 코스다. 주식시장이 호전되는 기색이 보이면 즉각 고객의 휴대전화로 수익증권 투자를 늘리라는 추천신호를 보낸다.

고객이 원할 만한 목 좋은 부동산 매물이 나오면 은행상품을 줄여서라도 투자할 것을 적극 권한다. 세무사나 부동산 전문가의 역할은 물론 때론 회계사와 변호사의 기능까지 사전에 헤아려야 하는 PB는 경기상황과 관련 자산관리에 해박하고 정통한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피 말리는 노력을 기울인다. 향후 은행의 경쟁력은 해당 PB의 능력과 자질에 달려있다.

오미라 하나은행 PB팀장의 하루 일과
   
60평형대 고급빌라와 대형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상류층 세대와 인접한 서울 서초로 하나은행 지점의 오미라 PB(Private Bankerㆍ38) 팀장은 매일 오전 7시면 지하철로 출근한다. 경제지의 각종 뉴스를 눈 여겨 읽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오전 8시 사무실 자신의 컴퓨터에 뜨는 200여명 VIP 고객들의 거래 만기도래 시점 등 각종 스케줄을 체크하고 ‘시테크’를 발휘해 하루일과에 필요한 약속과 계획을 잡는다.

요즘과 같이 달러환율이 약세일 때는 해외여행이나 유학생 자녀를 둔 고객들에게 즉각 연락해 달러 매입을 추천한다. 종합주가지수 700선이 무너져 주식형 상품에 투자한 고객들로부터 문의가 쇄도하면 종합적인 진단을 통해 안정적인 대응전략을 제안한다.

오 팀장은 자신이 담당하는 고객들의 자산관리 방식으로 주식형 상품의 투자를 전체에서 평균 30%정도를 6개월간 유지하도록 권장해왔다. 그러나 그녀는 “고객 상담 중에서 가장 난처할 때가 고객들이 만기이전에 주식형 상품을 해약하며 손절매하는 경우”라고 안타까워 했다.

고객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꽃바구니 배달은 기본이고 자녀의 중매에까지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오 팀장은 서초동에서도 손꼽히는 맹렬여성. 그러나 침착하고 설득력 있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몫 돈을 맡기는 고객들에겐 오히려 웬만한 증시 애널리스트 보다 관록 미 넘치는 끈끈한 신뢰감을 심어준다.

업무가 끝나는 밤 7시30분이면 몸은 파 죽이 되지만 전문적이고 정확한 투자상담원이 되기위해 오 팀장의 학구열은 이때부터 다시 피어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학원수강 등 그의 노력은 또 한 하나의 꿈을 부풀게 만든다.

늦은 밤 귀가해 다음날 미국 증시상황에 대한 해외경제 뉴스를 꼭 체크하고 잠자리에 드는 오 팀장은 1남1녀를 둔 어머니다.

그는 ‘은행의 토요 휴무제 실시로 이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좋겠다’는 기자의 말에 오히려 반색하며 “ 세무상담을 제대로 하기위해 체계적으로 회계사 공부를 주말에 해보려고 해요”라고 해맑게 웃었다. 억대 연봉을 꿈꾸는 오 팀장은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2002/07/12 14:45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