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사태와 한반도] 절치부심 北군부의 의도적 도발

대남 강경기조 유지 노린 군부, 얻을 것 없는 '연평해전' 보복

휴전 이후 남ㆍ북한간 최대 교전이었던 ‘연평해전(제1차 서해교전)’이후 잠잠했던 서해에서 3년만에 남ㆍ북 해군간에 교전이 다시 발생, 한반도에 또 다시 폭풍주의보가 내려졌다. 꽃게잡이철과 대선이 다가오자 우려했던 '북풍'이 다시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교전으로 남북정상회담 이후 2년여 동안 불안정하게 지속해왔던 남북 화해협력노력은 중대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북한이 월드컵 열기와 남북 화해협력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서해도발을 자행한 이유는 뭘까?


1999년 연평해전 패배 ‘설욕’의도

우선, 이번 교전은 연평해전의 연장선에서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 6월의 연평해전에서 참패한 북한 해군이 언젠가 '보복을 통한 명예회복'을 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북한 해군의 전투력 열세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따른 남북화해의 진전 등으로 보복 시기를 늦춰오다가 이번에 보복차원에서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서해교전 때 우리 고속정을 기습 공격했던 북한 경비정 684호정이 3년전 연평해전 당시 반파됐던 경비정으로 밝혀짐으로써 이번 기습 공격이 연평해전의 패배에 대한 설욕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의 기본통치방식으로 '선군정치(先軍政治)'를 표방하면서 '사상·군사우선의 강성대국건설'이라는 통치구호를 제시하고 군사우선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군사국가'인 북한에서 패전은 최고지도자의 '정당성 위기'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서해교전의 패배 이후 침몰된 선박과 승무원들을 바다에 수장시켜 놓고 역으로 그들이 승리하였다고 선전해 왔다.

북한군은 '백배, 천배 보복의지'를 거듭 다짐하면서 훈련을 강화해 왔지만 남북간 전력격차에 따른 역부족을 절감하고 무력사용보다는 새로운 '서해해상군사분계선'(1999. 9. 2)과 '서해 5도 통항질서'(2000. 3. 23)를 선포하고 NLL 무효화에 주력해 왔다.

북한은 경비정과 어선을 앞세워 2000년 15회, 2001년 12회, 올해 들어 14회에 걸쳐 서해상의 NLL을 넘어온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 정부와 유엔사의 입장은 "북방한계선(NLL)은 1953년 휴전협정 체결이래 지금까지 쌍방이 지켜온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고 강조하고 있고 북한은 “유엔사측이 남한의 함정이나 전투기의 대북 적대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취한 조치(유령선)”라고 주장하고 있다.


황금어장 노린 도발

둘째, 꽃게잡이철에 다시 서해교전이 벌어진 것은 서해황금어장의 영유권을 노린 북한의 의도된 도발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자력갱생식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노선을 고집하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의 편입을 통한 경제난 해결보다는 내부자원의 동원을 통한 경제위기 해소에 주력하고 있지만 식량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하다.

북한은 관광객 감소에 따른 금강산 관광대가 지불유예와 9·11 테러사태 이후 미국·일본이 이른바 '불량국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바람에 무기수출과 마약 밀거래 등을 통한 외화 획득의 어려움 등으로 외화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 해군의 서해도발은 북한 지도부의 '계획된 도발'이기보다는 북한 군부의 '의도된 도발'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내외 정세에 많은 정보를 가진 지도부 입장에서는 지금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재개할 시점으로 판단하고 미국 특사의 수용 의지를 밝히면서 금강산댐 수위조절, 월드컵 한국경기 중계, 박근혜 의원 을 통한 남북합의사항 이행의지 표명, 민간교류의 지속 등 대화분위기를 조성해왔다.

그러나 정보가 통제된 군부입장에서는 안보에 우선순위를 두고 대남 강경기조를 유지하면서 서해교전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는 차원에서 보복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지도부의 의도와 관계없이 도발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북한지도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한의 ‘불량국가’ 이미지는 굳어지고 대외신인도는 더욱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남측의 예정된 30만톤의 대북 식량지원도 어려워지고 외부세계의 대북지원도 감소할 것이다.

서해교전을 통해서 한반도에는 탈냉전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고한 냉전구조가 존재하고 냉전의 '관성(慣性)'이 남북관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남북관계의 개선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그 해답은 먼저 남북한 공히 안보에 대한 우려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북한 체제위기로 인한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을 들 수 있다.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경제위기에 봉착한 김정일 정권은 개혁·개방을 통해서 난관을 돌파하기보다는 '선군정치'와 '벼랑끝 전술'을 통해서 근근히 버텨내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남북관계 경색, 기로에 선 햇볓정책

김대중 정부는 안보와 화해·협력을 병행하는 이중접근전략을 추진해왔다. 3년전 '연평해전'의 승리 때는 이중접근전략이 성공을 거두는 듯했고 1년 후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과거의 '적대적 의존관계'에서 '호혜적 상호의존관계'로 발전하는 듯했다.

그러나 6월 29일 서해교전에서 남측이 많은 피해를 입음으로써 미국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정체상태에 빠진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동안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의 결과로 남북사이에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서해교전을 계기로 남북간 긴장이 고조됨으로써 햇볕정책의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과 정부는 이번 사태가 햇볕정책의 결과라기 보다는 햇볕정책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북한당국, 특히 북한 군부의 호전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들과 일부 인사들은 햇볕정책으로 안보의식이 해이해졌고 그 결과 북한의 기습공격에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햇볕정책의 근본수정과 함께 금강산 관광사업 등 민간교류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측은 이번 사건을 3년전 서해교전의 보복차원에서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은 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화해·협력의 진전이란 차원에서 북측이 설마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란 차원에서 대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아직 한반도에 '냉전의 관성'이 남아 있으며, 실정법을 초월한 통치권 차원의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합의가 제도화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 이후의 '신남북관계 시대'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남과 북은 공동선언의 합의정신을 살려 남북관계 발전을 제도화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입력시간 2002/07/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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